[남도에서 새 인생 新 전남인-오곡발효마을 최해성 씨]유기농 자연발효식초와 함께 익어가는 인생 2막
<19> 화순 동면 마을기업 오곡발효마을 최해성 씨
KT 기술전문가로 30년…50대에 은퇴 고향서 식초공장 운영
돼지감자·흑마늘 등 유기농 농산물로 만든 식초 전국에 판매
판매 3년 만에 매출 1000만원 →5000만원으로 5배 늘어
2021년 12월 21일(화) 21:50
지난 19일 찾아간 오곡발효마을 농장내 식초발효실에서 귀농인 최해성씨가 숙성 중인 식초를 살펴보고 있다. 식초발효실은 최씨가 직접 돌을 쌓아 만든 토굴 형태의 공간으로 그에게는 보물창고와 다름없다.
발효실 문을 열고 들어서자 시큼한 식초 향이 코끝을 찔렀다. 시큼하다 못해 콧속이 아릴 정도로 강한 향이었다. 막걸리에서 식초로 변해가는 용액이 담긴 항아리 수십 개에서 뿜어져 나온 향이다. 포도, 돼지감자, 파인애플 등 각종 채소와 과일이 발효를 거쳐 식초로 변해가는 중이었다.

“냄새가 시큼하죠. 하하하. 막걸리가 식초가 돼가는 과정이에요. 보통 3개월 정도가 걸리는데 섭씨 35도 정도가 발효되기 가장 좋은 조건이에요. 이런 환경을 유지하면서 이틀에 한 번꼴로 저어주고 발효가 잘되는 지 지켜보면 3개월 후에 식초가 됩니다.”

귀농 12년 차인 최해성(64)씨는 화순군 동면에서 자연발효식초를 생산하는 마을기업인 오곡발효마을을 운영한다.

해성씨는 이곳에서 돼지감자, 파인애플, 흑마늘, 꾸지뽕, 사과 등 유기농 농산물로 만든 자연발효식초를 만들어 전국 각지로 판매한다. 모두 유기농산물을 이용한 천연발효식초다. 고두밥을 지어 누룩을 만드는 것부터 막걸리를 걸러내는 것까지 식초를 만드는 모든 작업은 해성씨의 손을 안 거치는 공정이 없다.

최해성씨가 판매 중인 돼지감자 현미식초 재판매율이 70%에 달한다.<최해성씨 제공>
해성씨의 천연발효식초는 그 효능과 맛에서 입소문을 타고 전국 각지의 소비자들을 끌어모으고 있다. 처음 판매를 시작했던 2017년 1000만원에 불과했던 매출은 지난해 5000만원으로 5배 가량 늘었다.

해성씨의 식초를 구매한 고객 중 일부는 식초를 마신 후 건강이 매우 호전됐다면서 감사 전화를 걸어오기도 한다. “오랜 기간 천식을 앓다가 식초를 두어 달 마시더니 가빴던 호흡이 되돌아왔다는 분도 계시고, 혈당 수치가 말도 안 되게 떨어졌다는 분도 계신다. 그런 전화를 받을 때면 나조차 놀란다”고 말했다.

해성씨의 식초의 효능은 미국 식품의약국(FDA)의 성분분석을 통해서도 살펴볼 수 있다. FDA 성분의뢰에 의하면 해성씨의 돼지감자 현미식초에는 암 환자들에게 좋은 셀레늄이 89.2ug 고혈압에 효과가 있는 칼륨의 함량이 59.8mg 포함됐다.

“식초에 그만큼 자신이 있으니 성분 분석을 의뢰한 것이다. FDA 성분분석 결과를 보니 제 식초에 대한 자부심이 더 올랐다”며 자신 있게 말했다.

특히 누룩에 대한 자부심이 강했다. 직접 농사지은 밀로 만드는데 누룩은 좋은 식초를 만드는 가장 중요한 재료다. 누룩이 식초의 맛과 품질을 결정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처음 항아리 10개로 시작했던 식초공장에는 이제 식초가 가득 담긴 항아리가 100개가량 된다. 공장 내부 발효식초실은 해성씨에게는 보물창고와 같은 곳이다. 직접 돌을 쌓아 올린 토굴 형식의 발효식초실에는 길게는 4년간 발효되고 있는 식초 항아리들이 가득하다.

그는 “막걸리가 식초로 만들어지기까지 4개월이 걸리는데 이후 바로 판매할 수도 있지만, 보통 2년 정도 숙성해서 판매한다. 숙성할 수록 미생물이 늘어나 건강에 더 좋은 식초가 된다”고 말했다.

해성씨가 고향인 화순으로 돌아온 건 지난 2010년이다.

해주 최씨 11대 장손인 그는 화순에서 중학교를 마쳤다. 이후 광주로 올라와 광주공고를 졸업한 뒤 KT에 입사했다.

그는 KT 전남지역본부에서 30년 가까이 기술전문가로 일했다. 그러나 시대가 변화면서 인터넷과 휴대전화 등의 등장으로 해성씨가 일하는 분야의 인력 감축이 불가피했다. 한 부서의 팀장이었던 여러 고민 끝에 명예퇴직을 결심했다. "아쉽긴 했지만, 2008년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홀로 농사를 지으시는 어머니를 보면서 일손이라도 보태자는 생각이 들었죠.”

해성씨는 지난 2010년 정들었던 회사를 그만두고 고향인 화순으로 향했다. 초보 농사꾼은 귀농 첫해 유기농 고추를 생산해 판매하겠다는 계획을 세웠다. 그러나 열정으로만 되는 일이 아니었다. 유기농을 고집하다 장마철이 지나고 난 뒤 탄저병이 돌면서 고추가 썩기 시작했고 20% 정도밖에 수확하지 못했다. 그렇게 낙담하던 차에 우연히 방문한 화순군 농업기술센터가 그의 귀농인생을 바꿔 놓았다.

“일단 농업기술센터를 찾아 닥치는 대로 수업을 들었어요. 그러던 차에 발효식초 수업을 들었는데 느낌이 딱 왔죠. 모든 농사는 판매가 가능한 상(上)품이 절반이 채 되지 않는데 남는 상품으로 식초를 만들면 또 다른 소득을 창출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었어요”

그가 농업기술센터에서 이수한 교육시간 만해도 1000시간에 이른다. 학생처럼 매일 같이 농업기술센터를 들락거렸다. 해성씨는 1000시간이 넘는 교육시간에도 부족하다는 생각이 들었는지 식초명인을 직접 찾아갔다. 그는 농업기술센터에서 인연을 맺은 발효식초 명인의 공장을 찾아가 1년간 발효식초 생산 공정을 배웠다. 1년 간 배우고 나니 이 정도면 나도 해볼 수 있겠다는 자신감이 들었다.

최해성씨가 운영 중인 화순군 동면의 오곡발효마을 전경 사진. <최해성씨 제공>
그렇게 화순으로 돌아와 퇴직금 일부를 투자해 약 300평 규모의 식초공장을 만들었다. 무작정 투자한 퇴직금 때문에 아내의 눈총을 받았지만, 지난 2013년 전남도 예비 마을기업에 선정된 데 이어 이듬해에 행정안전부에서 선정하는 마을기업에 선정되면서 지원금을 받았다.

올해에는 강소농 육성 시범사업 기업에 선정됐다. 해성씨는 강소농 육성 사업 지원금으로 현재 유리병 형태로 판매 중인 식초를 휴대가 간편한 스틱형태 제품으로도 바꾸는 등 제품군을 다변화할 계획이다.

그는 100세 시대인 요즘 50대에 좋은 여건의 회사를 그만둔 것을 후회할 법도 하지만 그 결정이 인생에서 가장 잘한 결정이라고 말했다.

해성씨는 “정년까지 채워 퇴직한 동기, 친구들은 퇴직 후에 다른 일을 찾기가 어렵다고 얘길 하더라. 나처럼 귀농하는 것도 힘이 남아 있어야 가능한데, 환갑이 다 돼 하려고 하니 안된다고들 하더라. 나는 육체적으로도 힘이 남아있을 때라 도전하는 게 가능했다. 어찌 보면 당시에 명예퇴직을 결정한 게 참 잘한 일”이라고 말했다. <끝>

/화순=글·사진 김민석 기자 mskim@kwangju.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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