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향 초대석-‘이병주국제문학상’ 수상한 소설가·언론학자 김민환
“살아온 시대가 소설적…자기 이야기를 글로 써보세요”
퇴직 후 보길도에 귀촌…68살에 소설 ‘담징’ 내며 늦깎이 등단
날뛰는 사람 없는 사회가 좋은 사회…‘통합’과 ‘포용’정신 필요
“경험의 폭 넓은 은퇴자들 늦었다 생각 말고 글쓰기 도전해보길”
2021년 11월 08일(월) 18:10
김민환 고려대 미디어학부 명예교수는 정년 퇴임후 소설가로 새로운 삶을 살고 있다. 올 4월 펴낸 장편소설 ‘큰새는 바람을 거슬로 난다’로 ‘이병주 국제문학상’ 대상을 수상했다.
◇‘이병주 국제문학상’ 대상 등 잇단 수상 영예=“나림(那林) 이병주(1921~1992) 작가 탄생 100주년이 되는 해에 이 같은 상을 받게 돼 나에게 더할 나위없는 영광입니다. 하지만 선생의 위상에 흠을 새기는 건 아닌지 저어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지난 6일 경남 하동군 이병주문학관에서 열린 ‘이병주 국제문학상’ 시상식에서 대상을 수상하는 김민환 작가.


언론학자에서 소설가로 변신한 김민환(76) 고려대 미디어학부 명예교수는 지난 6일 ‘이병주 국제문학상’ 대상을 수상했다. 올해로 14년째를 맞는 문학상 운영위원회는 대상작인 장편소설 ‘큰새는 바람을 거슬러 난다’에 대해 “대립 너머의 더 큰 가치인 화합과 상생을 추구함으로써 인간의 보편적인 존재론 탐구로 주제의 폭을 확장한 작품”이라고 평했다.

작가는 수상소감에서 ‘큰새는 바람을…’에 매달린 이유에 대해 이렇게 밝힌다.

“우리 현대사의 그런 질곡을 되짚어보고 무엇이 잘못되었으며 어떻게 바로 잡아나갈 것인가를 묻고 싶어서였다. 내가 느낀 그런 문제의식은 이병주 선생이 이미 수십 년 전에 우리에게 던진 것이다. 대가 이병주 선생은 ‘지리산’의 주제가 의분(義憤·불의에 대해 일으키는 분노)이었다고 했다. 내가 이번 소설을 쓴 동기도 의분이라고 할 수 있다.”

창 너머로 바다가 내다보이는 보길도 ‘남은재’(南垠齋) 서재.
‘이병주 국제문학상’ 대상과 ‘노근리평화상’ 문학상을 수상한 작가를 완도 보길도 남은재(南垠齋)에서 만났다. 작가의 창작공간은 보길도 서쪽 바닷가 마을에 자리하고 있다.

작가가 지난 4월 세상에 내놓은 장편소설 ‘큰새는 바람을…’은 보성군 회천면 봉강(鳳岡) 정해룡(1913~1969) 일가를 중심으로 전개된다. 실존인물인 봉강과 아우 정해진, 6촌형 정해두 등은 각자의 신념에 따라 해방정국과 한국전쟁 등 좌·우로 나뉘어 극단으로 치닫던 이념갈등의 소용돌이를 헤쳐나갔다. 진보적 정치의식을 가졌던 봉강의 6촌 이내 친족 8명이 여순사건이나 한국전쟁 중에 국가 폭력으로 학살되거나 처형당했고, 30여명이 옥고를 치렀다.

1943년 보성군 회천면 ‘거북정’에서 어머니(윤초평)를 모시고 촬영한 사진. 뒷줄 왼쪽부터 봉강 정해룡, 매제 안용섭, 동생 정해진.
◇봉강 정해룡과 해진, 한국 현대사 축소판=이러한 봉강 집안사를 알게 된 것은 장흥중·목포 해양고 동기인 친구 정훈상을 통해서 였다. 봉강의 아우 정해진의 둘째아들인 훈상은 연좌제에 따라 사회생활에 많은 어려움을 겪었다. 결국 1969년 일본으로 밀항한 뒤 재판을 거쳐 추방되자 이듬해 북송선을 타고 부모를 찾아 북으로 갔다.(훈상은 김민환 교수의 인생 행로에도 영향을 미쳤다. 1971년께 대남방송에 나와 자신을 거론하는 바람에 ‘요주의 인물’로 찍혀 기자의 길을 접고 학문의 길을 택하게 됐다.)

“훈상이가 목포해양고 1학년 여름 방학 때 주소록을 보고 장흥군 용산면 우리 집으로 찾아왔어요. 그 친구가 족보를 보자고 해요. 족보를 찾아보니까 훈상이 4대조 할머니가 (우리 집안에서 출가한) 원등할머니에요. 그 후로 친형제처럼 지냈어요. 그 집 얘기가 어마어마한데, 무서워서 그전에는 쓸 생각을 못했어요. 내가 소설을 두 권 내니까 주변에서 ‘당신 친구 집 얘기를 써보라’ 강력하게 권해요. 최소한 5권을 쓸 정도의 얘깃거리가 있지만 에피소드나 사람도 잘라낸 것들이 엄청나요.”

작가는 작품을 시작하며 누구를 주인공으로 설정해야 할지 고민스러웠다. 친구 훈상 외에도 봉강, 정해진, 정해두 등 여러 ‘버전’이 가능했다. 고심 끝에 봉강이라는 큰 틀 안에서 이야기를 풀어나가기로 결정했다.

소설가이자 언론학자인 김민환 고려대 미디어학부 명예교수는 은퇴 후 문학청년의 꿈을 되살려 소설 창작에 매진하고 있다. 첫 소설 ‘담징’(2013년)을 시작으로 지금까지 장편소설 3권을 펴냈다. 보성출신 봉강(鳳岡) 정해룡 선생을 주인공으로 한 세 번째 장편소설 ‘큰새는 바람을 거슬러 난다’로 최근 ‘이병주국제문학상’ 대상과 ‘노근리평화상’ 문학상을 수상한 작가의 문학 이야기를 들었다.

꼬박 3년을 매달려 ‘큰새는 바람을…’을 완성한 작가는 봉강이 몸소 보여준 ‘통합’과 ‘포용’의 정신을 강조했다. 봉강은 좌·우익 모두의 신뢰와 존경을 받았다. 봉강을 사찰했던 형사와 우익인사가 앞장서 세운 봉강 추모비(1971년 건립)가 이를 반증한다.

“날뛰는 사람이 없는 사회가 좋은 사회인 것 같아요. 여론 선진화의 첫째 조건이 다양성이에요. 극좌에서부터 극우까지 스펙트럼이 다양하게 있어야 해요. 두 번째 조건이 통합이에요. 통합이 된다는 것은 하나가 된다는 것이 아니라 여러 가지 숙의(熟議) 과정을 거쳐서 타협이 된다는 거예요. 중요한 것은 숙의 과정을 통해서 통합할 줄 아는 겁니다. 봉강을 주인공으로 하면서 요즘 시대에 던질 수 있는 메시지가 있어요. 품격과 화해, 통합, 용서, 포용…. 봉강 같은 사람이 우리 사회에 필요합니다.”

◇68살에 ‘담징’내며 ‘늦깎이’ 신인 소설가 등단=“국문과를 나오면 학교 교사가 되는데, 잡무가 많고, 학생들만 상대하다 보면 사고나 경험의 폭이 좁아, 글을 쓸 수가 없대요. 신방과를 나와 기자생활을 하며 사회를 알고 나서, 그 다음에 네 글을 쓰라고 하셨어요.”

김민환 작가가 지난 2018년 발표한 ‘자전적 실연소설’ ‘눈 속에 핀 꽃’(중앙books 刊)에서 주인공인 ‘최영운’이 여자친구 ‘서윤희’에게 하는 말이다. 이는 어릴 적부터 ‘언젠가 소설을 쓰고 싶다’는 생각을 품었지만 국문학과 대신 신문방송학과를 선택한 작가 스스로의 대답이기도 하다.

소설속 묘사대로 고교 담임선생의 조언에 따라 고려대 신문방송학과에 입학한 그는 ‘기자생활을 마치고 만년에 소설을 쓰겠다’는 포부를 품었다. 하지만 1969년 ‘3선 개헌’(박정희 대통령의 3선을 목적으로 추진됐던 제6차 개헌)이라는 돌발 변수가 그의 인생침로를 바꾸었다.

기자와 소설가를 꿈꾸던 ‘문학청년’은 1960년대 시대의 격랑 속에서 소설대신 격문을 통해 사자후(獅子吼)를 토했다. 엄혹한 독재정권 시절이라 경찰에 쫓겨 도피생활을 했고, 정학처분을 받기도 했다. 대학 졸업 후 기자의 꿈을 접고 학문의 길로 접어들었지만 늘 가슴속에 문학과 글쓰기에 대한 열망이 가득했다.

그는 전남대(1981~1992년)와 고려대 신문방송학과에서 30여년간 후학 양성과 학문 연구에 열정을 쏟은 후 2010년 8월 정년퇴직했다. 은퇴를 3개월 앞둔 그해 5월부터 고향 장흥이 아닌 보길도에 집을 짓기 시작했다. 귀촌을 하며 ‘외롭고, 쓸쓸하고, 초라하게 살자’고 다짐했다. 학생운동에 몸담으며 접었던 ‘문학청년’의 꿈을 되살려 자신의 소설을 쓰고 싶었다.

“기자는 과정이고 목표는 소설이었어요. 원래 인생목표가 그거였는데, ‘너무 늦었지만 그러나 해보자’ 했어요. 소설이 될지, 안될지도 모르지만 남들은 절필하는 그런 나이에 시작한 거죠.(웃음)”

김 교수는 보길도에 들어간지 3년만인 68살에 첫 장편소설 ‘담징’(서정시학 刊)을 세상에 내놓았다. 언론학 원로 교수가 고구려 승려이자 화가인 담징(579~631)을 ‘코즈모폴리탄’(cosmopolitan·범세계주의자)으로 해석한 파격적인 작품으로 데뷔해 화제를 불러 모았다.

어느덧 정년퇴직한 지 11년. 그동안 3권의 장편 소설을 펴냈다. 작가는 현재 새로운 작품을 구상하면서 관련 도서와 자료를 읽고 전문가들을 만나고 있다. ‘큰 그림’을 그리기 위한 ‘밑바닥’ 공부이다. 요즘 관심 깊게 들여다보고 있는 시대는 대한제국이 일본에 망한 1910년 무렵이다.

그는 자기 또래의 은퇴자들이 자신들이 살아온 이야기를 자서전이나 소설 등으로 쓰길 권유한다.

“문학적 기교나 문장이 미숙하고 거칠겠지만 우리가 살아온 시대가 소설적인 시대였습니다. 개화기식 소설 소재가 널려있는 시대, 그런 시대에 대한 기록을 많이 남길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정치사뿐만 아니라 문화사적 자료로 보완을 하게 됩니다. 나 또한 ‘소설에 도전하는 것이 무모한 짓거리가 아니냐’ 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내가 진짜로 하고 싶은 거 한번 해보자’해서 소설을 쓰게 됐어요. 내 또래 사람들이 자기 이야기를 많이 썼으면 좋겠어요.”

/글·사진=송기동 기자 song@kwangju.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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