되풀이되는 학대 사망…입양아의 슬픈 잔혹사
해남 3세 아이 사망사건 이송 받고 1년 6개월 지나서야 늑장 기소
검·경 또 다른 입양아 학대 확인하고도 2년 가까이 분리 조치 안해
경남경찰의 돌봄 요청 공문도 묵살…입양 절차·사후관리 강화해야
2021년 11월 05일(금) 00:00
양부모에게 학대받은 4살 난 입양아에 관심을 두는 이는 없었다. 수사당국은 만 3세 입양아를 학대해 숨지게 한 양부모(養父母)를 수사하는 과정에서 함께 사는 만 4세 입양아의 신체적 학대 사실을 확인하고도 2년 가까이 부모와 분리조치를 하지 않은 것으로 확인됐다. 광주 경찰은 해당 입양아에 대한 ‘사후관리가 필요하다’는 경남경찰청의 협조 요청에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았다.

결국 피해 사실을 알고 있는 수사기관조차 관심을 주지 않으면서 만 4살짜리 입양아는 자신을 학대했던 양부모와 2년 가까이 불안한 동거를 해온 것으로 드러났다.

입양아에 대한 무관심과 관리체계의 허점이 학대 아동 사망사건의 진실규명을 늦추게 하고, 같이 입양된 다른 아동에 대한 보호조치까지 늦어지게 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검찰도 불구속 수사를 받던 양모를 구속하긴 했지만 1년 6개월 만에야 관련자들을 재판에 넘겨 ‘늑장 기소’라는 지적이 나온다.

4일 광주지검과 경남경찰청 등에 따르면 경남경찰은 지난 2019년 4월 만 3세 입양아를 학대해 숨지게 한 혐의(아동학대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위반)로 양부모(養父母)에 대한 수사를 진행한 뒤, 같은 해 10월 11일 진주지청으로 사건을 송치하면서 광주경찰청과 북부경찰에 양부모와 함께 거주하는 만 4세 입양아동에 대한 ‘돌봄’ 요청을 공문으로 보냈다.

수사 과정에서 4살짜리 아동에 대한 양모의 신체적 학대행위 사실을 확인한 만큼 가해자의 추가 학대행위 발생 가능성을 우려, 피해아동에 대한 ‘사후관리 및 사례모니터링’을 요청했다는 게 경남경찰의 설명이다. 경남 경찰은 수사 과정에서 양모가 입양아동들에게 미성년자 사용 금지하는 약물인 졸피뎀(수면제)을 먹이는가 하면, 나트륨을 과다 복용시킨 혐의를 잡고 수사를 벌여왔었다.

광주경찰은 그러나 적극적인 보호 조치는 취하지 않은 것으로 확인됐다. 검찰이 지난 4월 해당 아동들에 대한 학대 혐의로 가해자인 양모를 구속하고, 법원이 지난 3일 재판에서 부인의 학대 행위를 유기·방임한 남편을 법정 구속할 때까지 분리 보호 조치도 취하지 않은 것이다. 경찰은 서로 떠넘기기만 하고 있다.

광주경찰청 담당자는 “사후관리 모니터링은 일선 경찰서 담당이라 북부경찰 학대예방경찰관(APO)이 모든 관리, 분리 조치를 취한다”면서 “구체적인 사후관리는 북부경찰이 담당하고 있다”고 말했다.

북부경찰 담당자는 “아동보호전담기구로 권한이 넘어가기 전인 지난해 7월까지 규정과 절차에 맞게 모니터링은 진행됐지만, 분리조치가 취해지지 않은 것도 규정에 따른 것”이라고 말했다. 광주시 북구가 지난 9월 검찰 의견을 받은 뒤에야 비로소 가해자와 피해아동간 분리조치를 시행한 점과 경찰 설명을 고려하면, 사후 모니터링을 했지만 ‘분리조치’ 필요성을 느끼지 않아 가해자와 피해아동이 함께 살도록 내버려뒀다는 얘기가 된다. 경찰의 무관심한 업무 행태라는 비판이 제기되는 이유다.

특히 이 사건이 이른바 ‘정인이’ 사건과 비슷한 혐의 등으로 누구보다 사안의 심각성을 인지했을 경찰로서는 수사에 소홀한 것 아니냐는 비판도 나온다.

아동보호 전문가들도 “수사기관이 아동학대 사실을 인지하고도 2년 가까이 보호조치 등이 없었다면 소극적인 업무 행태였다”고 지적하고 있다.

광주지검이 지난 2019년 10월 진주지청에서 관련 사건을 이송받은 뒤, 1년 6개월 만인 지난 5월에야 가해자인 양부모를 재판에 넘긴 데 대해서도 더딘 수사라는 지적이 나온다. 광주지검은 “영상녹화, 법의학 감정, 디지털포렌식, 의학 자문 등 1년 6개월 동안 여러 수사 방법을 동원하느라 장기화됐다”는 입장이다. 경찰 수사 내용을 넘겨받은 뒤 재판에서 유죄 판단을 받아내도록 입증하기 위한 수사가 길어졌다는 얘기다. 하지만 영상녹화자료(CCTV) 분석, 휴대전화 디지털 포렌식 수사, 부검을 통해 드러난 졸피뎀 및 고나트륨 관련 수사와 법·의학적 감정 등에 대한 수사를 모두 거쳐서 검찰로 넘겼다는 경찰 입장을 고려하면 수사의 신속성이 미흡했던 것 아니냐는 지적도 나온다.

이번 사건을 계기로 입양절차뿐만 아니라 사후 관리 등이 보다 엄격하게 이뤄져야 한다는 지적이 많다.

이정서 조선이공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대부분 기관은 매뉴얼에 따라 입양 절차와 사후 관리를 적법하게 진행한다는 점을 강조하지만 매뉴얼대로 했다고 해서 할 일을 다 했다고 볼 수는 없다”면서 “모든 과정을 촘촘히 진단하고 입양과정 제도를 더욱 강화시켜 향후 입양으로 인한 피해사례가 더 이상 발생하지 않도록 악순환의 고리를 끊어야 한다”고 말했다.

한편, 북구는 지난 7월 피해아동보호명령을 청구, 9월 법원으로부터 피해 아동보호 명령과 임시보호명령을 받아 해당 입양아에 대한 보호조치를 진행중이다.

/정병호 기자 jusbh@kwangju.co.kr

/김민석 기자 mskim@kwangju.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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