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몸 천국, 분열 지옥’
한 달 남짓 진행된 민주당 경선이 모두 끝났다. 이재명 경기도지사는 거의 모든 지역에서 승리했다. ‘어대명’. ‘어차피 대세는 이재명’이었다. 이낙연 후보가 한 가닥 희망을 걸었던 결선투표는 물 건너갔다. ‘국무총리 출신 필패론’도 어김이 없었다.
결정적인 것은 호남의 민심이었다. 과거 노무현 전 대통령 때와 마찬가지로 이번 역시 호남 경선은 중요한 분수령이었다. 호남은 두 후보에게 어슷비슷한 지지를 보냈지만 ‘어대명’을 그대로 유지할 수 있게 해 주었다. 그것은 이후 진행된 다른 지역 경선에도 영향을 미쳤다. ‘기왕 이길 사람에게 표를 몰아주는’ 밴드왜건(band wagon) 효과도 무시할 수 없었다. 이재명은 아슬아슬한 턱걸이 과반으로 본선에 진출했다.
하지만 경선 막바지에 이해하기 힘든 의외의 결과가 나오기도 했다. 3차선거인단 투표에서 이낙연(62.37%)이 이재명(28.3%)에게 압승을 거둔 것이다. 불과 일주일 만에 이렇게까지 일반 여론이 바뀔 수 있을까? 미스터리(mystery)였다. 하지만 어찌 해서 이런 일이 일어났는지 그 원인을 몇 가지로 분석해 볼 수 있을 듯하다.
첫째, 이재명의 ‘토건 투기 세력 척결’ 발언에 전국의 부동산업자들이 일제히 반기를 들었다는 것이다. 둘째, 막판 위기를 느낀 이낙연 캠프에서 선거인단 모집에 엄청나게 공을 들였다는 것이다. 그럴듯하다. 그렇지만 너무나 큰 차이를 보인 투표 결과를 설명하기에는 뭔가 부족해 보인다. 부동산업자들이 반발했다고는 하지만 그 비중이 얼마나 될 것이며, 이재명 캠프라고 해서 선거인단 모집에 마냥 손을 놓고 있었을 리는 만무하기 때문이다.
턱걸이 본선 직행 이재명 후보
그러니 아무래도 대장동 리스크 등에 따른 ‘불안한 후보론’이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는 것이 타당할 것 같다. 여기에 약자를 더 응원하고 지지하는 심리 현상인 언더독(underdog) 효과도 어느 정도 작용했을 것이다.
어찌 됐든 호남을 비롯한 대부분의 지역에서 공통된 민심은 이재명에게 비교적 관대했다는 점이다. 돌이켜 보면 그동안 크고 작은 일들이 얼마나 많았던가. 녹음파일까지 공개된 ‘형수 욕설 사건’만 해도 그렇다. 그걸 한 번이라도 들어본 사람들은 말한다. 얼마나 심한 쌍욕이었던지 차마 입에 옮기기도 거북할 정도였다고. 하지만 사람들은 그의 ‘욕설’보다는 그토록 험한 욕설을 할 수밖에 없었던 ‘상황’에 더 주목했던 것 같다. 오죽했으면 그렇게까지 욕을 했겠느냐는 거다. 게다가 이재명은 이에 대해 미주알고주알 변명하지 않았다. ‘쿨하게’ 사과했다. 그렇게 해서 그 사건은 유야무야 넘어갔다.
이에 비하면 ‘어떤 여배우와의 스캔들’쯤은 아무것도 아닌 것이었다. 지지율에 별 영향을 미치지 못했다. 물론 이 지사는 경선 토론에서 가수 나훈아 흉내(“바지를 벗을까요?”)를 냈다가 곤욕을 치르기도 했다. 하지만 이 역시 그런대로 잘 넘어갔다. 아무래도 정치인들의 경우 ‘배꼽 아래로는 묻지 말라’는 보편적(?) 인식이 작용했을지도 모를 일이다. 설사 그들이 한때 연인 관계였음이 사실이라 할지라도.
초등학교를 나온 뒤 곧바로 공장에 취업해야 했던 이재명은 ‘대장동 사건’을 두고 자신에게 쏟아지는 공격에 맞서 이렇게 맞받아친 적이 있다. “부처 눈에는 부처만 보이고 돼지 눈에는 돼지만 보인다.” 이재명의 말은 언제나 시원시원했다. 그의 별명 중 하나가 ‘사이다’인 것도 이 때문이다. 그는 한번 결정하면 강하게 밀어붙였다. 결코 머뭇거림이 없었다.
이 같은 장점이 아마도 그의 모든 ‘흠’을 덮고도 남았을 것이다. “흠결 있는 후보가 대선에 나섰을 때 본선에서 이길 수 있겠느냐”고 상대 후보들이 아무리 외쳐 봐도 소용이 없었다. 사람들은 차분하고 신중하고 밋밋한 이낙연보다는 적극적이고 저돌적이며 톡 쏘는 이재명을 선호했다.
이제 남은 것은 딱 하나, ‘대장동 개발 특혜’ 의혹이다. 20여 년 전 광고카피에서 비롯된 ‘부자 되세요’라는 말이 유행한 적이 있었다. 올해는 같은 뜻으로 ‘화천대유 하세요’라는 말이 유행하고 있다. 성남시 대장동 개발 사업 시행사인 화천대유(火天大有)와 그 관계사인 천화동인(天火同人) 투자자들이 1000배가 넘는 천문학적 이익을 거둔 사실을 비꼰 것이다. 3억5000만 원으로 4000억 원을 만들었으니, 지금 해리포터의 스승이 온다 해도 이런 마법을 부리기는 어렵지 않을까.
‘대장동 의혹’ 큰 산 넘어서야
이낙연은 이러한 대장동 의혹을 반전의 계기로 삼고 싶었을 것이다. 어떻게 해서든 결선투표로 가 보고 싶었을 것이다. 결선투표는 과반수를 얻은 후보가 없을 때 상위 득표자 두 명을 놓고 다시 투표하는 제도다. 1971년 신민당 대선 경선 결선투표에서 김영삼에게 뒤지던 김대중이 결선투표에서 이를 뒤집은 바 있다.
공교롭게도 이번 경선에서 사퇴한 후보의 표를 무효로 처리하는 당헌 당규를 달리 해석할 경우, 이재명의 득표는 과반에 미치지 못한다. 이낙연 측은 이 문제를 제기하며 잠시 반발했지만 결국 승복 선언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제 대선이 얼마 남지 않았다. 앞으로 진행되는 본선 무대에서 ‘어대명’(어차피 대세는 이재명)은 또 다른 어대명(어차피 대통령은 이재명)으로 진화할 수 있을까. 그는 과연 ‘대장동 의혹’이라는 큰 산을 넘을 수 있을까. ‘원팀 천국, 분열 지옥’이라고들 하는데 과연 그는 승자와 패자 사이의 갈등을 잠재우고 하나의 팀을 만들어 또다시 승리를 일궈 낼 수 있을까.
한편, 대선이 5개월도 채 남지 않은 지금 호남 사람들은 아직도 마땅히 마음을 줄 후보를 찾지 못하고 있는 듯하다. 전 세계 1억1100만 가구가 시청한 드라마 ‘오징어 게임’에는 이런 대사가 나온다. “사람은 믿을 만 해서 믿는 게 아니야. 안 그러면 기댈 데가 없어서 믿는 거지.” 이 말을 대선에 적용해 본다. “(호남인들은 누군가를 지지하더라도) 믿을 만해서 지지하는 게 아니라 도무지 기댈 데가 없어서 지지한다.”
그렇다면 민주당으로서는 이제 호남 사람들의 마음을 좀 더 확실하게 잡을 필요가 있다. 그러기 위해서는 그야말로 ‘이재명답게’, 그저 그런 것 말고 뭔가 획기적인 정책을 내놓아야 한다. “보수 우파는 호남을 이민족으로 보고 진보 좌파는 호남을 노예로 본다.” 누군가는 이렇게 말하기도 했다. 하지만 민주당이 알아야 할 것은 언제까지나 호남을 ‘집토끼’로만 생각한다면 뜻하지 않게 낭패를 볼 수 있다는 점이다.
/주필
결정적인 것은 호남의 민심이었다. 과거 노무현 전 대통령 때와 마찬가지로 이번 역시 호남 경선은 중요한 분수령이었다. 호남은 두 후보에게 어슷비슷한 지지를 보냈지만 ‘어대명’을 그대로 유지할 수 있게 해 주었다. 그것은 이후 진행된 다른 지역 경선에도 영향을 미쳤다. ‘기왕 이길 사람에게 표를 몰아주는’ 밴드왜건(band wagon) 효과도 무시할 수 없었다. 이재명은 아슬아슬한 턱걸이 과반으로 본선에 진출했다.
턱걸이 본선 직행 이재명 후보
그러니 아무래도 대장동 리스크 등에 따른 ‘불안한 후보론’이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는 것이 타당할 것 같다. 여기에 약자를 더 응원하고 지지하는 심리 현상인 언더독(underdog) 효과도 어느 정도 작용했을 것이다.
어찌 됐든 호남을 비롯한 대부분의 지역에서 공통된 민심은 이재명에게 비교적 관대했다는 점이다. 돌이켜 보면 그동안 크고 작은 일들이 얼마나 많았던가. 녹음파일까지 공개된 ‘형수 욕설 사건’만 해도 그렇다. 그걸 한 번이라도 들어본 사람들은 말한다. 얼마나 심한 쌍욕이었던지 차마 입에 옮기기도 거북할 정도였다고. 하지만 사람들은 그의 ‘욕설’보다는 그토록 험한 욕설을 할 수밖에 없었던 ‘상황’에 더 주목했던 것 같다. 오죽했으면 그렇게까지 욕을 했겠느냐는 거다. 게다가 이재명은 이에 대해 미주알고주알 변명하지 않았다. ‘쿨하게’ 사과했다. 그렇게 해서 그 사건은 유야무야 넘어갔다.
이에 비하면 ‘어떤 여배우와의 스캔들’쯤은 아무것도 아닌 것이었다. 지지율에 별 영향을 미치지 못했다. 물론 이 지사는 경선 토론에서 가수 나훈아 흉내(“바지를 벗을까요?”)를 냈다가 곤욕을 치르기도 했다. 하지만 이 역시 그런대로 잘 넘어갔다. 아무래도 정치인들의 경우 ‘배꼽 아래로는 묻지 말라’는 보편적(?) 인식이 작용했을지도 모를 일이다. 설사 그들이 한때 연인 관계였음이 사실이라 할지라도.
초등학교를 나온 뒤 곧바로 공장에 취업해야 했던 이재명은 ‘대장동 사건’을 두고 자신에게 쏟아지는 공격에 맞서 이렇게 맞받아친 적이 있다. “부처 눈에는 부처만 보이고 돼지 눈에는 돼지만 보인다.” 이재명의 말은 언제나 시원시원했다. 그의 별명 중 하나가 ‘사이다’인 것도 이 때문이다. 그는 한번 결정하면 강하게 밀어붙였다. 결코 머뭇거림이 없었다.
이 같은 장점이 아마도 그의 모든 ‘흠’을 덮고도 남았을 것이다. “흠결 있는 후보가 대선에 나섰을 때 본선에서 이길 수 있겠느냐”고 상대 후보들이 아무리 외쳐 봐도 소용이 없었다. 사람들은 차분하고 신중하고 밋밋한 이낙연보다는 적극적이고 저돌적이며 톡 쏘는 이재명을 선호했다.
이제 남은 것은 딱 하나, ‘대장동 개발 특혜’ 의혹이다. 20여 년 전 광고카피에서 비롯된 ‘부자 되세요’라는 말이 유행한 적이 있었다. 올해는 같은 뜻으로 ‘화천대유 하세요’라는 말이 유행하고 있다. 성남시 대장동 개발 사업 시행사인 화천대유(火天大有)와 그 관계사인 천화동인(天火同人) 투자자들이 1000배가 넘는 천문학적 이익을 거둔 사실을 비꼰 것이다. 3억5000만 원으로 4000억 원을 만들었으니, 지금 해리포터의 스승이 온다 해도 이런 마법을 부리기는 어렵지 않을까.
‘대장동 의혹’ 큰 산 넘어서야
이낙연은 이러한 대장동 의혹을 반전의 계기로 삼고 싶었을 것이다. 어떻게 해서든 결선투표로 가 보고 싶었을 것이다. 결선투표는 과반수를 얻은 후보가 없을 때 상위 득표자 두 명을 놓고 다시 투표하는 제도다. 1971년 신민당 대선 경선 결선투표에서 김영삼에게 뒤지던 김대중이 결선투표에서 이를 뒤집은 바 있다.
공교롭게도 이번 경선에서 사퇴한 후보의 표를 무효로 처리하는 당헌 당규를 달리 해석할 경우, 이재명의 득표는 과반에 미치지 못한다. 이낙연 측은 이 문제를 제기하며 잠시 반발했지만 결국 승복 선언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제 대선이 얼마 남지 않았다. 앞으로 진행되는 본선 무대에서 ‘어대명’(어차피 대세는 이재명)은 또 다른 어대명(어차피 대통령은 이재명)으로 진화할 수 있을까. 그는 과연 ‘대장동 의혹’이라는 큰 산을 넘을 수 있을까. ‘원팀 천국, 분열 지옥’이라고들 하는데 과연 그는 승자와 패자 사이의 갈등을 잠재우고 하나의 팀을 만들어 또다시 승리를 일궈 낼 수 있을까.
한편, 대선이 5개월도 채 남지 않은 지금 호남 사람들은 아직도 마땅히 마음을 줄 후보를 찾지 못하고 있는 듯하다. 전 세계 1억1100만 가구가 시청한 드라마 ‘오징어 게임’에는 이런 대사가 나온다. “사람은 믿을 만 해서 믿는 게 아니야. 안 그러면 기댈 데가 없어서 믿는 거지.” 이 말을 대선에 적용해 본다. “(호남인들은 누군가를 지지하더라도) 믿을 만해서 지지하는 게 아니라 도무지 기댈 데가 없어서 지지한다.”
그렇다면 민주당으로서는 이제 호남 사람들의 마음을 좀 더 확실하게 잡을 필요가 있다. 그러기 위해서는 그야말로 ‘이재명답게’, 그저 그런 것 말고 뭔가 획기적인 정책을 내놓아야 한다. “보수 우파는 호남을 이민족으로 보고 진보 좌파는 호남을 노예로 본다.” 누군가는 이렇게 말하기도 했다. 하지만 민주당이 알아야 할 것은 언제까지나 호남을 ‘집토끼’로만 생각한다면 뜻하지 않게 낭패를 볼 수 있다는 점이다.
/주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