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번 쏜 화살은 돌아오지 않는다”
도쿄올림픽이 막을 내린 지 꽤 됐지만 아직도 여운이 쉽게 가시지 않는다. 국제올림픽위원회(IOC)의 ‘주머니 챙기기’와 주최국의 ‘정권 연장 수단’이라는 비판마저 일었던 사상 최악의 올림픽. 그렇지만 관중 입장에서는 충분히 즐길 만했다. 코로나로 인해 방구석에 처박혀 있을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으니 더욱 그랬다.
탁구 신동 신유빈의 훌쩍 성장한 모습도 보기에 좋았다. 다섯 살 때인가 텔레비전 예능 프로그램에 나왔던 꼬마는 어느새 소녀가 돼 있었다. 열일곱 살 어린 소녀는 개인 단식에서 접전 끝에 ‘탁구 도사’ 니샤렌(룩셈부르크)을 꺾었다. 원래 중국 출신인 니샤렌은 올해 나이 쉰여덟 살인데도 도전을 멈추지 않고 있다. 그리고 그녀가 남긴 말은 우리에게 깊은 울림을 주었다. “오늘의 나는 내일의 나보다 젊다.”
미국 여자 수구 팀의 마거릿 스테픈스 선수는 중국과의 조별리그 경기 중 코뼈가 부러졌으나 포기하지 않았다. 미국 팀의 3연속 올림픽 금메달을 이끈 그녀는 이렇게 말했다. “부러졌더라도 상관없다. 정신은 살아 있고 이게 바로 올림픽이 있는 이유다. 내 부상이 잘 보여서 그렇지 다들 여기저기 멍들거나 상처투성이다.” 그렇다. 모두들 참으로 힘들게 훈련을 했을 것이다. 그렇게 5년간 열심히 준비한 우리 선수단은 코로나로 우울했던 국민에게 활력을 불어넣어 주었다.
육상 남자 높이뛰기에서 한국신기록을 세우고도 2㎝ 차이로 4위가 된 우상혁 선수는 “결과를 빨리 인정하면 행복도 빨리 찾아온다”고 했다. 과거엔 힐난을 받았을지도 모를 그의 발언은 이제는 오히려 많은 이들의 공감을 자아냈다. “준비된 사람의 자신감은 자만이 아니란 걸 알았다”고 당당히 말하기도 했다. 세계 랭킹 15위의 여자 배구가 4강에 오르는 데 견인차 역할을 한 김연경 선수의 “해 보자. 해 보자. 해 보자”란 말도 올림픽 어록으로 남았다.
올림픽에 관한 몇 가지 제안
그러고 보니 이번 올림픽에서는 4등으로 아깝게 메달을 놓친 종목이 많았다. 4등은 ‘황홀과 침통의 갈림길’이라고 했던가. 우리나라 대표팀은 무려 열두 개 종목에서 그런 ‘안타까운 4위’를 했다. 하지만 메달보다 더 값진 패배였다. 수영에서 아시아신기록을 세운 황선우, 여자역도의 이선미, 사격의 한대윤, 마루운동의 류성현. 이들 모두 승패보다 한계에 도전하는 열정과 노력이 더 빛났다. 과거 본선에도 가 보지 못했던 다이빙의 우하람은 이번에 메달 직전까지 도약했다.
하지만 예전처럼 고개를 떨구고 절망하는 4위가 아니었다. 후회 없이 만족하고 앞날을 기약하는 희망의 4위였다. 이들은 ‘한국 스포츠 역사를 새로 쓴 4위 쾌거’로 칭찬을 받기까지 했다. ‘근대5종’이라는 다소 생소한 경기에서 4위를 한 정진화는 ‘이런 종목도 있다’는 사실을 알게 해 주었다. 그는 ‘깜짝 동메달’을 딴 후배 전웅태와 함께 아쉬움과 기쁨의 눈물을 흘렸다.
이번 올림픽에서는 패배한 선수에게도 갈채를 보내는 국민의 여유가 그 어느 때보다 돋보였다. 금메달 숫자로 국가 순위가 정해지다 보니 은메달이나 동메달을 따고도 죄인처럼 고개를 숙여야 했던 과거와는 크게 달라진 모습이다.
그래도 아쉬움은 남는다. 4위에게는 별 혜택이 주어지지 않기 때문이다. 올림픽에서 남자 선수들의 군 면제 기준만 보더라도 동메달 이상을 획득해야 한다. 동메달과 노메달은 포상금뿐만 아니라 여러모로 차이가 난다. 그러니 정작 선수들은 괜찮다며 웃는데도 경기를 보는 관중 입장에서는 안타까울 수밖에 없다. 그래서 해 본 올림픽에 관한 첫 번째 제안은 조금 생뚱맞긴 하지만 목메달(나무메달)을 신설하자는 것이다.
1896년 그리스 아테네에서 근대 올림픽이 시작됐을 때 우승자는 올리브 월계관과 함께 은메달을 받았다. 2위에게는 동메달을 주었고 3위는 아무것도 받지 못했다. 1900년 제2회 프랑스 파리 대회 때는 트로피만 수여했다. 1904년 제3회 미국 세인트루이스 올림픽에서 비로소 처음으로 금메달이 등장했고 이때부터 1·2·3위에게 금·은·동메달을 주는 전통이 이어졌다.
모두 주인공, 덕분에 즐거웠다
올림픽에서 국가별 순위를 정하는 방법은 나라별로 조금씩 다르다. 한국은 금메달 비중을 최우선으로 두고 순위를 매긴다. 금메달 한 개만 따도 은메달 열 개를 딴 것보다 더 높은 순위가 되는 것이다. 이게 과연 맞는 것일까. 그래서 해 본 올림픽에 관한 두 번째 제안은 총 메달 획득 수로 종합순위를 매기자는 것이다.
이번 올림픽에서 세계 양궁사상 첫 3관왕이 된 광주여대 안산 선수는 군계일학(群鷄一鶴)이었다. 하지만 1~2점 차이로 승부가 갈리는 양궁 경기는 보는 내내 손에 땀을 쥐게 했다. 특히 슛오프(shootoff: 축구의 승부차기 같은 것)까지 가는 접전이 이어지면 더욱 가슴을 졸여야 했다. 그래서 해 보는 올림픽에 관한 세 번째 제안은 현재 열 개인 과녁의 동심원(同心圓)을 열다섯 개 정도로 늘리자는 것이다.(정중앙에 맞히면 15점) 이렇게 하면 선수들도 노력한 만큼 제 기량을 발휘함으로써 보다 공정하게 승자와 패자를 가릴 수 있지 않을까?
한국 태권도는 이번 대회를 ‘노 골드’로 마무리했다. 종주국 체면을 많이 구겼지만 그러나 노메달보다 더 아쉬운 것은 태권도의 재미가 사라졌다는 점이다. 태권도의 매력을 잃게 만든 주범은 판정 시비를 막기 위해 도입된 전자호구다. 그래서 해 보는 올림픽에 관한 네 번째 제안은 태권도 경기에서도 권투처럼 녹다운(knockdown)이나 케이오(KO) 제도를 도입하자는 것이다. 이렇게 기술적인 태권도를 보여 줄 수 있는 규정을 더해야 선수들이 몸을 맞댄 채 발바닥으로 상대 몸에 붙은 전자호구 센서만 찾아다니는 걸 막을 수 있겠기 때문이다.
이번 대회는 한국 사회가 올림픽의 새로운 의미를 찾는 과정이기도 했다. 메달과 관계없이 선수들이 보여 준 헌신과 투지에 사람들은 열광했다. 금메달 개수가 중요했던 과거와는 확연히 달라진 모습이었다. 우리는 무한경쟁 시대에 이긴 자만이 모든 걸 차지하는 승자 독식 사회에서 살고 있다. 하지만 선수들은 때론 질 수도 있고 힘들면 기권해도 괜찮다는 걸 보여 주었다.
남자 양궁 개인전 8강에서 고배를 마신 뒤 “충격적이지 않느냐?”란 취재진의 우문(愚問)에 우리 김우진 선수가 내놓았던 현답(賢答)으로 오늘의 이 글을 마무리한다. “내가 쏜 화살이고 한 번 쏜 화살은 돌아오지 않는다. 그게 삶이다. 어떻게 해피엔딩만 있을 수 있겠는가?”
/주필
미국 여자 수구 팀의 마거릿 스테픈스 선수는 중국과의 조별리그 경기 중 코뼈가 부러졌으나 포기하지 않았다. 미국 팀의 3연속 올림픽 금메달을 이끈 그녀는 이렇게 말했다. “부러졌더라도 상관없다. 정신은 살아 있고 이게 바로 올림픽이 있는 이유다. 내 부상이 잘 보여서 그렇지 다들 여기저기 멍들거나 상처투성이다.” 그렇다. 모두들 참으로 힘들게 훈련을 했을 것이다. 그렇게 5년간 열심히 준비한 우리 선수단은 코로나로 우울했던 국민에게 활력을 불어넣어 주었다.
올림픽에 관한 몇 가지 제안
그러고 보니 이번 올림픽에서는 4등으로 아깝게 메달을 놓친 종목이 많았다. 4등은 ‘황홀과 침통의 갈림길’이라고 했던가. 우리나라 대표팀은 무려 열두 개 종목에서 그런 ‘안타까운 4위’를 했다. 하지만 메달보다 더 값진 패배였다. 수영에서 아시아신기록을 세운 황선우, 여자역도의 이선미, 사격의 한대윤, 마루운동의 류성현. 이들 모두 승패보다 한계에 도전하는 열정과 노력이 더 빛났다. 과거 본선에도 가 보지 못했던 다이빙의 우하람은 이번에 메달 직전까지 도약했다.
하지만 예전처럼 고개를 떨구고 절망하는 4위가 아니었다. 후회 없이 만족하고 앞날을 기약하는 희망의 4위였다. 이들은 ‘한국 스포츠 역사를 새로 쓴 4위 쾌거’로 칭찬을 받기까지 했다. ‘근대5종’이라는 다소 생소한 경기에서 4위를 한 정진화는 ‘이런 종목도 있다’는 사실을 알게 해 주었다. 그는 ‘깜짝 동메달’을 딴 후배 전웅태와 함께 아쉬움과 기쁨의 눈물을 흘렸다.
이번 올림픽에서는 패배한 선수에게도 갈채를 보내는 국민의 여유가 그 어느 때보다 돋보였다. 금메달 숫자로 국가 순위가 정해지다 보니 은메달이나 동메달을 따고도 죄인처럼 고개를 숙여야 했던 과거와는 크게 달라진 모습이다.
그래도 아쉬움은 남는다. 4위에게는 별 혜택이 주어지지 않기 때문이다. 올림픽에서 남자 선수들의 군 면제 기준만 보더라도 동메달 이상을 획득해야 한다. 동메달과 노메달은 포상금뿐만 아니라 여러모로 차이가 난다. 그러니 정작 선수들은 괜찮다며 웃는데도 경기를 보는 관중 입장에서는 안타까울 수밖에 없다. 그래서 해 본 올림픽에 관한 첫 번째 제안은 조금 생뚱맞긴 하지만 목메달(나무메달)을 신설하자는 것이다.
1896년 그리스 아테네에서 근대 올림픽이 시작됐을 때 우승자는 올리브 월계관과 함께 은메달을 받았다. 2위에게는 동메달을 주었고 3위는 아무것도 받지 못했다. 1900년 제2회 프랑스 파리 대회 때는 트로피만 수여했다. 1904년 제3회 미국 세인트루이스 올림픽에서 비로소 처음으로 금메달이 등장했고 이때부터 1·2·3위에게 금·은·동메달을 주는 전통이 이어졌다.
모두 주인공, 덕분에 즐거웠다
올림픽에서 국가별 순위를 정하는 방법은 나라별로 조금씩 다르다. 한국은 금메달 비중을 최우선으로 두고 순위를 매긴다. 금메달 한 개만 따도 은메달 열 개를 딴 것보다 더 높은 순위가 되는 것이다. 이게 과연 맞는 것일까. 그래서 해 본 올림픽에 관한 두 번째 제안은 총 메달 획득 수로 종합순위를 매기자는 것이다.
이번 올림픽에서 세계 양궁사상 첫 3관왕이 된 광주여대 안산 선수는 군계일학(群鷄一鶴)이었다. 하지만 1~2점 차이로 승부가 갈리는 양궁 경기는 보는 내내 손에 땀을 쥐게 했다. 특히 슛오프(shootoff: 축구의 승부차기 같은 것)까지 가는 접전이 이어지면 더욱 가슴을 졸여야 했다. 그래서 해 보는 올림픽에 관한 세 번째 제안은 현재 열 개인 과녁의 동심원(同心圓)을 열다섯 개 정도로 늘리자는 것이다.(정중앙에 맞히면 15점) 이렇게 하면 선수들도 노력한 만큼 제 기량을 발휘함으로써 보다 공정하게 승자와 패자를 가릴 수 있지 않을까?
한국 태권도는 이번 대회를 ‘노 골드’로 마무리했다. 종주국 체면을 많이 구겼지만 그러나 노메달보다 더 아쉬운 것은 태권도의 재미가 사라졌다는 점이다. 태권도의 매력을 잃게 만든 주범은 판정 시비를 막기 위해 도입된 전자호구다. 그래서 해 보는 올림픽에 관한 네 번째 제안은 태권도 경기에서도 권투처럼 녹다운(knockdown)이나 케이오(KO) 제도를 도입하자는 것이다. 이렇게 기술적인 태권도를 보여 줄 수 있는 규정을 더해야 선수들이 몸을 맞댄 채 발바닥으로 상대 몸에 붙은 전자호구 센서만 찾아다니는 걸 막을 수 있겠기 때문이다.
이번 대회는 한국 사회가 올림픽의 새로운 의미를 찾는 과정이기도 했다. 메달과 관계없이 선수들이 보여 준 헌신과 투지에 사람들은 열광했다. 금메달 개수가 중요했던 과거와는 확연히 달라진 모습이었다. 우리는 무한경쟁 시대에 이긴 자만이 모든 걸 차지하는 승자 독식 사회에서 살고 있다. 하지만 선수들은 때론 질 수도 있고 힘들면 기권해도 괜찮다는 걸 보여 주었다.
남자 양궁 개인전 8강에서 고배를 마신 뒤 “충격적이지 않느냐?”란 취재진의 우문(愚問)에 우리 김우진 선수가 내놓았던 현답(賢答)으로 오늘의 이 글을 마무리한다. “내가 쏜 화살이고 한 번 쏜 화살은 돌아오지 않는다. 그게 삶이다. 어떻게 해피엔딩만 있을 수 있겠는가?”
/주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