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인이 빚은 명품 강진 막걸리, 영원한 서민의 술
유기농 막걸리·병영소주…강진 쌀로만 만든 전통주
‘식품명인 61호’ 김견식 병영양조장 대표 ‘60년 외길’
군, 병영성축제 연계·다양한 체험…6차산업 발돋움
2021년 07월 28일(수) 21:10
농업이 국가대표산업이었던 오랜 역사 속에서 궂은 농사일을 끝내고 마시는 막걸리 한 잔은 민초들에게 술이며 동시에 밥이었다. 마구 거르고 아무렇게나 걸렀다고 해서 ‘막걸리’라는 이름이 붙여졌다지만, 그렇다고 싸구려 술로만 취급하면 섭섭하다.

막걸리는 누가 뭐래도 한민족의 소울푸드였고 지금도 가벼운 주머니를 걱정하지 않고 마실 수 있는 든든한 대한민국 대표 곡주이기 때문이다.

막걸리는 삼국시대 수로왕에게 제사를 지내기 위해 빚었다는 요례를 그 첫 기록으로 보는 것이 일반적이다. 고려시대에는 청주, 탁주, 소주가 완성된 시기로 당시에도 탁주는 서민의 술로 여겨졌다.

집집마다 술을 담아 먹는 가양주 문화가 번성했던 조선을 지나 일제강점기에 접어들며 그 문화는 훼손되었지만 광복 이후 쌀 대신 수입 밀가루를 주원료로 한 막걸리가 유행했다. 90년대를 지나며 쌀막걸리가 다시 나타났지만 이렇다 할 반응을 얻은 건 아니었다.

하지만 최근 웰빙에 대한 흐름을 타고 유산균과 단백질이 풍부한 다양한 막걸리들이 제조되었고, 어떤 화학적 첨가물도 섞지 않은 막걸리도 등장했다. 최근에는 한 병에 10만원대를 호가하는 막걸리도 나왔다. 각 지역별로 다양한 맛과 개성을 갖춘 막걸리가 새롭게 등장하며 바야흐로 막걸리 춘추전국시대가 열리고 있다.

김견식(오른쪽) 명인과 전수자인 큰아들 영희씨가 나란히 앉아 정성스럽게 술을 빚는 작업을 하고 있다.
◇ 명인이 빚는 강진 전통 막걸리

막걸리에도 격조와 품위가 있다면 바로 김견식(83) 명인이 빚어내는 강진 ‘병영설성막걸리’를 두고 하는 말이다. 대한민국 ‘식품명인 제61호’로 지정된 김견식 병영양조장 대표는 열 여덟부터 술 만드는 일에 뛰어들었다. 어느새 여든을 넘긴 명인의 머리에는 하얀 서리가 내려앉았고 손에는 깊은 주름이 파였다.

60여년 동안 강진산 전통주 만들기 외길을 걸어온 김 명인은 병영양조장의 3대 전수자로 ‘오직 정직하고 깨끗하게 맛 좋은 술을 만드는 일’을 평생의 업으로 삼아왔다.

병영양조장은 해방 이후인 1946년 창립되었으며 현재 대표인 김 명인의 아들 김영희(54)씨가 가업을 이어 23년째 아버지와 함께 우리 술을 빚고 있다.

병영면은 조선시대 전라병영성이 위치한 군사 요충지로 병마절도사가 주둔하던 곳이다. 병영소주(보리소주)는 군사지역이라는 특성으로 일반인이 아닌 병사또가 즐겨마셨다는 유래가 있다. 병영소주는 시중에 나온 대부분의 상품인 희석식 소주가 아니라 보리쌀로 제조한 증류식 소주이다.

찰보리로 빚은 알콜 40%의 증류식 술인만큼 높은 알콜 도수에 비해 목 넘김이 부드럽고 뒷맛은 찰보리가 갖는 거칠고 순수한 향기를 느낄 수 있다. 특히 뒤끝이 깔끔하고 일반 양주보다 숙취감이 덜하여 술 애호가들로 부터 호평을 받고 있다.

병영소주는 전라남도가 전통주 품질 향상과 경쟁력 강화를 위해 개최한 ‘2021년 남도 전통주 품평회’에서 증류주 부문 최우수상을 받기도 했다.

강진 병영설성막걸리는 병영양조장에서 100% 국내산 햅쌀을 사용해 10~15일 정도 충분한 발효와 숙성 과정을 거쳐 만들어진다. 완숙주로 판매되어 숙취가 없고 트림이 없으며 뒷맛이 깔끔한 것이 특징이다. 막걸리에 요쿠르트의 100배에 달하는 유산균이 들어있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매출은 꾸준한 상승세를 타고 있다.

병영설성막걸리와 병영소주는 모두 병영양조장에서 빚어진다. 이밖에도 대한민국 최초 농림축산식품부 유기가공식품인증을 받은 유기농 막걸리 1호인 ‘설성 만월’ 막걸리는 그야말로 아스파탐, 삭카린, 등 인공 감미료가 일체 사용 하지 않고 쌀과 누룩으로만 제조된다.

특히 올해 새로 출시된 ‘만월’ 8% 술은 첨가제를 사용하지 않는 순수 유기농 막걸리다. 현재 유기농 쌀 20㎏ 한 포에 8만원 선, 일반 쌀은 5만원 선, 찹쌀은 7만원 선이다. 비싼 유기농 쌀을 선택한 이유는 소비자의 건강을 최우선으로 생각하기 때문이다. 가격은 소비자가 4000원 선으로 전통주치고는 저렴한 편이다.



◇ 전통 지키미, 지역과 상생으로

병영양조장은 전통주를 만들 때 수입쌀이나 주정용 정부미 사용 시 제조원가를 3분의 1 수준으로 낮출 수 있지만, 오직 강진군에서 재배되는 쌀만 사용해 전통주를 만든다. 이를 위해 소비되는 강진쌀은 연간 130여t으로 약 3억6000만원 어치이다.

병영양조장은 2014년 5월, 제2공장을 준공하고 찾아오는 관광객들을 맞이할 수 있는 소박한 공간을 마련해 간단한 체험과 시음을 할 수 있도록 했다.

강진군은 병영양조장을 남도답사 1번지 강진의 새로운 관광자원으로 활용하고 관광특구로 지정된 병영면 일대의 하멜기념관, 병영성, 병영마을 돌담장길들과 연계해 매출의 다각화를 돕는다는 계획이다.

여기에 올해는 코로나로 취소되었지만, 해마다 개최되는 전라병영성 축제와 병영양조장의 연계를 통해, 전통식품 명인의 전국적인 인지도를 높여나간다는 방침이다.

병영양조장의 전통주는 대한민국 우리술품평회 (일반증류수) 대상을 비롯해 국내에서 8회, 해외에서도 2019년 벨기에 국제식품품평회 은상을 포함, 4회에 걸친 다양한 수상 실적을 갖고 있다.

일본 수출은 2019년 한때 1억 5000만원까지 상승세를 타다가 2020년 코로나19 여파로 8000만원 선으로 감소했으며 올해는 일본의 주점이 일제히 문을 닫자 현재까지 1700만원의 수출을 기록하며 잠시 주춤세를 보이고 있다. 하지만 코로나가 물러가면 매출은 다시 올라갈 것으로 전망된다.

요즘 10만원대 고급 막걸리가 시중에 나돌아 제법 쏠쏠한 재미를 보고 있는 것에 대해 김 명인은 아쉬움을 표했다.

김 명인은 “막걸리 도수가 12% 또는 16%라 할지라도 원료곡이 1~2배쯤 더 들어갈 뿐이다. 가격은 서로가 영업 마케팅이기 때문에 말할 수는 없지만 막걸리는 서민의 술이요 농주로서 소비자가 부담없이 찾을 수 있는 술이어야 한다”고 말했다.

고부가 가치를 위한 앞으로의 생산 계획과 관련해서 김 명인은 “우리도 당장이라도 만들어 판매할 수 있지만, 무엇보다 좋은 원료를 사용해 대중소비자의 눈높이에 맞추는 원칙을 지켜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견식 명인은 오늘도 변함없이 양조장의 햅쌀을 고르고 있다. 강산이 여섯 번 변하는 동안 전통주를 지켜온 명인의 거친 손끝이 다시 바빠진다.

/강진=남철희 기자 choul@kwangju.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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