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문화·이야기의 보물 창고 '남도의 섬'
[박성천 기자가 추천하는 책] 남도의 섬과 바다 이야기 - 고석규 지음
2021년 04월 23일(금) 12:30
여수 거문도는 구한말 영국군이 2년간 불법 점령했던 역사를 지닌 섬이다. 거문도 중 고도. <민속원 제공>
섬에 대한 관점은 저마다 다르다. 역사, 문화, 관광, 언어, 자원 등 다양한 요인에 따라 각기 상이한 이미지를 떠올린다. 해안의 절경, 이색적인 풍습, 풍미가 깃든 음식 등 사시사철 색다른 매력을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해양의 시대, 특히 코로나 시대와 맞물려 섬은 새로운 아이콘으로 부상했다. 무엇보다 특유의 이야기가 널려 있어 무궁무진한 스토리텔링의 보고이기도 하다.

전남에는 여느 지역보다 독창적이고 다양한 섬들이 많다. 전국 섬의 60% 이상이 있을 만큼 곳곳에 산재한다. 어림잡아 2000여 개의 섬이 있는데 그 가운데 신안, 완도, 진도, 여수에 집중적으로 분포한다.

다양한 소재와 풍부한 스토리가 있는 전남의 섬 이야기를 다룬 책이 발간됐다. 고석규 전 목포대 총장이 펴낸 ‘남도의 섬과 바다 이야기’가 그것. 저자는 역사와 문화를 담은 이야기 창고로서의 섬과 바다를 주목한다.

저자는 전작 ‘역사 속의 시간 시간 속의 역사’에서 세계사적 관점에서 시간과 역사의 관계, 조선시대 역법과 역서, 다양한 시계 발달의 역사를 조명한 바 있다. 거시적인 틀에서 보면 시간은 섬과 바다를 포괄하는 개념으로도 수렴된다 하겠다.

이번 책에서 저자는 ‘역사’, ‘유배와 표류’, ‘섬과 사람들’을 카테고리로 남도의 섬과 바다를 들여다본다.

예로부터 서남해안 섬들은 한·중·일 삼국을 잇는 교류의 가교역할을 했다. 해로 교통이 활발하던 고대 시대일수록 바다는 최고의 운송로였다. 또한 해로와 접한 영산강은 문물과 문화가 교섭되고 전이되는 해상로의 길목이었다.

통일신라와 고려시대 때도 남도의 섬들은 해양의 거점이었다. 아울러 당시에는 편제도 바뀌었는데 고려 왕조는 통일신라에 비해 섬에 대한 파악을 확대했다. 그러다 고려 후기 왜구의 잦은 침략으로 공도(空島)정책을 펴면서 주민들은 생업을 잃었고 섬은 버려졌다.

그러나 이후 조선 후기에는 안정을 찾으면서 개척의 땅으로 섬이 부각됐다. 입도의 물결이 밀려왔고, 전라좌·우수영을 비롯한 수군진 역사는 남도를 이해하는 매개체로 전이된다. 특히 민중의 꿈을 담은 이상향으로서의 섬 이야기는 다양한 소재로 손색이 없다. 민초들은 진인이 나타나 현세의 고통을 해결해줄 것이라는 믿음을 견지했다.

‘유배와 표류’는 섬과 바다의 이야기 중에 빼놓을 수 없는 또 다른 키워드다. 저자에 따르면 유배를 당한 이들은 비단 양반 관료에만 국한되지 않았다. 나인, 관노, 거간꾼, 책장수에 이르기까지 천차만별이었다. 흑산도 유배인들은 대체로 당론(黨論)에 연루된 양반사족들이 많았지만 영조 때는 언급한 대로 신분과 직종이 다양했다.

그러나 유배인들이 남긴 사연은 그 자체로 ‘이야기의 창고’가 되었다. 다만 저자는 유배문화가 남도문화를 이루는 요소에 대해 다소 비판적 관점을 취한다. “오히려 유배인의 유교적 지식을 앞세워 남도의 문화적 위상을 높이려는 의존적 측면이 있다. 유배인들은 섬 사람들을 하대하고 섬의 문화를 경멸하는 쪽이었다”는 관점이 그러하다.

저자는 이런저런 인연으로 찾았던 압해도, 완도, 신지도, 진도에 관한 이야기도 들려준다. 서남해 섬들의 허브인 압해도, 호남제일번(湖南第一藩) 완도 가리포진, 육지와 다름없는 보배로운 섬 진도를 통해 보편성과 특수성에 주목했다.

저자는 말미에 “‘좁은 땅’은 비록 작지만 안전하고 안정된 수입을 제공한다. 반면에 ‘넓은 바다’는 위험하지만 큰 소득을 안겨 준다. 섬사람들은 이 모순되는 두 가지 자연에 적응하면서 독특한 삶을 꾸려 왔다. 그런 삶 속에서 다양하면서도 뜻 가득한 섬문화를 만들어냈다”고 의미를 부여한다.

<민속원·3만8000원>

/박성천 기자 skypark@kwangju.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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