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의 흔적…한옥 그대로 소박한 문화공간
살고 싶은 이야기가 담긴 집 <6>광주시 양림동 ‘가연지소(佳燕知素)’
정현주 독립큐레이터가 만든
갤러리·작업실·레지던시 공간
한옥 목수 박정근씨 리모델링
서까래·처마 등 한옥 옛 모습 살려
수납역할 나무계단·다락 천창 눈길
‘갤러리 포도나무’서 개관전 중
정현주 독립큐레이터가 만든
갤러리·작업실·레지던시 공간
한옥 목수 박정근씨 리모델링
서까래·처마 등 한옥 옛 모습 살려
수납역할 나무계단·다락 천창 눈길
‘갤러리 포도나무’서 개관전 중
![]() 한옥의 매력을 고스란히 간직한 가연지소는 하늘로 뚫린 천창과 다락 등이 인상적이다. |
지역에서 흥미로운 전시를 기획하는 정현주 독립큐레이터가 양림동에 작은 갤러리를 오픈했다는 소식을 들었다. 이름은 ‘갤러리 포도나무’, 개관전은 생태 전시 ‘새 봄 제비를 부르다-월간 잡초’(5월2일까지)였다. 지금까지 그녀가 기획했던 전시 등을 떠올리며 공간 이름도, 개관전도 참 어울린다는 생각이 들었다.
양림동 로터리 골목길에 자리한 갤러리를 보자마자 미소가 번졌다. 하얀 담벼락 불빛 사이로 보이는 갤러리는 아주 작았고, 한옥의 서까래가 그대로 드러나 있는 공간이 인상적이었다. 갤러리 옆 작은 문을 열고 들어서니 안쪽으로 또 다른 공간과 마당이 보였다. 집을 찬찬히 둘러보는데, 한옥의 운치를 그대로 살린 공간이며 다락 등이 흥미로웠다. 갤러리는 원래 상하방 자리였고, 갤러리 입구는 담벼락이었다는 설명이 뒤따랐다. 갤러리 취재 대신, 진행하고 있는 ‘집’ 시리즈에 소개하고픈 생각이 들어 2주 후 다시 만남을 청했다.
취재날은 마침 정 씨와 함께 아이디어를 내고 고민하며 집을 고친 한옥 목수 박정근씨도 함께였다. “한옥을 고쳐 사용하는 게 워낙 손이 많이 가는 일”인터라 여전히 손 볼 곳이 많았고, 박 목수는 이날도 작업중이었다. 첫 방문 때 인상적이었던 건 서까래 사이로 난 ‘천창(天窓)’이었다. 거실, 화장실 등 모두 4개였던 천창이 이날 보니 하나 더 늘어 있었다. 집은 계속 변신중이다.
1965년에 지어진 집을 구입한 건 지난 2019년 12월이었다. 할머니 혼자 화단을 가꾸며 살던 집은 낡았지만 무엇보다 아늑하고 편안한 느낌이 좋았다. 처마 밑의 제비집, 마당에 심어진 포도나무도 마음에 들었고 남향집이라는 점도 좋았다.
정 씨는 원래 작은 작업실을 가지려 했다. 조그마한 갤러리도 함께였으면 싶었다. 한옥을 구입한 지역이 요즘 예술가들의 발걸음이 잦은 양림동이 되면서 작가들이 머무는 레지던시 공간, 작은 토론회와 행사 등이 열리는 문화공간으로 꾸미면 어떨까하는 생각을 했고, 그에 맞춰 리노베이션이 진행됐다. 소박한 문화공간 ‘가연지소(佳燕知素)’의 탄생이다.
“처음부터 한옥을 구입하려했던 건 아니었어요. ‘공간’을 원했는데 그게 한옥이었죠. 서까래도 예쁘고 세월의 흔적이 담긴 공간을 수리하는 건 어떨까 생각이 들었어요. 허물고 새 집을 짓는 것보다는 이 집이 갖고 있는 원래의 성격을 그대로 살려보자는 마음이었죠.”
화가, 동화작가를 꿈꿨던 박 목수는 뒤늦게 전남대에서 미술을 전공했고 2014년 정 씨의 기획으로 개인전을 열면서 인연을 맺었다. 한옥을 고친다고 생각했을 때 박 목수가 떠오른 건 당연했다. 정 씨와 남편이 다양한 아이디어를 내면, 박 목수가 최선을 다해 구현해내는 ‘의미있는 협업’이 이뤄졌다.
“한옥을 리모델링하는 건 어려워요. 서울 북촌·가회동 등에서 한옥 짓는 일을 많이 도왔는데 목수님들은 늘 비슷한 방식으로 작업을 해요. 정해신 방식에서 벗어나는 걸 꺼려하죠. 저는 두 분과 오래 전부터 알고 있던 터라 아이디어를 나누고, 과제를 내 주시면 추리하며 어떻게든 만들어내 보려 했죠.(웃음)”
작은 마당을 갖고 있는 ‘가연지소’는 대지 면적은 49평, 건평 18평 규모다. 집은 필요에 맞게 몇차례 고친 흔적들이 있었다. 옛 모습을 찾아주는 게 우선이었다. 안방이었던 자리를 뜯어내니 주춧돌이 나타났고 그 형태를 그대로 살렸다. 오랜 논의를 거쳐 동선을 고려하며 공간을 배치했다.
박 목수는 일을 할 때마다 “집이 나에게 말을 거는 듯했다”고 말한다. 곰팡이가 슨 벽지를 뜯어내고, 수직과 수평을 맞추며 구조를 안정화 시키면서 집이 살아있는 유기체 같다는 느낌도 받았다.
그는 한옥을 고치며 몇가지 원칙을 세웠다. 구조적인 부분에서 튼실하게 작업할 것, 한옥의 골조를 최대한 살릴 것, 기능적인 부분을 살리되, 미적 감각을 갖출 것 등이다. 최근에는 한옥 리모델링을 할 때 구조 강화를 이유로 철골조를 활용하는 경우가 많은데, 단단한 나무를 잘만 짜 맞추면 튼튼한 구조를 갖출 수 있다.
서울식 한옥집은 예쁘지만 특징이 없다. 이 집은 이 집만이 갖고 있는 틀이 있으니 거기에 맞춰 새 생명을 불어넣어주자 싶었다. 옛날 나무가 갖고 있는 느낌을 그대로 살리고, 집의 기둥도 각기 다른 기법으로 만들었다. 집은 무엇보다 이용하는 사람이 편리해야 한다. 기능적으로 수납공간을 늘리고, 동선 등도 신경 썼다. 미적 감각을 살리기 위해 갤러리와 작업실을 잇는 문을 제외하고는 모두 원목을 사용했고, 건물이 원래 가지고 있는 모습들을 노출해 아름답게 꾸미려했다. 나뭇결을 살리려 페인트로 덮인 부분을 모두 갈아냈고, 회벽 작업도 진행했다. 슬레이트로 얼기설기 지어졌던 마당 옆 작은 방은 당초 창고로 쓰려했다 박 목수의 아이디어로 멋진 숙소가 됐다.
천창과 함께 정 씨 부부가 원한 공간은 ‘다락’이었다. 한옥은 수납공간이 부족한 데다 갤러리를 운영하다 보면 아무래도 이런 저런 물건을 놓아둘 필요가 있어서였다. 수납박스 역할을 하는 나무 계단을 올라가면 다락에도 천창이 뚫려 있다. 주인장들의 말처럼, 계단을 오르면 푸른하늘에 닿는 기분이 든다. 천창이 뚫리면서 이곳은 ‘물건’의 공간에서 ‘사람’의 공간으로 또 한번 변신했다.
세월의 흔적이 남아 있는 이 집에는 오래된 물건들이 적절히 자리를 잡았다. 커다란 탁자는 천안의 교회에서 쓰던 나왕 소재 긴의자로 만들었고 자투리 판자는 문틀과 갤러리 선반을 만드는 데 활용했다. 삐그덕대는 나무바닥은 학교 교실과 강당에서 쓰던 마룻바닥을 구입해 설치했다.
집 안 곳곳에는 건축주의 아이디어가 담겼다. 대문을 열고 집안으로 들어올 때까지 비를 맞지 않았으면 해서 플라스틱 지붕을 얹었고, 한옥에서 가장 문제가 많은 기와 대신 박 목수가 살고 있는 남원 농가처럼 지붕은 컬러 강판으로 마무리했다.
집 이름 ‘가연지소(佳燕知素)’는 한창 공사중에 이곳을 찾은 지인이 제비집에서 어미 새가 새끼를 키우는 것을 보고 지어준 이름이다.
“‘소(素)는 ‘도덕경’에서 중요한 의미예요. ‘소박하다’, ‘본바탕이 곱게 다듬어지지 않은’ ‘투박한’ 이런 의미를 담고 있죠. 전 이 집에 그런 의미가 드러나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양림동에 둥지를 틀게 되면서 저에게는 이 공간이 너무 과하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래서 ‘함께’ 쓰는 공간으로 확장하면 어떨까 싶었죠. 갤러리가 있으니 참여작가와 연구자들이 함께 쓰는 열린 공간이어도 좋겠다 생각했죠. 워크숍이나 세미나도 열고 마당에서는 동화책을 읽고 낭독회를 여는 등 소규모 행사도 열자 싶었습니다.”
철학 책을 집필하고, 동화 관련 번역·기획일도 진행하는 정 씨는 갤러리 운영과 함께 작가들과 이런 저런 프로젝트를 펼쳐보려 한다.
취재를 하는 동안 천창으로 보이는 푸른 하늘은 점점 어둑해졌다. ‘겉보다 속이 알찬 집’,‘평범하고 소박하고 자연스러운 집’ 처마밑 제비집 사연을 안고 있는 ‘가연지소’가 꿈꾸는 것이다.
/글·사진=김미은 기자 mekim@kwangju.co.kr
※다양한 이야기를 품고 있는 ‘집’을 찾습니다. 독자들과 함께 세상에 하나밖에 없는, 자신의 ‘집’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고 싶은신 분은 이메일(mekim@kwangju.co.kr) 로 연락 주시길 바랍니다.
![]() 갤러리 포도나무에서는 개관 기념전으로 '새 봄 제비를 부른다'전이 열리고 있다 |
![]() 광주시 남구 양림동 가연지소는 한옥을 리모델링한 문화공간으로 정현주 독립큐레이터의 작업실과 갤러리 포도나무, 레지던시 공간 등으로 이뤄져 있다. |
정 씨는 원래 작은 작업실을 가지려 했다. 조그마한 갤러리도 함께였으면 싶었다. 한옥을 구입한 지역이 요즘 예술가들의 발걸음이 잦은 양림동이 되면서 작가들이 머무는 레지던시 공간, 작은 토론회와 행사 등이 열리는 문화공간으로 꾸미면 어떨까하는 생각을 했고, 그에 맞춰 리노베이션이 진행됐다. 소박한 문화공간 ‘가연지소(佳燕知素)’의 탄생이다.
“처음부터 한옥을 구입하려했던 건 아니었어요. ‘공간’을 원했는데 그게 한옥이었죠. 서까래도 예쁘고 세월의 흔적이 담긴 공간을 수리하는 건 어떨까 생각이 들었어요. 허물고 새 집을 짓는 것보다는 이 집이 갖고 있는 원래의 성격을 그대로 살려보자는 마음이었죠.”
화가, 동화작가를 꿈꿨던 박 목수는 뒤늦게 전남대에서 미술을 전공했고 2014년 정 씨의 기획으로 개인전을 열면서 인연을 맺었다. 한옥을 고친다고 생각했을 때 박 목수가 떠오른 건 당연했다. 정 씨와 남편이 다양한 아이디어를 내면, 박 목수가 최선을 다해 구현해내는 ‘의미있는 협업’이 이뤄졌다.
“한옥을 리모델링하는 건 어려워요. 서울 북촌·가회동 등에서 한옥 짓는 일을 많이 도왔는데 목수님들은 늘 비슷한 방식으로 작업을 해요. 정해신 방식에서 벗어나는 걸 꺼려하죠. 저는 두 분과 오래 전부터 알고 있던 터라 아이디어를 나누고, 과제를 내 주시면 추리하며 어떻게든 만들어내 보려 했죠.(웃음)”
작은 마당을 갖고 있는 ‘가연지소’는 대지 면적은 49평, 건평 18평 규모다. 집은 필요에 맞게 몇차례 고친 흔적들이 있었다. 옛 모습을 찾아주는 게 우선이었다. 안방이었던 자리를 뜯어내니 주춧돌이 나타났고 그 형태를 그대로 살렸다. 오랜 논의를 거쳐 동선을 고려하며 공간을 배치했다.
![]() 갤러리 포도나무 입구. |
그는 한옥을 고치며 몇가지 원칙을 세웠다. 구조적인 부분에서 튼실하게 작업할 것, 한옥의 골조를 최대한 살릴 것, 기능적인 부분을 살리되, 미적 감각을 갖출 것 등이다. 최근에는 한옥 리모델링을 할 때 구조 강화를 이유로 철골조를 활용하는 경우가 많은데, 단단한 나무를 잘만 짜 맞추면 튼튼한 구조를 갖출 수 있다.
서울식 한옥집은 예쁘지만 특징이 없다. 이 집은 이 집만이 갖고 있는 틀이 있으니 거기에 맞춰 새 생명을 불어넣어주자 싶었다. 옛날 나무가 갖고 있는 느낌을 그대로 살리고, 집의 기둥도 각기 다른 기법으로 만들었다. 집은 무엇보다 이용하는 사람이 편리해야 한다. 기능적으로 수납공간을 늘리고, 동선 등도 신경 썼다. 미적 감각을 살리기 위해 갤러리와 작업실을 잇는 문을 제외하고는 모두 원목을 사용했고, 건물이 원래 가지고 있는 모습들을 노출해 아름답게 꾸미려했다. 나뭇결을 살리려 페인트로 덮인 부분을 모두 갈아냈고, 회벽 작업도 진행했다. 슬레이트로 얼기설기 지어졌던 마당 옆 작은 방은 당초 창고로 쓰려했다 박 목수의 아이디어로 멋진 숙소가 됐다.
천창과 함께 정 씨 부부가 원한 공간은 ‘다락’이었다. 한옥은 수납공간이 부족한 데다 갤러리를 운영하다 보면 아무래도 이런 저런 물건을 놓아둘 필요가 있어서였다. 수납박스 역할을 하는 나무 계단을 올라가면 다락에도 천창이 뚫려 있다. 주인장들의 말처럼, 계단을 오르면 푸른하늘에 닿는 기분이 든다. 천창이 뚫리면서 이곳은 ‘물건’의 공간에서 ‘사람’의 공간으로 또 한번 변신했다.
세월의 흔적이 남아 있는 이 집에는 오래된 물건들이 적절히 자리를 잡았다. 커다란 탁자는 천안의 교회에서 쓰던 나왕 소재 긴의자로 만들었고 자투리 판자는 문틀과 갤러리 선반을 만드는 데 활용했다. 삐그덕대는 나무바닥은 학교 교실과 강당에서 쓰던 마룻바닥을 구입해 설치했다.
집 안 곳곳에는 건축주의 아이디어가 담겼다. 대문을 열고 집안으로 들어올 때까지 비를 맞지 않았으면 해서 플라스틱 지붕을 얹었고, 한옥에서 가장 문제가 많은 기와 대신 박 목수가 살고 있는 남원 농가처럼 지붕은 컬러 강판으로 마무리했다.
집 이름 ‘가연지소(佳燕知素)’는 한창 공사중에 이곳을 찾은 지인이 제비집에서 어미 새가 새끼를 키우는 것을 보고 지어준 이름이다.
“‘소(素)는 ‘도덕경’에서 중요한 의미예요. ‘소박하다’, ‘본바탕이 곱게 다듬어지지 않은’ ‘투박한’ 이런 의미를 담고 있죠. 전 이 집에 그런 의미가 드러나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양림동에 둥지를 틀게 되면서 저에게는 이 공간이 너무 과하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래서 ‘함께’ 쓰는 공간으로 확장하면 어떨까 싶었죠. 갤러리가 있으니 참여작가와 연구자들이 함께 쓰는 열린 공간이어도 좋겠다 생각했죠. 워크숍이나 세미나도 열고 마당에서는 동화책을 읽고 낭독회를 여는 등 소규모 행사도 열자 싶었습니다.”
철학 책을 집필하고, 동화 관련 번역·기획일도 진행하는 정 씨는 갤러리 운영과 함께 작가들과 이런 저런 프로젝트를 펼쳐보려 한다.
취재를 하는 동안 천창으로 보이는 푸른 하늘은 점점 어둑해졌다. ‘겉보다 속이 알찬 집’,‘평범하고 소박하고 자연스러운 집’ 처마밑 제비집 사연을 안고 있는 ‘가연지소’가 꿈꾸는 것이다.
/글·사진=김미은 기자 mekim@kwangju.co.kr
※다양한 이야기를 품고 있는 ‘집’을 찾습니다. 독자들과 함께 세상에 하나밖에 없는, 자신의 ‘집’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고 싶은신 분은 이메일(mekim@kwangju.co.kr) 로 연락 주시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