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낮은’ 모습으로 역사와 자연을 품다 아름다운 조화를 이루다
(17) 경주솔거미술관
건축가 승효상 설계 2015년 개관
‘한국화 거장’ 박대성 화백
작품·소장품 기증 매년 기획전
6월 20일까지 ‘서화, 조응’전
‘내가 풍경이 되는 창’ 인증샷 성지
2021년 02월 08일(월) 10:00
빈자의 미학’을 추구하는 건축가 승효상씨의 작품인 솔거미술관은 엑스포공원의 아평지 인근에 들어서 있다. 지하 1층, 지상 2층 규모로 공원에 자리한 입지 조건을 살려 자연의 일부처럼 ‘낮은’모습으로 설계됐다. <사진=솔거미술관 제공>
‘아평지 옆 미술관’

근래 천년고도 경주를 찾은 관광객들에게 핫플레이스로 떠오른 곳이 있다. 지난 2015년 문을 연 경주솔거미술관이다. 코로나19로 예전만 못하지만 입소문이 퍼지면서 방문객들의 발길이 이어지고 있다. ‘사회적 거리두기’ 이전만 해도 주말과 휴일에는 ‘인생샷’을 남기기 위해 몰려드는 관람객들로 길게 줄을 서는 진풍경이 연출되기도 했다. 특히 미술관 제3전시관의 벽면을 틔워 인근의 연못 ‘아평지’를 실내에서 감상할 수 있도록 한 통유리창은 그 자체가 작품이다. 실제로 20~30대 젊은층들의 인스타그램에는 솔거미술관을 배경으로 찍은 사진들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솔거미술관은 경주의 랜드마크로 불리는 세계문화엑스포공원 안에 자리하고 있다. 경주엑스포공원은 석굴암, 불국사 등 우리나라 최고의 문화유산들은 물론 다양한 학습콘텐츠를 품고 있는 곳. 이 때문에 경주시민들에게는 나들이 장소로, 초·중학생들에겐 체험학습장으로, 외지인들에겐 관광지로 인기가 많다.

엑스포공원은 엑스포 기념관, 경주타워, 아사달 조각공원, 시간의 정원 등이 들어서 있어 이정표를 따라가지 않으면 자칫 길을 잃기 십상이다. 그래서 정문에서 들어서면 어느 방향으로 발걸음을 옮길 지 선택해야 한다. 이들 이정표 가운데 유독 빨간색이 선명한 ‘솔거미술관’으로 향한다.

엑스포공원에서 솔거미술관까지는 도보로 약 20분 정도. 자칫 지루할 수 있는 거리지만 전혀 그렇지 않다. 미술관으로 이어지는 길에는 아름다운 꽃과 나무에서 부터 예술적 감각이 묻어나는 설치 작품들이 많아 발걸음이 즐겁다. 마치 산책하듯 공원의 풍광을 즐기면서 이정표를 따라가다 보면 언덕위에 자리한 솔거미술관이 자태를 드러낸다. 위압적인 외관을 자랑하는 여타 미술관과 달리 자연환경과 조화를 이루고 있는 아담한 외관이 인상적이다.

솔거미술관의 포토존인 제3전시관의 ‘내가 풍경이 되는 창’. 일명 ‘움직이는 그림’으로 불리는 이 곳은 아평지가 한눈에 들어온다.
미술관 앞에 서면 ‘경주솔거미술관’이라고 적힌 하얀색 간판이 눈에 들어온다. 그 뒤로 아평지 연못과 나무, 꽃들이 마치 한폭의 풍경화처럼 펼쳐져 있다. 자연과 예술, 그리고 건축이 빚어낸 말 그대로 ‘예술’이다. 이름에서 짐작할 수 있듯 황룡사 벽에 노송도(老松圖)를 그린 것으로 알려진 신라 화가 솔거(率居)의 이름에서 따왔다.

솔거미술관은 ‘빈자의 미학’을 추구하는 건축가 승효상씨의 ‘작품’이다. 대지 4천880㎡에 건축면적 1천136㎡, 연면적 1천506㎡(지하 1층, 지상 2층) 규모로 공원 안에 들어선 입지 조건을 살려 자연의 일부처럼 ‘낮은’모습으로 설계됐다. 각 전시관의 작품들을 관람하면서 물 흐르듯이 자연스럽게 이어지는 동선 설계는 압권이다. 특히 나무판자의 문양을 그대로 살린 벽면은 독특하다.

솔거미술관은 경북도와 경주시가 지원한 지역 최초의 공립미술관이다. 지난 2008년 한국화의 거장 박대성(1945~)화백이 본인의 작품과 소장품을 경주시에 기증하겠다고 밝히면서 건립이 추진됐다. 2012년 경주세계문화엑스포공원내 아평지 인근 1만4천880㎡에 국비 30억(도비포함)과 시비 20억원을 들여 지난 2011년 착공됐다.

솔거미술관은 한국화단의 거장 소산 박대성 화백의 기증작품들을 모태로 건립된 경주 최초의 공립미술관이다.
경주시는 (재)엑스포 조직위에 보조금 위탁형태로 미술관 건립은 물론 미술관의 운영도 맡겼다. 착공 초기 미술관의 명칭을 ‘박대성 미술관’으로 명명하려고 했지만 지역 미술계의 반발로 현재의 이름으로 바뀌었다. 미술관이 박대성 개인 미술관이 아닌 ‘솔거미술관’이란 이름처럼 신라의 미술정신을 이어가는 전당이 되어야 한다는 뜻에서다.

소산(小山) 박대성 화백은 어릴 때 그림 그리기를 무척 좋아했다. 그의 친지가 탁월한 재능에 놀라 그림을 권장한 게 화업의 길로 들어선 계기가 됐다. 특히 친지는 솔거의 어린 시절과 노송도 얘기 등을 들려주며, 화가로서의 성장 과정에 용기와 희망을 주었다고 한다. 박 화백도 소나무를 좋아해 그의 작품에 유난히 소나무가 많다.

박 화백은 지난 1990년 대 이후 경주의 남산 자락에 머물면서 소나무 중심으로 작품 활동을 하고 있다. 석굴암, 불국사, 남산 불적 등 신라의 대표적 문화유산들은 예전과 다른 시각에서 그의 화폭을 통해 새롭게 부활했다.

박 화백은 어린 시절 어려운 환경속에서 독학으로 화법를 배우고 소나무를 주로 그리는 등 솔거와 공통점이 많다. 이 때문에 ‘경주의 솔거’로 부르는 이들도 있다. 특히 박 화백이 기증한 ‘솔거의 노래’는 솔거의 노송도를 연상케 하는 수묵화로 굵은 소나무들 사이에 자연석이 서 있고, 연못에 고고한 기품을 자랑하는 학 2마리가 그려져 있다.

솔거미술관이 짧은 기간내에 전국적인 명성을 얻게 된 데에는 박 화백의 공이 크다. 지난 2015년 작품 830점을 솔거미술관에 내놓은 박 화백의 통큰 기증으로 미술관은 다른 미술관과 차별화된 컬렉션을 갖추게 된 것. 미술관은 박 화백의 기증작들을 중심으로 매년 기획전을 개최해 지역민들은 물론 전국의 미술애호가들로부터 호평을 받고 있다.

지난달 26일 개막한 특별기획전 ‘서화(書畵), 조응(調應)’(6월20일까지 전시)은 대표적인 예다. 전국 최초로 한국화의 필법을 미디어 아트로 구현한 이번 전시는 전통적인 한국화의 정서와 제작 방법, 글과 그림이 주는 조형적 아름다움을 조명한다. 솔거미술관을 탄생시킨 박 화백의 다양한 작업을 작품과 영상으로 보여줘 마치 그의 작업실을 직접 들여다보는 듯한 분위기를 연출했다. 전시작품은 신작 40점을 포함해 총 44점. 독창적인 정서와 필법이 담긴 박 화백의 서예작품, 명필가의 글을 필사한 임서(臨書)작품 등이 처음으로 선보인다.

제1전시관에서 펼치는 미디어아트 ‘필법’은 박 화백의 작품세계와 고뇌하는 모습, 붓의 움직임을 생동감 있는 영상으로 구현하는 등 예술에 대한 열정과 철학 등을 만날 수 있다. 제2전시관에는 조선시대 문인 추사 김정희와 통일신라시대 서예가 김생 등 역사에 기록된 명필가의 자료들이 전시돼 있다.

뭐니뭐니해도 솔거미술관의 ‘얼굴’은 제3전시관. SNS에서 인증샷 성지로 유명한 ‘내가 풍경이 되는 창’이 있는 이 공간은 한쪽 벽면에 통유리 창을 내어 바깥 풍경이 한눈에 들어오도록 설계됐다. 유리창 쪽으로 다가가면 직사각형의 프레임 안으로 연꽃이 피어 있는 ‘아평지’와 주변의 산, 나무들이 펼쳐진다. 이 때문에 관람객들이라면 누구나 ‘움직이는’ 한폭의 풍경화 앞에서 탄성을 터뜨리게 된다. 제4전시관에서는 천장에서부터 바닥을 가로지르며 펼쳐놓은 20m길이의 대작 임서작품이 눈길을 끈다.

/경주=박진현 문화선임기자 jhpark@kwangju.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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