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이야기] ‘빼빼로 데이’ 단상
![]() 이 정 한국은행 인재개발원 교수 |
매년 11월 11일은 빼빼로 데이(day)다. 연인들은 초콜렛을 주고 받으며 사랑을 확인한다. 소개팅에 실패한 솔로들은 그저 부러울 뿐이다. 세계 최대 온라인 쇼핑몰 알리바바는 매년 이 불쌍한 솔로들에게 대대적인 온라인 할인 판매를 실시한다. 이름하여 ‘광군제’. 2009년 시작하여 매년 폭발적으로 성장한다. 금년에도 11월 11일 하루에만 83조 원 어치를 팔아 치웠다. 기아자동차 연간 매출의 두 배에 이르는 천문학적 성장세다.
알리바바의 급성장을 바라보며 표정 관리가 안 되는 사람은 알리바바의 최대 주주인 소프트뱅크 손정의 회장이다. 손정의의 지분은 34%인 반면 창업주인 마윈의 지분은 8%에 불과하다. 재주는 마윈이 부리고 돈은 손정의가 가져가는 꼴이다. 역사상 가장 성공적인 투자로 평가받는 이 투자가 결정되는 시간은 불과 5분이었다고 한다.
알리바바의 창업 초창기인 1999년, 직원 35명에 불과하고 변변한 사업 모델도 없었던 창업주 마윈은 손정의에게 투자를 요청하고, 투자 제의 5분 만에 손정의는 투자를 결정한다. 훗날 손정의는 “당시 마윈의 비즈니스 모델은 별 볼일 없었지만 그의 빛나고 강한 눈, 말하는 스타일과 카리스마는 중국 청년들을 끌어모을 수 있다고 생각했다”고 투자 결정 이유를 밝혔다. 투자 유치 과정에서 사업 모델도 중요하지만, 투자자를 감동시키는 발표(presentation) 형식이 얼마나 결정적인지 보여주는 일화다.
삼국지에서 유비 삼형제(유비·관우·장비)는 도원결의(桃園結義)를 통하여 어지러운 세상을 평정하겠다고 맹세하지만, 정작 빈털터리였다. 그런데 마을을 지나가던 재력가 상인인 장세평과 소쌍은 유비의 진정성 있고 겸손하며 조리 있는 말솜씨에 반해, 말 50필과 금은 500냥 등을 제공한다. 우리에게 익숙한 유비의 쌍고검, 관우의 청룡언월도, 장비의 장팔사모창은 이 첫 종잣돈 덕택에 비로소 탄생하게 된다. 유비의 멋진 언변이 훗날 난세의 영웅을 만든 스타트업 투자를 이끌어낸 것이다.
정주영이 울산 미포조선 건설을 위해 해외 자금을 유치한 일화는 영화보다도 더 극적이다. 현대는 1970년대 초 박정희 대통령의 지시로 그룹의 명운을 건 조선소를 건설하기로 한다. 당시 우리나라는 가난한 개발 도상국이었으니 조선소 건립 자금의 해외 유치가 불가피했다. 런던의 투자자는 정주영이 아무리 면밀한 사업 계획서와 정부 보증서를 보여 줘도 이름 없는 변방 가난한 나라의 사업가를 믿지 않았다.
정주영의 마지막 승부수는 바지 주머니에 들어있는 500원짜리 지폐였다. “이 지폐에 그려진 배는, 거북선이라는 철로 만든 함선입니다. 대한민국은 영국보다 300년이나 앞선 1500년대에 거북선을 만들어냈고, 일본의 전함을 궤멸시킨 역사가 있습니다. 한국이 가지고 있는 무궁무진한 잠재력이 이 돈 안에 담겨있으니 재고해 주시기 바랍니다.” 런던의 투자자는 정주영의 엉뚱한 아이디어에 마음이 흔들렸다. 아이러니하게도 훗날 세계 최강 조선 산업의 밀알이 된 종잣돈은 사업 계획서나 정부 보증도 아닌 ‘500원짜리 지폐’였던 것이다.
광주·전남 지역 경제의 구조적 취약성은 산업화 과정에서 굴지의 제조 업체가 우리 지역으로 유치되지 못한 이유가 크다. 수도권과 격지인데다 서울~부산 간 개발 축에서도 한 발짝 벗어난 지리적 불리함 때문에 투자 유치가 쉽지는 않았을 것이다.
즉 입지적 핸디캡 때문에 사업 계획서의 경제성이나 효율성만으로는 타 지역보다 비교 우위를 만들 수 없다. 투자 유치가 어려울수록 당연히 사업 모델의 혁신성을 높여야 하겠지만, 사업 내용을 투자자에게 설명하는 과정에서도 고객 감동형 아이디어를 짜내야 한다.
알리바바 마윈의 강렬한 눈빛, 유비의 진정성 있는 말솜씨, 정주영의 500원짜리 지폐는 투자 유치 과정에서 사업 모델 자체보다 발표 형식의 기발함이 때로는 유효함을 역설하고 있다.
알리바바의 창업 초창기인 1999년, 직원 35명에 불과하고 변변한 사업 모델도 없었던 창업주 마윈은 손정의에게 투자를 요청하고, 투자 제의 5분 만에 손정의는 투자를 결정한다. 훗날 손정의는 “당시 마윈의 비즈니스 모델은 별 볼일 없었지만 그의 빛나고 강한 눈, 말하는 스타일과 카리스마는 중국 청년들을 끌어모을 수 있다고 생각했다”고 투자 결정 이유를 밝혔다. 투자 유치 과정에서 사업 모델도 중요하지만, 투자자를 감동시키는 발표(presentation) 형식이 얼마나 결정적인지 보여주는 일화다.
정주영이 울산 미포조선 건설을 위해 해외 자금을 유치한 일화는 영화보다도 더 극적이다. 현대는 1970년대 초 박정희 대통령의 지시로 그룹의 명운을 건 조선소를 건설하기로 한다. 당시 우리나라는 가난한 개발 도상국이었으니 조선소 건립 자금의 해외 유치가 불가피했다. 런던의 투자자는 정주영이 아무리 면밀한 사업 계획서와 정부 보증서를 보여 줘도 이름 없는 변방 가난한 나라의 사업가를 믿지 않았다.
정주영의 마지막 승부수는 바지 주머니에 들어있는 500원짜리 지폐였다. “이 지폐에 그려진 배는, 거북선이라는 철로 만든 함선입니다. 대한민국은 영국보다 300년이나 앞선 1500년대에 거북선을 만들어냈고, 일본의 전함을 궤멸시킨 역사가 있습니다. 한국이 가지고 있는 무궁무진한 잠재력이 이 돈 안에 담겨있으니 재고해 주시기 바랍니다.” 런던의 투자자는 정주영의 엉뚱한 아이디어에 마음이 흔들렸다. 아이러니하게도 훗날 세계 최강 조선 산업의 밀알이 된 종잣돈은 사업 계획서나 정부 보증도 아닌 ‘500원짜리 지폐’였던 것이다.
광주·전남 지역 경제의 구조적 취약성은 산업화 과정에서 굴지의 제조 업체가 우리 지역으로 유치되지 못한 이유가 크다. 수도권과 격지인데다 서울~부산 간 개발 축에서도 한 발짝 벗어난 지리적 불리함 때문에 투자 유치가 쉽지는 않았을 것이다.
즉 입지적 핸디캡 때문에 사업 계획서의 경제성이나 효율성만으로는 타 지역보다 비교 우위를 만들 수 없다. 투자 유치가 어려울수록 당연히 사업 모델의 혁신성을 높여야 하겠지만, 사업 내용을 투자자에게 설명하는 과정에서도 고객 감동형 아이디어를 짜내야 한다.
알리바바 마윈의 강렬한 눈빛, 유비의 진정성 있는 말솜씨, 정주영의 500원짜리 지폐는 투자 유치 과정에서 사업 모델 자체보다 발표 형식의 기발함이 때로는 유효함을 역설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