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극으로 재현된 오월
![]() 최 유 준 전남대 호남학과 교수 |
오월 40주년이 저물어 가고 있다. 많은 뜻깊은 행사들이 코로나 여파로 인해 계획대로 진행되지 못한 아쉬움을 남겼지만, 오월 40주년을 기념하여 제작된 두 편의 대규모 음악극이 여러 어려움 속에서도 초연될 수 있어 다행이다. 먼저 뮤지컬 ‘광주’가 지난 10월 9일 서울 홍익대학교 대학로 아트센터 대극장에서 첫 공연을 시작으로 11월 8일까지 한 달간 이어진다. 오는 12월에는 광주 공연도 예정돼 있다.
작년 말 미리 시연회를 통해 선보이기도 했던 광주시립오페라단의 오페라 ‘박하사탕’은 광주문화예술회관에서 지난 10월 8일에 콘서트 오페라 형식으로 무관중 공연 녹화를 마친 뒤 10월 31일 유튜브를 통해서 공개 초연되었다. 이 공연의 유튜브 무료 공개는 11월 7일까지 이어진다고 한다.
뮤지컬 ‘광주’의 경우 총 40곡이나 되는 뮤지컬 넘버가 담긴 오페라적 규모의 대형 뮤지컬이다. 광주문화재단이 수년 전부터 벌이고 있는 ‘임을 위한 행진곡 대중화·세계화 사업’의 일환으로 제작 지원한 작품으로 ‘임을 위한 행진곡’의 주제 선율이 뮤지컬 전체의 음악적 동기로 사용되고 있다. 최근 음악극 ‘적로’와 오페라 ‘1945’로 창작 음악극 분야에서 크게 주목받고 있는 작곡가 최우정이 음악을 맡았다. 필자는 10월 11일 낮 공연을 보았다. 라이브로 연주되는 촘촘하게 짜인 오케스트라 음악과 함께 대형 뮤지컬로서 손색없는 무대 장치, 무엇보다 스타급 배우들의 뛰어난 연기와 노래 실력은 현 단계 한국 뮤지컬 수준의 정점을 보여 주는 듯했다.
음악적인 측면과는 별도로 극의 서사와 연출의 면에서는 아쉽게 느껴지는 부분이 적지 않았다. 아직 역사적 사실로서 엄밀히 고증되지 못한 ‘편의대’(오월 당시 계엄군이면서 사복을 입고 시민군을 교란하거나 선동하는 임무를 수행했다고 하는 비정규 부대)를 모티브로 삼아 계엄군과 시민군 사이에서 갈등하는 박한수라는 인물을 주인공으로 설정한 것이 처음부터 무리수가 아니었나 싶다.
말하자면 뮤지컬 ‘레 미제라블’의 형사 자베르가 작품 전체의 주인공인 셈인데, 무엇보다 극의 도입부에서부터 ‘편의대가 광주 시민군의 무기 탈취를 부추겼다’고 전제하면서 무대 위 서사의 전개는 적잖이 복잡해지고 말았다. 이 복잡한 서사를 감동적으로 풀어내기 위해서는 제작진의 좀 더 많은 고민이 필요할 듯하다. 비폭력 시위를 중시하는 이른바 ‘촛불 이후’의 세대에게 ‘총을 든 시민군’을 무작정 영웅시하는 것은 대중적 공감을 불러일으키기 어렵다는 판단이 오월 음악극 연출의 딜레마로 작용하는 듯하다.
오페라 ‘박하사탕’은 이러한 고민에 대한 한 가지 답변을 제시해 주었다. 이미 검증된 원작 영화 ‘박하사탕’을 바탕으로 했지만, 원작의 특징인 시간이 거꾸로 흐르는 서사 구조를 무대 위에서 공연되는 음악극으로 재구성하기 위해서는 새로운 작품을 창작하는 것과 다를 바 없는 연출상의 고민이 따랐을 것이다. 새롭게 창작된 대목들에서 주목할 만한 부분은 여성성을 통해 폭력의 대안을 상상하는 것이었다.
이는 주인공 영호 외의 핵심 인물이 모두 여성이라는 점, 예컨대 1987년 상황에서 영호에 의해 고문을 당하는 명숙, 1980년 오월에 영호의 오발탄에 맞아 숨지는 ‘함지박’이라는 인물도 모두 여성이라는 점에서 두드러지게 나타난다. 명숙은 광주의 대학생이지만 오월 현장에서 피 흘리는 영호를 치료해 주기도 하며, 함지박은 시민군과 시위대에 주먹밥을 만들어 주던 여성이다. 실제의 성별이 중요하다기보다는 남성적 폭력성에 대항하는 여성성이 오월이라는 사건의 근원적 표상이며 이 시대에 던지는 메시지라고 말하는 듯하다.
무관중 콘서트 오페라 형식으로, 그것도 코로나 방역을 위해 두 공간으로 분리하여 연주하는 어려움이 있었음에도 연주자와 가수 그리고 합창단의 음악은 유튜브를 통해 생생하게 전달되었다. 1980년대 말과 1990년대 초반 ‘민족음악론’을 제기하며 음악가의 사회 참여에 앞장서기도 했던 거장 이건용(작곡가)의 오월에 대한 헌사가 오롯이 음악적으로 새겨진 기념비적 작품이라 할 만했다.
지난 40년간 오월을 다룬 소설이나 영화 가운데에는 오랜 기간 대중들에게 회자되고 향수되는 명작들이 있는 반면, 뮤지컬이나 오페라와 같은 음악극으로는 지속적으로 공연되는 작품이 사실상 없었다. 서사적 재현 양식들이 갖는 기억과 기념의 의미 그리고 음악이 발휘하는 집단 기억과 공감 형성의 힘을 함께 고려해 볼 때 아쉬운 일이었다. 올해 초연된 두 편의 음악극 작품이 그 빈자리를 채울 수 있기를 기대한다.
뮤지컬 ‘광주’의 경우 총 40곡이나 되는 뮤지컬 넘버가 담긴 오페라적 규모의 대형 뮤지컬이다. 광주문화재단이 수년 전부터 벌이고 있는 ‘임을 위한 행진곡 대중화·세계화 사업’의 일환으로 제작 지원한 작품으로 ‘임을 위한 행진곡’의 주제 선율이 뮤지컬 전체의 음악적 동기로 사용되고 있다. 최근 음악극 ‘적로’와 오페라 ‘1945’로 창작 음악극 분야에서 크게 주목받고 있는 작곡가 최우정이 음악을 맡았다. 필자는 10월 11일 낮 공연을 보았다. 라이브로 연주되는 촘촘하게 짜인 오케스트라 음악과 함께 대형 뮤지컬로서 손색없는 무대 장치, 무엇보다 스타급 배우들의 뛰어난 연기와 노래 실력은 현 단계 한국 뮤지컬 수준의 정점을 보여 주는 듯했다.
말하자면 뮤지컬 ‘레 미제라블’의 형사 자베르가 작품 전체의 주인공인 셈인데, 무엇보다 극의 도입부에서부터 ‘편의대가 광주 시민군의 무기 탈취를 부추겼다’고 전제하면서 무대 위 서사의 전개는 적잖이 복잡해지고 말았다. 이 복잡한 서사를 감동적으로 풀어내기 위해서는 제작진의 좀 더 많은 고민이 필요할 듯하다. 비폭력 시위를 중시하는 이른바 ‘촛불 이후’의 세대에게 ‘총을 든 시민군’을 무작정 영웅시하는 것은 대중적 공감을 불러일으키기 어렵다는 판단이 오월 음악극 연출의 딜레마로 작용하는 듯하다.
오페라 ‘박하사탕’은 이러한 고민에 대한 한 가지 답변을 제시해 주었다. 이미 검증된 원작 영화 ‘박하사탕’을 바탕으로 했지만, 원작의 특징인 시간이 거꾸로 흐르는 서사 구조를 무대 위에서 공연되는 음악극으로 재구성하기 위해서는 새로운 작품을 창작하는 것과 다를 바 없는 연출상의 고민이 따랐을 것이다. 새롭게 창작된 대목들에서 주목할 만한 부분은 여성성을 통해 폭력의 대안을 상상하는 것이었다.
이는 주인공 영호 외의 핵심 인물이 모두 여성이라는 점, 예컨대 1987년 상황에서 영호에 의해 고문을 당하는 명숙, 1980년 오월에 영호의 오발탄에 맞아 숨지는 ‘함지박’이라는 인물도 모두 여성이라는 점에서 두드러지게 나타난다. 명숙은 광주의 대학생이지만 오월 현장에서 피 흘리는 영호를 치료해 주기도 하며, 함지박은 시민군과 시위대에 주먹밥을 만들어 주던 여성이다. 실제의 성별이 중요하다기보다는 남성적 폭력성에 대항하는 여성성이 오월이라는 사건의 근원적 표상이며 이 시대에 던지는 메시지라고 말하는 듯하다.
무관중 콘서트 오페라 형식으로, 그것도 코로나 방역을 위해 두 공간으로 분리하여 연주하는 어려움이 있었음에도 연주자와 가수 그리고 합창단의 음악은 유튜브를 통해 생생하게 전달되었다. 1980년대 말과 1990년대 초반 ‘민족음악론’을 제기하며 음악가의 사회 참여에 앞장서기도 했던 거장 이건용(작곡가)의 오월에 대한 헌사가 오롯이 음악적으로 새겨진 기념비적 작품이라 할 만했다.
지난 40년간 오월을 다룬 소설이나 영화 가운데에는 오랜 기간 대중들에게 회자되고 향수되는 명작들이 있는 반면, 뮤지컬이나 오페라와 같은 음악극으로는 지속적으로 공연되는 작품이 사실상 없었다. 서사적 재현 양식들이 갖는 기억과 기념의 의미 그리고 음악이 발휘하는 집단 기억과 공감 형성의 힘을 함께 고려해 볼 때 아쉬운 일이었다. 올해 초연된 두 편의 음악극 작품이 그 빈자리를 채울 수 있기를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