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간 복지’를 위한 공간
2020년 09월 09일(수) 00:00
[박홍근 포유건축 대표·건축사]
도심 속 아파트 숲에서 살지만, 여름밤 도시 외곽으로 나가면 개구리 소리를 들을 수 있다. 어떤 이는 울고 있다고 하고, 다른 이는 노래 부른다 한다. 자신이 처한 상태에 따라서 감정 이입이 된 것이니, 느끼는 것은 각자의 몫이다. 개구리는 수컷이 소리를 낸다. 짝짓기 위해 암컷을 간절히 부르는 구애의 노래다. 수컷의 생존과 존재 이유이다.

우리의 이런저런 비유에 개구리가 등장한다.(개구리 자신은 억울할지 모르겠다) ‘우물 안 개구리’ ‘냄비 속 개구리’ 이야기는 많은 생각할 거리를 준다. 우물 안 개구리라 할 때는 시야가 좁거나, 생각이 짧다는 것을 간접적으로 표현할 경우 쓰곤 한다. 우물 속에서만 살았다면 보는 것은 이끼나 작은 돌멩이, 그곳을 날아다니는 곤충, 물과 우물 구멍으로 보이는 동그란 하늘밖엔 모를 것이다. 이런 공간에서 잘살 수 있다면 자기만족이니, 나쁠 것 없다고 본다.

그러나 냄비 속 개구리는 다르다. 가열하거나 냉각하지 않은 물에 개구리를 넣고 겁을 주지 않는다면 개구리는 그 물속에서 나오지 않고 머물러 있다. 냄비를 서서히 가열하여 온도를 높여 가도 흥미롭게도 그대로 있다고 한다. 개구리는 변온 동물이다. 일정 온도까지는 서서히 체온을 올리면서 견디지만, 어느 정도 온도가 올라가면 무기력해지면서 결국 냄비에서 나올 기력마저도 없이 죽는다. 냄비에서 뛰쳐나오는 것을 방해하는 것이 아무것도 없는데도 개구리는 냄비 속에서 그냥 죽어간다는 것이다.

왜 그럴까? 그 이유는 온도의 변화를 감지하는 기능이 환경의 급격한 변화에는 곧바로 인지하여 반응하지만, 서서히 조금씩 변화하는 나쁜 환경, 즉 온도 상승에 적응하려고 하다가 자신도 모르게 죽어간다는 것이다.

우리네 삶의 환경은 어떠한가? 혹시 우물 안 개구리처럼 그냥 만족하고 살면 생명에는 지장 없는 그런 생활 환경일까? 아니면 냄비 속 개구리처럼 나쁘거나, 나빠지는 환경인지도 모르면서 지금까지 살아온 것처럼 적응하며 사는 생활 환경인지 되돌아볼 때다.

아무리 좋은 삶의 환경도 며칠 그곳에 있다 보면 감동은 약해지고 당연한 것으로 여겨진다. 좋은 환경도 일상이 되면 좋다는 것을 느끼지 못한다. 이후 조금이라도 안 좋은 환경에 접했을 땐 그 차이를 금방 느낄 수 있지만. 좋지 않은 환경도 마찬가지다. 며칠간 그곳에 머물다 보면 곧 적응하는 게 인간이다. 자신의 몸이 조금씩 병들어간다는 것도 모르고, 냄비 속 개구리처럼 적응해 간다.

좋은 환경의 공간은 사치가 아니다. 복지다. ‘공간 복지’로 접근해야 한다. 좋은 공간을 시민에게 제공하는 것은 건강한 삶을 위하는 공간 복지라 할 수 있다. 개인이나 기업들이 만드는 공간은 자신들의 역량에 따라 공간을 꾸민다. 그러나 이용엔 제한적이다. 관공서나 공공단체에서 조성하는 공공 건축은 우리의 삶 가까이 있으니 달라져야 한다. 기능과 안전은 물론, 주변과 조화로우면서도 아름다운 형태와 멋진 공간을 경험할 수 있는 공공 건축을 만나면 너무나 행복하다. 사적인 공간은 향유하는데 비용이 들거나 어렵지만, 공공의 공간은 그래도 일정 영역은 누구나 접근하여 즐길 수 있다. 좋은 환경의 공공 건축들이 많아야 하는 이유다.

‘공공 건축’이라 하면 보통은 시청이나 구청, 행정센터, 법원, 경찰서 등 공공 부문에 종사하는 사람들이 근무하는 시설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어린이집, 초·중·고등학교, 우체국, 보건소, 도서관, 미술관, 복합 커뮤니티센터 등등. 시민들의 일상생활이 이루어지고 우리의 삶 속에 많은 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곳이 공공 건축이다. 다수 시민이 획일적이거나 열악한 공간에 살면서 마음과 정신이 메말라 갈 때, 인근의 공공 건축에서 색다른 좋은 환경을 향유할 수 있다면 이는 건축과 공간으로 복지 혜택을 주는 ‘공간 복지’가 된다.

공간 복지의 효과는 다른 복지 혜택과 다르게 천천히 나타난다. 그렇지만 소리 소문 없이 일상에 스며들며 많은 시민에게 삶의 질을 높여 준다. 공간 복지를 위한 공간들이 일상생활 속 가까이 있어야 하는 이유다. 필자도 공간 만드는 작업에 일정 역할을 하고 있다. 너는 얼마나 잘하고 있느냐고 묻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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