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꾸는 2040] 욕망을 도외시하는 정책
2020년 08월 31일(월) 00:00
정준호 위민연구원 이사·변호사
철학자 니체는 인간의 욕망을 ‘푸줏간 앞의 개’로 비유했다. 푸줏간의 고기가 먹고 싶어 개는 호시탐탐 푸줏간 안을 노리지만 푸줏간 주인의 칼이 무서워서 정작 들어가지는 못하고 그 앞에서 한참을 머뭇거리고만 있다. 이러한 모습이 현 사회의 구성원들이 가지고 있는 욕망과 닮아 있다는 뜻이다.

모든 사회구성원은 욕망을 가지고 있다. 더 좋은 직업을 가지고 싶고, 더 좋은 집에서 살고 싶어 한다. 그러나 한정된 재화의 특성상 보다 더 좋은 집과 환경 등은 경쟁에서 승리한 사람들만이 차지할 수 밖에 없다. 이러한 경쟁 과정을 제도적으로 관리하는 것이 실질적인 정부 정책 중 대다수를 차지한다. 실제로 ‘규제’라는 이름의 정책은 푸줏간의 칼처럼 인간의 욕망을 제도적으로 다스리고 과도한 경쟁을 막기 위한 취지에서 시작되는 것이 대부분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사회 구성원들은 정부가 ‘경쟁’이라는 제도를 어떻게 관리하고 보장하는지에 대해서 관심이 있을 수 밖에 없다. 현 정부의 과거 선거 캠페인 중 가장 호응이 높았던 “기회는 평등하게 주어질 것이고, 과정은 공정할 것이며, 결과는 정의로울 것”이라는 말은 ‘경쟁’을 바라보는 구성원의 시각이 어떠한 지를 잘 보여 주고 있다.

이번 정부의 최대 쟁점이 되어버린 부동산 문제 역시 기본적으로 욕망과 경쟁에 관련이 있다. 신축 아파트에 살고 싶어하고 교육 인프라가 잘 갖추어진 강남 지역에서 살고 싶은 것은 결코 삐뚤어진 욕망이 아니다. 다만 한정된 재화인 수도권 주택을 누리는 것에 대한 대가가 크다면 각자의 여건에서 이 경쟁에 참여하지 않을 수도 있다. 그러나 지금의 부동산 문제는 비단 강남 지역에만 국한된 문제가 아니다. 수도권 전역의 주택 가격이 급상승했고, 전세 제도는 결국 소멸될 것이라는 예상이 우세하다.

수도권의 주거 문제는 결혼 및 출산 문제와 직접적으로 연결되어 있다. 며칠 전 통계청이 발표한 인구주택 총조사에서는 수도권 인구가 최초로 전국인구 수의 절반을 넘어선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2017년 기준 광주 지역 감소 인구의 95% 상당이 수도권으로 이사한 것으로 나타났다. 좋은 학교와 일자리를 찾아서 고향을 떠난 젊은이들이 변변한 주택을 구하기 어려운 상황에서는 그 누구도 쉽게 결혼과 출산을 선택하지 않는다. 현재 지방 출신의 젊은이들은 본인이 동의하지도 않은 시점에서 어렵게 구한 일자리의 급여 절반 이상을 앞으로 월세로 지출해야 한다는 것에 큰 당혹감을 느끼고 있다. 주변에서 대출과 증여로 무리하게 내 집 장만을 하는 것과 대비해 착실하게 저축을 하고 기다린 대가가 좌절감으로 이어지고 있는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여당 구성원들은 전혀 모범을 보이지 않고 있다. 다주택을 처분하겠다고 서약하고 공천을 받은 김홍걸 의원은 강남의 주택을 차남에게 증여하고 전월세 인상률 제한을 발의하기 전 시세에 맞게 전세값을 올려 새로운 세입자를 구했다. 나부터 수도권 변두리에서 대중교통으로 출퇴근하면서 주거 문제의 현실을 체감하겠다는 사람은 단 한 명도 없다.

조국 전 법무부장관에게 가장 많은 비난이 가는 부분은 “모두가 용이 될 수 없다. 개구리 붕어 가재로 살아도 살기 좋은 개천을 만들자”라는 언행이다. 이상적이고 틀린 단어하나 없지만 현재 젊은이들은 모두 부모로부터 나보다는 나은 삶을 살기 위해 열심히 공부하고 착실하게 급여를 저축하라는 말을 듣고 살았다. 당장 보기에도 개천물이 맑아지는 시간이 오래 걸릴 것 같으니 사다리라도 타고 올라가서 맑은 공기를 마시면서 살아 보겠다는 욕망에 대해 그 사다리 위에 서 있는 사람이 기다리면 개천물이 맑아질 것이라고 채근하는 모습을 그 누가 공감할 수 있을까.

이제 정부는 폭발 직전인 정서적인 불만을 직시해야 한다. 특히 양극화가 심해질수록 계층 상승을 추구하는 욕망이 있음을 이해하고 이를 달래면서 사회 문제화되는 것을 막는 정서적인 접근법이 필요하다. 정책학은 사회과학의 영역이지 인문학이나 자연과학이 아니라는 지적이 있다. 고상한 철학도 아닌, 현상에만 대응하는 대증요법적 땜질 처방도 아닌, 구성원의 심리 기제를 잘 파악해 욕망의 물꼬를 유도하는 기법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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