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어쩌다 ‘기후 악당’이 되었나
2020년 07월 29일(수) 00:00
논설실장·이사
올 것이 왔다. 장마가 끝나자마자 무더위가 덮칠 것이라는 기상청의 예보다. 해마다 이맘때면 내 마음 속에선 한 가지 갈등이 생긴다. “이제라도 에어컨을 살 것인가, 말 것인가?” 무등산 자락에 자리한 데다 동향(東向)인 우리 아파트는 또한 고층이어서 제법 시원한 편이다. ‘땡볕 아래서도 사흘 동안 서 마지기 피사리만 하면 더위를 모른다’는 옛말처럼, 과거엔 이열치열로 한 일주일만 버티면 여름을 날 수 있었다. 한데 몇 년 전부터 사정이 달라졌다. 폭염과 열대야가 기승을 부리는 날이 부쩍 늘어난 것이다.

기상청의 ‘기상 자료 개방 포털’에 들어가 보면 최근 얼마나 더워졌는지 한눈에 알 수 있다. 지난 2018년 하루 최고 기온이 33도 이상인 폭염 일수는 전국 평균 31.5일로, 통계 작성 이래 가장 많았다. 열대야 일수도 17.7일로 그동안의 기록을 경신했다. 평년의 폭염 일수가 고작 열흘, 열대야는 닷새 가량이니 염제(炎帝)의 위세가 얼마나 맹렬했는지 가늠할 수 있다.

특히 광주의 폭염 일수는 2016년 31.0일, 2017년 29.0일에 이어 2018년에는 무려 43일로 전국 최다를 기록했다. 열대야 역시 2016년 27.0일, 2018년 30.0일에 이어 지난해 22.0일로 전국 평균을 훌쩍 뛰어넘었다. 그동안 국내에서 가장 더운 도시로 이름을 떨쳤던 대구를 제치고 광주가 새로운 ‘폭염 도시’로 급부상한 것이다. 그래 광주를 아프리카에 빗대 ‘광프리카’라고들 하는 것일 게다. 과연 그럴 만하다.

‘더위 먹은 소 달만 보아도 헐떡인다’는 속담처럼 낮 더위도 주체할 수 없는데, 밤이 되어도 기온이 내려가지 않으니 당해 낼 재간이 없다. 급기야 정부는 2년 전 폭염을 자연 재난으로 지정하기에 이르렀다. 사실 폭염은 몰라서 그렇지 기상 재해 중에서 인명 피해를 가장 많이 유발하는 재앙이다. 통계청의 사망 원인 통계에 따르면 2018년 열사병 등 온열 질환으로 숨진 사람은 160명이었다. 여기에 인구통계상 그해 폭염이 절정을 이룬 7~8월의 ‘초과 사망자’는 7000명을 넘겼다. 말 그대로 ‘살인적인 더위’였던 셈이다.



온실가스 배출량 증가 최고



기상학자들은 날로 심화되는 폭염의 원인으로 지구 온난화와 그로 인한 기후 변화를 꼽고 있다. 주범은 이산화탄소다. 산업혁명 이후 석탄과 석유 등 화석연료를 주 에너지원으로 사용하면서 세계 경제는 전례 없는 풍요를 누렸다. 하지만 이로 인한 이산화탄소 배출량의 급격한 증가로 지구의 기온이 상승하고 있다. 온실가스 증가는 또한 극심한 폭염·한파·홍수·태풍·폭우·폭설·가뭄 등의 이상 기후, 그리고 대기오염 악화 및 생태계 파괴를 초래하고 있다.

실제로 산업화가 급속하게 진행된 19세기 말 이후 대기 중 이산화탄소 농도는 40% 이상 증가했고, 지구의 평균 기온은 1도가량 올랐다는 게 과학계의 정설이다. 게다가 기온 상승 속도는 갈수록 빨라지고 있다. 이처럼 뜨거워지는 지구를 방치하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유엔 ‘기후변화에 관한 정부 간 협의체’(IPCC) 보고서를 보자. 보고서는 지구 평균 기온이 산업화 이전에 비해 2도 상승할 경우 10억~20억 명이 물 부족을 겪고, 생물종의 20~30%가 멸종할 것으로 전망한다. 만약 3도가 오르면 생명체 대부분은 심각한 생존 위기에 내몰리게 된다고 한다.

이 때문에 지난 2018년 인천에서 열린 IPCC 총회에서 세계 195개국의 과학자들은 ‘지구온난화 1.5도 특별 보고서’를 만장일치로 채택했다. 평균 온도 상승을 1.5도 이내로 억제하면 그나마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다며 전 지구적 대응을 주문한 것이다. 이를 달성하려면 세계 각국은 2050년까지 탄소 배출량을 제로(0)로 만들어야 한다.

절체절명의 위기 상황에서 우리 정부는 지금 어떻게 대응하고 있을까. 환경부가 집계한 2017년 우리나라의 온실가스 배출량은 역대 최다인 7억 914만 톤으로, 세계 7위 수준이다. 배출량 증가율도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최고다. 특히 석탄 발전 비중은 지난해 기준 40.8%로 OECD 국가 평균(22.2%)보다 두 배 가까이 높다.

기후 정책도 국제 기준에 한참 뒤떨어져 있다. 지난해 말 국제민간단체가 평가한 전 세계 주요 국가의 기후변화대응지수(CCPI) 순위에서 한국은 61개국 중 58위였다. 국제사회에서 우리나라를 ‘기후 악당’(climate villain)이라며 손가락질하고 있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환경단체들은 정부가 최근 발표한 ‘그린 뉴딜’도 속빈 강정이라고 비판한다. 정부의 정책에는 기후 위기 대응의 핵심인 온실가스 감축 목표조차 빠져 있기 때문이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올해는 폭염에 코로나19의 대유행까지 겹쳤다. ‘이중 재난’의 상황이다. 전문가들은 감염병도 기후 변화와 밀접하다고 보고 있다. 지구 온난화와 산림 파괴로 서식지를 잃은 박쥐 등 야생 동물과 인간의 접촉이 늘어나면서 가축을 매개로 바이러스가 전파되고 있다는 것이다. 스티븐 소더버그 감독이 영화 ‘컨테이전’의 말미에서 보여 준 바이러스 전파 과정도 이와 다르지 않다.

바이러스는 백신과 치료제가 개발되면 어느 정도 통제가 가능해질 것이다. 반면 기후 변화는 인류와 생명체를 절멸시킬 수도 있다. 지금 당장 지구에 대한 학대를 중단하지 않으면 여섯 번째 대멸종을 맞게 될 것이라는 경고가 잇따르는 이유다. 반가운 것은 ‘폭염 도시’ 광주시가 국내 최초로 2045년까지 ‘탄소 중립’(탄소 순배출이 0인 상태) 실현과 에너지 자립도시로의 대전환을 선언한 점이다. 정부 정책보다 훨씬 앞선 것이지만 예산과 시민 참여 등 실행력을 확보하는 것이 과제다.



폭염·감염병 부르는 온난화



우리나라는 세계 10위권의 경제 대국으로 성장한 데 이어 최근 모범적인 코로나 방역으로 G7 회의에 초청될 만큼 선진국 반열에 올랐다. 그만큼 책임과 의무도 커졌다. 따라서 K방역 성공에 안주할 게 아니라 공존의 지혜와 지속 가능한 발전을 모색해야 할 때다. 정부와 국회는 온실가스와 석탄 발전의 조기 감축, 재생에너지 확대를 위한 명확한 목표치와 실행 계획을 서둘러 제시하고, 화석연료에 의존하는 경제 산업구조를 개편하기 위해 머리를 맞대야 한다. 우리가 끝내 ‘기후 악당’으로 남을 것인가, 포스트 코로나 시대 탈탄소 선도 국가가 될 것인가, 세계가 지켜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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