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병렬 서창문화예술협 이사장·김진희 목담미술관 관장 부부
서창에서 서창을 그리다
역사·예술 품은 서창은 삶의 탯자리
2016년 ‘목담미술관’도 개관
28일까지 광주전남여성작가회 기획전
“서창문화 발굴·아카이빙…서창 알릴 것”
2020년 02월 17일(월) 15:00
서창문화예술협회 이병렬 이사장과 김진희 목담미술관 관장 부부가 작가 10명이 서창을 그린 공동작품 앞에서 포즈를 취했다.
임진왜란 당시 순국한 의병장 김세근 선생을 모신 학산사, 시인·묵객들이 풍류를 즐기던 만귀정, 극락강 마지막 뱃사공인 박호련 시혜불망비(施惠不忘 碑), 서창 들노래 만드리, 극락강 낙조와 억새밭, 진평제 안개···.

광주 서창이 고향인 이병렬(67) 서창문화예술협회 이사장은 서창의 아름다운 자연과 문화, 역사적 흔적들이 사라지고 주목을 받지 못하는 게 못내 아쉬웠다. 역시 서창에서 태어난, 김세근 11대손 아내 김진희(64)목담미술관(광주시 서구 개산길 33-7) 관장 역시 마찬가지였다.

이정주 작 ‘봄풍경’
영산강 상류 기름진 곡창지대에서 거둬들인 세곡을 저장해 놓은 창고가 있어 ‘무진 고을의 서쪽 창고’라는 의미로 ‘서창’(西倉)이라 불린 서창이지만 지금은 광주의 가장자리에 위치한 평범한 농촌지역으로 인식되고 있다. 두 사람은 역사와 예술이 흐르던 이곳을 문화예술인들과 문화를 좋아하는 사람들이 함께 새롭게 ‘발견해내면’ 어떨까 생각하기 시작했다.

두 사람은 2016년부터 서창문화예술협회를 조직, ‘서창을 그리다’를 주제로 서창문화탐방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아내 김씨가 사립미술관 목담미술관을 개관한 것이 큰 힘이 됐다. 아무래도 ‘미술관’이라는 하드웨어가 있으니 성과물들을 펼쳐놓기에도 좋았다. 작가들은 서창의 곳곳을 탐방하며 마음에 담아둔 이야기를 다양한 작품으로 표현했고 미술관에서 관람객들과 만났다. 그리고 지난 2018년 서창문화예술협회가 사단법인으로 공식 출범했고 예술인들의 다양한 의견을 모아 ‘찾고 싶은 서창의 문화탐방 12경’도 정했다.

“나이 60이 넘다보니 내가 태어나고 자랐던 이곳의 흔적을 남기고 싶다는 생각이 들더라구요. 귀소본능이라고 할까요. 한 때는 서구의 절반이 서창이었는데 지금은 많이 알려지지 않았죠. ‘서창을 그리다’는 우리의 슬로건이자 컨셉, 로고송 같은 것입니다.”

광주시청에서 정년퇴임한 이병렬 이사장은 ‘삶의 탯자리’인 서창을 좀 더 깊숙이 들여다보고, 더 많은 사람에게 알리고 싶다는 생각이 그 출발이었다고 말했다.

협회는 매번 프로와 아마추어 작가 30여명이 함께 서창 탐방에 나선다. 봉산재, 용두동 지석묘, 서창 전통한옥문화체험관, 극락강 자락, 벽진마을 당산나무 등 서창의 곳곳을 함께 찾았고 감흥을 작품으로 표현해냈다. 2016년 ‘서창을 그리다’ 첫 전시에는 구만채·노정숙 등 23명의 작가가 참여했다. ‘타래를 풀다’를 주제로 열린 2017년에는김익모·김진희 작가 등 45명이 함께했다. 2018년에는 몽골작가 바산잘 초지자브, 광주의 강선호·서현호 작가가 20일간 목담미술관 레지던시 공간에 머물며 서창을 소재로 작업하고 전시회를 열었다.

협회는 ‘서창을 그리다’ 타이틀로 기획 초대전도 꾸준히 열고 있다. 정정임 작가의 ‘매월동 이야기, 그룹 ‘www.현대미술가회’ 초대전, 프랑스 작가 모히즈 마일하흐 판화 초대전, 프랑스에서 활동중인 광주 출신 조인자 초대전, 광주여성시각미술협회교류전 등을 진행했다.

오는 28일까지 열리는 ‘서창문화의 발견과 예술 해석’전은 광주·전남여성작가회를 초청한 기획이다. 황경숙 작가의 ‘풍요로운 대지의 여신’은 드넓은 서창 들녘이 제공하는 풍부한 먹을거리와 자식에 대한 무한한 애정을 쏟아내는 어머니의 사랑, 쉼없이 흘러가는 극락강에서 영감을 얻은 작품이며 이정주 작가는 화사한 서창마을의 봄날 이야기를 화려한 색감과 역동적 붓터치로 펼쳐낸 ‘봄풍경’을 전시중이다. 그밖에 강숙자·고정희·김귀덕·김성숙 작가 등 40여명이 참여했다.

목담미술관 전경
목담미술관은 지난 2016년 문을 열었다. 줄곧 가정주부로 지내던 김 관장은 24년 전 나무를 심고 키우기 시작했다. 본격적으로 조경사업을 진행하면서 2만여평에 나무를 키우고 있으며 나무병원도 운영하고 있다. 그녀는 “나무를 심으며 새로운 나를 만들어갔다”고, “새 소리를 듣고, 나무를 심으며 자연의 평화로움을 느끼고 치유됐다”고 말한다. 취미로 그림을 그리던 그녀는 호남대 서양화과에서 석사 학위를 받고 늘 부족하다는 생각에 조선대 미술대 박사 과정(현대조형미디어과)을 수료했다.

“우리미술관은 제가 하나하나 신경 써 만들어간 공간이예요. 넓은 땅에 나무를 심을 때도 대충 심지 않고, 멋진 그림을 그린다는 생각으로 해왔어요. 나무를 심는 것은 대지예술을 하는 것이라 생각하거든요. 자연의 순환을 몸으로 느끼는 과정이기도 하구요. 오랜 꿈이었던 미술관을 만들면서 공간을 어떻게 ‘작품화’ 할까 고민이 많았죠. 이 미술관은 ‘내 인생의 작품’이라는 생각으로 많은 노력을 했고, 또 운영을 잘 하려고 많은 공부를 했습니다. 일체의 지원 없이 사비로 미술관을 운영하는 게 힘들기는 하지만요.(웃음).”

부부를 만나 인터뷰를 한 미술관 입구 공간에는 레지던시에 참여했던 몽골 작가 바산잘 초지자브가 재해석한 ‘2018 서창에서’ 작품이 걸려 있다. 또 10명의 아마추어 작가가 서창 문화탐방을 끝내고 작가의 상상력으로 재해석해 공동 작업한 작품도 눈에 띈다.

협회는 앞으로 회화와 함께 사진, 문학, 문화해설 등 좀 더 ‘인문학적 해석’을 가미한 다양한 방면으로 활동방향을 넓히고 프로 예술가의 전문적 시선과 평범한 사람들의 순수한 시선이 함께 어우러지는 ‘서창을 그리다’를 만들어갈 계획이다.

“함께 탐방을 나선 사람들이 “와, 이런 좋은 곳을 모르고 살았네요”하며 좋아하실 때 뿌듯하죠. 미술관 운영, 조경사업 등 우리 부부가 해야 할 일은 많지만 가장 마지막까지, 가장 행복하게 할 수 있는 일은 ‘서창을 그리다’ 프로젝트라고 생각합니다. 서창 문화 예술을 발굴하고 아카이빙하는 게 저희의 일이죠.”(김관장)

목담미술관은 1층의 커피숍과 제 1전시실, 2층의 50평 규모의 2전시실로 이뤄져 있다. 테라스와 야외 공간 곳곳에는 김관장만의 감각으로 심은 나무와 설치작품들이 어우러져 있다. 또 미술관에서는 오명희 작가의 도자기 작품과 홍희란 작가의 섬유공예 작품을 전시·판매한다. 두 사람은 앞으로 1층 전시실에는 서창 관련 작품을 상설전시하는 등 ‘서창 알리기’에 더 적극적으로 나설 예정이다.

/글·사진=김미은 기자 mekim@kwangju.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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