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 영 ZERO 零 김사과 지음
2019년 11월 29일(금) 04:50
김사과는 폭력성과 범죄가 판을 치고 자본과 권력이 작동하는 불의한 현실을 특유의 문체로 그려내는 소설가다. 세계를 응시하는 작가의 시선이 이전보다 더 깊어지고 날카로워졌다는 게 문단의 평가다.

김사과가 이번에 펴낸 신작 소설 ‘0 영 ZERO 零’은 작품의 제목만큼이나 눈길을 끈다. 이번 소설은 1998년 ‘소설의 향기, 소설의 본향’이라는 슬로건으로 첫 선을 보인 ‘소설 향’ 시리즈의 첫 번째 작품집이다. 침체된 문학출판의 활로를 모색하기 위해 기획됐으며 ‘향’이라는 단어가 지닌 의미처럼, 한 편 한 편의 소설들이 주는 즐거움과 위로를 담고 있다.

‘소설 향’ 시리즈에는 김사과를 비롯해 김엄지, 임현, 오한기, 정지돈, 백수린, 김이설, 윤이형, 조해진, 정용준, 최수철, 전성태 등 젊은 작가들과 중견작가들이 고르게 포진해 있다.

이번 김사과의 ‘0 영 ZERO 零’은 사소하면서도 은밀하게 드리워진 폭력성에 초점을 맞췄다. 주인공 ‘나’는 타인을 잡아먹지 않으면 잡아먹힌다는 식인의 세계관을 지닌 인물이다. 나에게 있어 생존의 조건은 먼저 타인을 내적으로나 외적으로나 무너뜨리는 것뿐이다. 한쪽이 포식자가 되면 다른 한쪽은 그 반대의 경우인 먹히게 되는 필연의 세계에서 나는 은밀한 행위를 통해 사람들을 불행에 빠뜨리기 위해 고군분투한다.

한편 책에는 김사과와 평론가 황예인의 대담이 수록돼 있다. ‘더 나쁜 쪽으로’ 진화한 작가의 문제적인 인물과 폭력적인 일상사에 대해 열린 지평에서 논의하는 장이다. 단순히 이분법적인 진실과 거짓을 가르는 방식이 아닌 나를 둘러싼 역학 관계와 식인의 세계에서 악이 곧 구원이 되는 아이러니에 대한 사유가 담겼다. <작가정신·1만2000원>

/박성천 기자 skypark@kwangju.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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