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콩, 그리고 광주
2019년 11월 15일(금) 04:50
홍콩의 민주화 시위가 격렬해지고 있다. 홍콩 시민들은 한국의 민주화운동을 통해서 민주주의를 배우고 실천하고 있는 듯하다. ‘촛불혁명’을 ‘우산혁명’으로 이어받았고, ‘택시운전사’ ‘1987’ ‘변호인’ 등의 한국영화를 ‘역권(逆權)운동’의 상징으로 삼아 관람하며, 시위 현장에서는 ‘임을 위한 행진곡’을 개사하거나 한국말 그대로 부르고 있으니 말이다.

지난 11일 홍콩의 무장경찰이 비무장 시위 청년을 향해 세 발의 실탄을 발사하는 장면은 충격적이었다. 마치 1987년 최루탄을 맞고 쓰러진 이한열을 연상케 했다. 그들은 말한다. ‘홍콩이 광주고, 차우츠록이 이한열이며, 홍콩의 오늘은 세계의 내일’이라고.

그러나 지금의 홍콩을 1980년 광주와 비교할 수는 없다. 만약 홍콩에서 착검을 한 M16에 곤봉을 든 공수부대원들이 살인 진압을 하고 여성들을 성폭행한다면! 대규모 시위대를 향해 집단발포하고, 코브라·500MD·UH-1H 등 공격용 헬기를 동원한 기총소사로 수 백 명의 사상자가 발생한다면! 그래도 한국에서 보수라고 자칭하는 사람들은 군과 경찰을 두둔할까?

그렇다 해서 지금 한국의 현실이 홍콩에 비해 나은 것도 아니다. 전 재산이 29만 원뿐이라던 전두환은 치매를 주장하며 5·18재판 출석을 거부한 채 골프를 즐겼다. 5·18 당시 헬기를 몰고 광주에 출동했던 항공부대 지휘관들은 광주 법정에서 “벌컨포 등 무장상태서 출격했지만 사격은 하지 않았다”고 했다. 거기에 “탄피가 있으면 가져와 봐라. 시민들이 헬기 소리를 오인하고 있다”며 황당한 궤변을 늘어놓았다.

내년이면 5·18 항쟁도 40주년을 맞는다. 진상조사 예산 전액 삭감을 주장했던 한국당은 이종협·이동욱·차기환을 조사위원으로 추천했다. 이동욱이 5·18을 어떻게 왜곡했는지, 차기환이 세월호 진상조사를 어떻게 방해했는지 국민은 잘 알고 있다. 추천위원 면면을 보면 조사보다 방해가 목적인 것 아닌가 하는 의심도 든다.

5·18에 대한 왜곡과 망언이 끊이지 않는 것은 진실 규명과 이에 따른 처벌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단죄하지 않으면 역사는 반복된다. ‘촛불 계엄 문건’이 이를 잘 말해 주고 있지 않은가.

/유제관 편집1부장 jkyo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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