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 5월 17일 ‘피신’
“당직허는 조명래 교수도
뚜들겨 맞고 있는디
자네가 가서 뭣을 허겄는가?”
“당직 교수님도 폭행당했다고라.”
“긍께 자네는 날 따라 오게.”
진호림은 수위가 끄는 대로
2019년 11월 14일(목) 04:50
<삽화:이정기>
조선대 전자공학과 3학년 김동수는 조금 전 도청 앞에서 끝난 초파일 봉축의 탑 점등식 뒷얘기를 하려고 불교학생회 사무실에서 회원 서너 명과 둘러앉았다. 제등행렬을 생략했기 때문에 밤인데도 학교로 올라올 시간적인 여유가 있었다. 작년에는 증심사, 원효사, 원각사, 관음사, 향림사 및 광주지역 사암연합회 신도들이 금남로에서 공원까지 갔다가 돌아오는 제등행렬을 했지만 올해는 불안한 시국을 감안해서 봉축의 탑 점등식만 하고 말았던 것이다. 점등식 사회는 한국대학생연합회 전남지부 지부장인 김동수가 맡았다. 조대부고 동창이자 관음사 고등부 불교학생회에서 함께 활동했던 회원이 먼저 말했다.

“제등행렬이 빠진께 등대 ?는 밤바다 같드라.”

“워미, 은제부터 시인이 돼부렀냐.”

“시인이 벨거간디. 제등행렬을 하는 것은 어두운 세상을 밝히자는 거 아닌가?”

“큰스님들 앞에서 사회를 보는디 겁나게 떨리드라고.”

불교학생회 후배 회원이 말했다.

“선배님이 사회를 멋지게 봐부렀지라. 실수?이.”

점등식은 삼귀의례와 반야심경 봉독, 찬불가, 봉축위원장 스님의 인사말, 격려사, 축사, 발원문 낭독, 합창단의 음성공양, 점등 순으로 진행했는데 실수가 전혀 없었던 것은 아니었다. 격려사와 축사 순서를 실수로 바꾸어버렸던 것이다. 후배는 김동수가 고조할아버지 묘지 이장 일로 고향인 장성에 가 있을 때 거기까지 온 열성적인 조선대 불교학생회 회원이었다. 초파일이 곧 다가오는데 한국대학불교학생회 전남지부장이자 조선대 불교학생회 회장이 고향에만 있을 것이냐고 채근해서 김동수를 광주로 불러올렸던 후배였다.

“실수가 ?었던 것은 아니지만 나로서는 영광스런 일이제. 영장 나온 대로 군대 갔으면 못 봤을 것이여. 입대를 연기했응께 사회를 봤제.”

실제로 1학년 때 김동수와 함께 불교학생회에 들어온 학번이 같은 동기는 군대를 가고 없었다. 그 친구는 출가를 망설일 정도로 불심이 깊은 동기였다. 방송반이었다가 탈퇴하고 불교학생회로 들어온 후배 회원이 잠깐 나갔다가 오더니 떡을 한 사발 가득 가져왔다.

“방송반 친구를 만나러 갔다가 얻어 왔그만요.”

“무슨 행사가 있던가?”

“방송국 개국 기념행사를 마치고 2부 순서로 학원자율화 선후배 토론을 하면서 철야헌답니다.”

“2부는 농성이그만.”

“단과대학별로 농성허니까 보조를 맞추는 거 같그만요.”

그때, 방송반에 토론하러 온 국문과 출신이라는 삼십대 선배 한 명이 불교학생회 사무실 문을 열고 들어와 급하게 말했다.

“수사기관에서 예비검속을 헌다고 헌께 얼능 피하소!”

“언제부터요?”

“나도 자세히는 모르겄네. 문병란 선배님께 전화했다가 알았어. 문 선배님은 시방 조비오신부님이 계시는 계림동성당으로 피신하신다고 그러네. 내 생각으로는 거기도 안전하지는 못할 것 같네. 조비오 신부님을 정보기관에서 감시하니까. 아마도 다른 성당으로 가셔야 할 거네. 그래도 성당이나 절이 안전하니까.”

“고맙습니다. 선배님.”

불교학생회 회원들은 일제히 김동수를 걱정스럽게 쳐다보았다. 예비검속을 한다면 불교학생회에서 대상 인물은 김동수뿐이었다. 김동수는 불교 단체에서 간부를 맡기도 했지만 조선대 학원자율화추진위원회와 민주투쟁위원회 위원이었다. 친구가 말했다.

“국문과 선배님이 우리를 찾아온 것은 부처님 가피다. 얼능 피신해라. 집으로 가지 말고. 수사관들이 지키고 있을지 모릉께. 방금 선배님 말씀대로 니는 절로 가야겄다.”

“그럼, 나 몬자 갈게. 원각사나 관음사로 갔다가 낼 목포 정혜사로 가 피신해 있을께.”

유달산 기슭에 자리한 정혜사는 백양사 말사로서 목포 포교당이었다. 법정스님이 목포에서 학교에 다닐 때 불교학생회 총무를 보았던 인연으로 불자들에게 널리 알려진 절이었다. 김동수가 문을 나서자 나머지 회원들도 각자 서둘러 흩어졌다. 김동수는 학교 정문 앞에서 계엄군 군용트럭을 보고는 재빨리 나무 뒤로 숨었다. 정문 앞에는 학교로 진입하려는 군용트럭들이 헤드라이트 불을 켠 채 대기하고 있었다. 김동수는 학교 담을 넘었다. 으슥한 농장다리 쪽으로 갔다가 중앙국민학교로 뚫린 거리를 뛰다시피 했다. 자신이 고등학교 때부터 나갔던 관음사보다는 원각사가 더 안전할 것이라고 판단했다. 원각사는 중앙국민학교와 금남로 사이에 있었다. 다행히 원각사는 문이 열려 있었고 불이 켜져 절 마당이 환했다. 21일이 초파일이었으므로 신도들이 밤늦게까지 연등을 만들고 있는지도 몰랐다. 요사채 툇마루에는 신도들이 만든 연등이 수북하게 쌓여 있었다.



한편, 조선대 방송국에서는 1부 행사 끝에 촛불행진까지 마치고 2부 행사를 들어가려고 잠시 휴식을 취하고 있었다. 1부 순서인 ‘조선대학교 방송국 개국기념식’ 뒤끝이어선지 방송국 안의 분위기는 들떠 있었다. 떡과 과일, 막걸리와 음료수가 책상 위에 정갈하게 놓여 있었다. 원래는 5월 19일 월요일에 가지려고 했으나 직장을 나가는 선배들이 있어 토요일 밤으로 당겨진 행사였다.

2부 행사의 정식 명칭은 ‘학원자율화를 위한 선후배 간담회’였고 진행방식은 철야농성이었다. 2부는 철야농성이었으므로 여학생들은 모두 집으로 돌려보냈다. 남자 선후배 20여 명만 남았다. 방송반인 진호림은 책상 위에 놓인 떡과 음료수나 과일 중 일부를 철야농성 중에 간식용으로 챙겼다. 그런데 그때였다. 31사단 소속의 군인 세 사람이 방송국에 들어와 자신들의 신분을 밝히면서 용무를 말했다.

“통신시설 점검 나왔습니다.”

“대학 통신시설도 점검합니까?”

“계엄령 하에서는 합니다.”

통신장교가 서울말로 말했다. 두 사람은 통신병이었다.

“수고가 많그만요. 여기 술과 떡이 있응께 묵고 허시지라.”

“아니오. 작전 중이니까 점검한 뒤 바로 내려가야 합니다.”

통신병들은 방송국 안의 방송실 실무국, 자료실, 각 부서의 서랍을 열어보거나 스튜디오를 들어가 보기도 했는데 건성으로 둘러보는 듯했다. 점검을 마친 한 통신병이 말했다.

“잠시 후 다시 올라올지 모르니 그때 같이 어울립니다.”

그러나 그들은 방송국을 장악하기 위한 계엄군의 사전 정찰조였다. 특전사 제7여단 35대대는 벌써 교내로 진입해 대대장 김일옥 중령의 지시로 각 단과대학을 수색하며 피신하는 학생들을 체포하고 있었다.

진호림은 화장실에서 볼 일을 보고 방송국으로 돌아가려다가 비명소리를 들었다. 불과 10여 분 사이에 벌어진 일이었다. 화장실에서 방송국까지 20여 미터쯤 되는 거리였는데, 학생들의 비명소리와 물건이 날아가 쿵쿵 부딪치고 깨지는 소리가 와장창 들려왔다. 진호림은 바지춤을 올린 뒤 방송국으로 뛰었다. 그 순간 누군가가 진호림을 붙잡았다. 본관 수위였다.

“당직허는 조명래 교수도 뚜들겨 맞고 있는디 자네가 가서 뭣을 허겄는가?”

“당직 교수님도 폭행당했다고라.”

“긍께 자네는 날 따라 오게.”

진호림은 수위가 끄는 대로 2평의 좁은 수위실로 들어갔다.

“술 한 잔 했그만. 술도 깰 겸 누워 있어불게.”

수위가 진호림을 수위실 방바닥에 앉게 하더니 이불을 둘러씌워버렸다.

“꼼작 말고 있어불게. 방금 방송반 학생 한 명이 식당으로 도망치다가 계엄군에게 붙잡혀군홧발로 무자게 당해불대.”

진호림은 운이 좋아 공수부대 계엄군과 엇갈렸다. 공수부대원들은 학적과, 교무과, 신문사는 물론 남녀화장실까지 다 뒤지다가 그중에서 10여 명이 방송국으로 왔던 것이다. 불이 환히 켜진 방송국 안에서 웅성거리는 사람소리가 나니 공수부대원들에게는 찾던 사냥감이나 다름없었다.

잠시 뒤 방송국 안의 방송반 선후배 20여 명은 밖으로 나와 종합운동장 야구장으로 끌려갔다. 두 사람씩 포승줄로 묶어 도망치지 못하게 했다. 그들에게 끌려가는 소리가 수위실까지 들렸다. 방송반 선후배 20여 명 중에는 학생과 현역 군인, 전경, 방위병 등이 있었는데 현역 군인은 바로 풀어주었지만 전경에게는 학생들처럼 무자비하게 구타를 했다.

“전경은 이리 나오래이.”

공수부대원은 후방에서 근무하는 전경에게는 적의 같은 것을 품고 있었다. 군대생활 대신 전경으로 복무하고 있지만 인정해주지 않았다.

“니들은 낮에는 데모 진압하고 밤에는 학생들하고 데모하는 놈들인기라.”

공수부대원 한 명이 전경에게 진압봉으로 가격했다. 전경이 픽 쓰러지자 옆에 있던 공수부대원이 군홧발로 짓이겼다. 하사관이 나와서 겁을 주었다.

“이 새끼들은 시범 케이스로 걸렸으니 헬리콥터로 실어 태평양 상공에서 떨어뜨려야겠어.”

방송국에서 공수부대원에게 반항한 학생들은 더욱 가혹하게 구타를 당했다. 학생들은 피투성이가 되었고 차츰 죽음의 공포를 느꼈다.

“데모는 왜 하냐?”

피투성이가 된 학생들은 두려움 넘어 자포자기 상태가 되었다.

“니들 때문에 7시간 동안 밥도 못 먹고 이런 생고생을 하고 있다, 이 개새끼들아!”

공수부대원들이 또 다시 진압봉을 휘두르고 군홧발로 발길질을 하는데 장교인 지대장이 나타나 목에 힘을 주며 말했다.

“난 조대부고 출신이다. 니들 세빠지게 고생하는 부모님 생각해서라도 공부해야지 데모나 허고 사회를 시끄럽게 해서야 쓰겄냐?”

그때 포승줄로 묶은 자국 때문에 양팔목이 빨갛게 부어오른 방송반 학생 하나가 말했다.

“선배님 저도 조대부고 출신입니다.”

“그래? 부탁할 것이 있으면 말해라.”

“물 좀 주십시오.”

지대장은 뜻밖에 후배가 나타하자 난처했는지 다른 곳으로 가버렸다. 그러자 공수부대원 두 명이 달려들어 학생을 두들겨 팼다.

“이 새끼야, 내가 데모한 놈 물 주려고 여기 온 줄 알아?”

그 사이에 의식을 잃은 학생 세 명은 조대병원 응급실로 실려 갔다. 종합운동장으로 끌려와 만신창이가 되도록 구타당한 학생들은 차라리 병원으로 가는 그들이 부러웠다. 공수부대원에게 맞아 어느 순간 죽을지도 모르므로 시간이 멈춘 것 같은 살벌한 밤이 두려웠다.

진호림은 수위실에서 나오지 못했다. 이불을 뒤집어쓴 채 밖의 동향을 살필 뿐이었다. 군홧발 소리는 여전히 간헐적으로 들렸다. 공수부대원들이 본관을 대부분 수색한 듯했다. 이번에는 공수부대원 두 명이 수위실로 들어왔다. 한 공수부대원이 이불을 확 젖혔다. 진호림을 발견한 공수부대원이 수위에게 물었다.

“이 새끼 누구야?”

진호림은 순간적으로 잠을 자는 체했다. 수위가 태연하게 대답했다.

“근무 교대하러 왔는디 술을 마시고 자버리는 모냥이요.”

두 명의 공수부대원은 수위를 협박하듯 군홧발로 벽을 차거나 비좁은 수위실을 빙빙 돌았다. 그들이 나가자 수위가 욕설을 내뱉었다.

“쌍놈으새끼들! 국민 세금으로 밥 처묵고 훈련받은 놈덜이 철조망은 안 지키고 맬갑시 학교에 와서 갖은 우세를 다 부리네.”

공수부대원이 사라진 뒤에야 소란스럽던 수위실 밖은 조용해졌다. 수위와 진호림은 살그머니 수위실을 나와 조심스럽게 방송국으로 갔다. 방송국은 난장판으로 변해 있었다. 방송실 문은 개머리판으로 가격했는지 구멍이 났고 붉은 핏자국들이 선명했다. 부서진 의자와 책상들은 아무렇게나 뒤집혀 널브러져 있었다. 방송국 기재나 캐비닛 등은 군데군데 찌그러져 보기에 흉했다. 먹다 남은 술과 떡, 과일 등이 바닥에 뒤엎어져 마치 음식물쓰레기장 같았다. 진호림은 자신도 모르게 눈물을 흘렸다. 방송국으로 달려와 계엄군에게 대항하지 못한 자신이야말로 쓸모없는 쓰레기 같았다. 선후배들과 함께 잡혀가지 못한 죄책감이 들어 끝내는 소리 내어 꺼이꺼이 울고 말았다.

원각사까지 혼자서 무사히 걸어온 김동수는 절의 법도대로 대웅전 불상 앞에 엎드려 절한 뒤 주지스님을 찾았다. 주지실은 대웅전 왼쪽에 있었다.

“스님, 주지스님!”

방에서 나온 주지스님이 김동수를 금세 알아보고는 깜짝 놀라며 물었다.

“오늘 점등식 사회를 봤던 거사님 아니요?”

“예, 맞습니다.”

“무신 일이요?”

“예비검속을 헌다고 해서 피신 왔습니다.”

“어서 들어와요. 걱정 말고 주지실 서재에 있으면 안전할 거요.”

김동수는 비로소 안도했다. 쫓고 쫓기는 사바세상에서 걱정을 놓아도 되는 피안에 온 것 같았다. 김동수는 자신도 모르게 두 손을 모으고 합장했다. 주지스님은 김동수를 주지실 안의 서재로 들인 뒤 자신은 법당으로 가서 독경을 했다. 초파일까지는 스님들이 돌아가며 철야독경 정진을 하는 모양이었다. 김동수는 주지스님이 외는 독경소리에 잠을 이루지 못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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