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료실 폭력 그리고 진료 거부권
2019년 11월 06일(수) 04:50
이번에는 손가락이 잘려 나갔다. 심한 골절상의 환자는 수술과 재활의 치료 과정과 별개로 보험금 취득 목적으로 요구한 허위 장애진단서 발급이 거부되자 수차례의 협박과 민사 소송을 진행하였고 결국 대법원 판결로 패소가 확정되자 이에 대한 보복으로 진료실에서 신문지로 감싸 몰래 가지고 온 칼로 담당 의사에게 상해를 가했다. 엄지손가락이 절단되고 손의 다른 부위까지 다쳐 응급 수술을 받았으나 그 회복에는 많은 시간이 필요하다고 한다. 수술을 하는 외과 의사, 특히 수부외과 전문 정형외과 의사에게 손이란 의사로서 역할을 다하기 위해 가장 중요한 신체 부위이다.

올해 초 정신과 임세원 교수가 본인이 진료를 계속해 왔던 환자의 칼에 사망한 사고의 기억이 채 가시기도 전에 또 이런 사고가 발생하였다. 우리나라 의사 약 90%가 ‘진료실 폭력’을 경험하였다고 하는 조사 자료가 있다. 개원의, 교수, 전공의 등 근무 형태와의 연관성은 없고 폭력에 대해 대부분은 ‘참거나 무시하거나 자리를 잠시 피한다’고 했다. 폭력을 경험한 70% 정도에서 스트레스, 두려움, 무기력, 분노 등 ‘심리적 불안정’으로 다른 환자의 진료에 많은 지장을 초래한다고 하였다.

진료실 내에서 의료진에 대한 폭력, 그리고 진료실 밖에서 진료와 연관된 문제로 폭행을 가하는 것은 일반적인 폭행과는 그 차원이 다르다. 의사 개인에게 위해를 가한 것을 넘어서 다른 환자들에 대한 ‘의료’의 단절로 환자의 행복과 건강 더 나아가 생명을 위협할 수 있는 일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진료실 폭력은 의사와 환자 개인 간의 이해 충돌 보다는 우리나라 의료 시스템 전반에 걸친 불만을 의사 개인에게 표출한 경우가 많다.

이런 사건이 발생하면 대한의사협회 등 여러 의사 단체에서 성명서와 함께 지금까지 해결되지 못한 그리고 해결해야 할 문제를 한꺼번에 들고 나와 성토를 한다. 너무도 많은 문제가 있다는 반증이기도 하지만 한꺼번에 모두 해결할 수는 없다.

이번에는 올해 초 입법 발의되어 있는 의료법 개정에 힘을 쓰는 것이 순서일 것 같다. 의료법 개정안은 의료인이 진료를 거부 할 수 있는 여덟 가지 ‘예외 조항’을 담고 있다. 현행 의료법 15조 1항은 ‘의료인 또는 의료기관 개설자는 진료나 조산 요청을 받으면 정당한 사유 없이 거부하지 못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진료 거부를 할 수 있는 상황은 의료인이 질환 등으로 진료를 할 수 없는 경우, 의료기관의 인력, 시설, 장비 등이 부족한 경우, 예약된 진료 일정으로 새로운 환자를 진료할 수 없는 경우, 난이도가 높은 진료 행위에 필요한 전문 지식 또는 경험이 부족한 경우, 다른 의료인이 환자에게 이미 시행한 투약, 시술, 수술 등의 내용을 알 수 없는 경우이다.

또 환자가 의료인의 진료 행위에 따르지 않거나 의료인의 양심과 전문 지식에 반하는 진료 행위를 요구하는 경우, 환자나 보호자가 위력으로 의료인의 진료 행위를 방해하는 경우, 의학적으로 해당 의료기관에서 계속 입원 치료가 불필요한 것으로 판단되는 경우이다. ‘정당한 사유’와 ‘진료 거부’의 현실적인 거리감과 감정적 괴리의 해결은 법과 제도로 강제하는 것이 합리적이다.

폭력의 배후에는 조절되지 못한 분노가 있다. 그리고 그 분노의 배후에는 실제보다 부풀려져 더 크게 느껴지는 정신적, 경제적 손실이 자리 잡고 있는 경우가 많다. 분노 조절을 위한 사회적인 안전 장치가 필요하다. 2019년 오늘. 대한민국의 사회적 안전 장치는 법과 제도일 수밖에 없다는 생각이다. 역사적으로 국가 밖의 힘으로부터 자국민을 지키지 못했던 시절도 있었지만 지금의 국가는 다르다. 국가가 해야 할 일이 자국민의 보호만은 아니다. 국민들이 자유롭게 생각하고 표현하며 다른 사람의 자유를 부당하게 침해하지 않고 자신이 원하는 삶을 스스로 설계하여 살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자유 의지로 선택한 직업에서의 안전 또한 마찬가지이다.

원가에도 미치지 못하는 국민건강보험 체계와 언제 닥쳐올지 모르는 진료실 폭력에 방어 진료를 할 수 밖에 없는 의사를 몰인정하고 부도덕한 모습으로 보이게 하는 의료 환경을 개선해야 한다. 의학적 지식과 양심에 따라 치료에 집중하고 환자와 소통하며 국민들과 의료진 모두에게 안전하고 따뜻한 진료 환경을 만들기 위한 법적, 제도적 장치를 마련해야 한다. 이는 국가가 책무이며, 당연히 국가가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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