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풍이 지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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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이 지나고, 가을 장마가 오더니 태풍 ‘링링’이 우리나라를 지나갔다. 풍성한 한가위를 맞이하려는 우리 마음이 거센 태풍의 영향으로 걱정과 염려로 바뀌었다. 태풍이 지나간 자리는 혼란스러웠다. 그러나 명절 연휴 동안 맑은 날씨와 함께 커다랗게 뜬 보름달을 보면서 우리는 마음을 달랬고 희망을 되새기기까지 했다. 태풍의 위력은 우리의 마음을 불안하고 혼란스럽게 했지만, 세상을 뒤엎었던 태풍은 다시금 원래의 모습을 회복하도록 도왔다. 우리의 눈을 흐리게 했던 먼지와 매연은 속시원하게 쓸어가 버렸고, 속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탁했던 바닷물도 위아래가 뒤엎어져 깨끗한 모습을 회복했다.
그런데 1주일도 채 지나지 않아 다시 태풍 ‘타파’가 지나갔다. 다시 한 번 우리가 자연 앞에서는 아주 작은 존재라는 미약함을 느꼈다. 그런데 지난 월요일 아침, 하늘을 바라본 순간, 그렇게 맑은 하늘을 본적이 없을 정도로 깨끗했다. 이날 필자는 점심 식사를 위해 영암읍내로 향했는데, 얼마나 깨끗했는지 멀게만 보였던 월출산이 정말 가깝게 보였다. 월출산이 그동안 감추고 있던 암반들 하나하나를 일일이 셀 수 있을 정도였다. 태풍이 지나가면 피해만 남는 것은 아닌 듯 싶다.
기상청에서 태풍의 장단점에 대해서 보도한 적이 있다. 태풍의 단점으로는 시설물에 막대한 피해, 많은 이재민 발생, 농작물 유실 및 침수 그리고 인명 피해가 발생한다고 한다. 이와는 달리 태풍의 장점으로 해수 순환, 바다 생태계를 활성화, 물 부족 현상 해소 그리고 지구 남북의 균형 있는 온도를 조절한다고 한다. 태풍 관련 보도에서 필자는 장점 중에 ‘해수 순환’과 ‘바다 생태계의 활성화’라는 부분에 관심이 갔다. 태풍의 위력은 물 속을 뒤엎는다고 한다. 순환되지 않는 물, 그러니까 강물은 녹조가 생겨 썩게 하고 바다의 경우는 심한 적조로 인해 산소 공급이 차단되어 물고기들이 폐사하기까지 한다.
그런데 태풍으로 인해 물속이 순환되어 녹조는 물론 적조 현상까지도 제거해 물은 생명을 되찾는다는 것이다. 자연을 거슬렀던 우리 인간 존재, 물길을 막고 산을 깎아내며 다시는 회복되지 못하도록 파헤쳐버리는 우리 존재는 태풍과 같은 자연 재해에 불안감을 느낀다. 왜냐하면 지금까지 이루었던 것을 다 잃어버리지 않을까 겁이 나기 때문이다. 그러나 자연에 순응하며 흘러가는 대로 맡기는 자연의 일부들은 태풍의 영향이 잃어버려 가던 자기들의 생명을 되살릴 수 있다는 기회가 될지도 모르겠다.
최근 두 달 동안 우리는 엄청난 태풍을 경험했다. 진보와 보수의 싸움인지, 촛불 혁명과 기득권의 대립인지 법무부 장관이라는 존재를 통해 엄청난 위력의 태풍을 걱정과 염려의 마음으로 바라보았다. 가짜 뉴스에 흔들리기도 하고, 기득권을 당연하다는 식으로 살아왔던 이들의 모습에서 분노하기도 했다. 또한 한 가족을 난도질까지 하는 처참함을 저질렀던 거만한 이들의 ‘인면수심’에 놀라워하기도 했다.
이러한 현실은 우리 사회에 뒤엎을 수 있는 하나의 태풍이 아닌가 싶다. 해명하기 위한 기자 회견에 이어 청문회까지 거치면서 태풍의 위력은 점점 커져만 갔다. 그런데 태풍이 지나간 것일까? 법무부 장관이라는 태풍으로 사회 곳곳이 혼란스럽기까지 한다.
그런데 태풍의 장점으로, 우리의 눈을 흐리게 하고 가려버렸던 우리 사회의 적폐를 온통 뒤엎어 버린 듯 하다. 우리가 숨을 쉬지 못할 정도로 타락했던 우리 사회의 숨겨진 어둠의 세력들의 속내가 태풍을 통해 고스란히 드러났다. 그리하여 우리 사회에 절실했던 활성화와 순환이 우리를 숨 쉴 수 있도록 이끌고 있다는 점에서 희망을 엿본다.
2000년 전 예수의 존재는 당시 기득권을 유지했던 이들에게 하나의 태풍이셨다. 당시 사람들의 눈을 가렸던 기득권의 거만함은 예수의 정의와 사랑과 희생으로 드러났다. 인위적으로 욕망을 분출해 채워지지 못하는 탐욕을 부렸던 거만한 자들의 속내까지 드러내셨다. 그런 예수께서 지금의 시대를 향해 이렇게 말씀하신다. “위선자야, 먼저 네 눈에서 들보를 빼내어라.”
그런데 태풍으로 인해 물속이 순환되어 녹조는 물론 적조 현상까지도 제거해 물은 생명을 되찾는다는 것이다. 자연을 거슬렀던 우리 인간 존재, 물길을 막고 산을 깎아내며 다시는 회복되지 못하도록 파헤쳐버리는 우리 존재는 태풍과 같은 자연 재해에 불안감을 느낀다. 왜냐하면 지금까지 이루었던 것을 다 잃어버리지 않을까 겁이 나기 때문이다. 그러나 자연에 순응하며 흘러가는 대로 맡기는 자연의 일부들은 태풍의 영향이 잃어버려 가던 자기들의 생명을 되살릴 수 있다는 기회가 될지도 모르겠다.
최근 두 달 동안 우리는 엄청난 태풍을 경험했다. 진보와 보수의 싸움인지, 촛불 혁명과 기득권의 대립인지 법무부 장관이라는 존재를 통해 엄청난 위력의 태풍을 걱정과 염려의 마음으로 바라보았다. 가짜 뉴스에 흔들리기도 하고, 기득권을 당연하다는 식으로 살아왔던 이들의 모습에서 분노하기도 했다. 또한 한 가족을 난도질까지 하는 처참함을 저질렀던 거만한 이들의 ‘인면수심’에 놀라워하기도 했다.
이러한 현실은 우리 사회에 뒤엎을 수 있는 하나의 태풍이 아닌가 싶다. 해명하기 위한 기자 회견에 이어 청문회까지 거치면서 태풍의 위력은 점점 커져만 갔다. 그런데 태풍이 지나간 것일까? 법무부 장관이라는 태풍으로 사회 곳곳이 혼란스럽기까지 한다.
그런데 태풍의 장점으로, 우리의 눈을 흐리게 하고 가려버렸던 우리 사회의 적폐를 온통 뒤엎어 버린 듯 하다. 우리가 숨을 쉬지 못할 정도로 타락했던 우리 사회의 숨겨진 어둠의 세력들의 속내가 태풍을 통해 고스란히 드러났다. 그리하여 우리 사회에 절실했던 활성화와 순환이 우리를 숨 쉴 수 있도록 이끌고 있다는 점에서 희망을 엿본다.
2000년 전 예수의 존재는 당시 기득권을 유지했던 이들에게 하나의 태풍이셨다. 당시 사람들의 눈을 가렸던 기득권의 거만함은 예수의 정의와 사랑과 희생으로 드러났다. 인위적으로 욕망을 분출해 채워지지 못하는 탐욕을 부렸던 거만한 자들의 속내까지 드러내셨다. 그런 예수께서 지금의 시대를 향해 이렇게 말씀하신다. “위선자야, 먼저 네 눈에서 들보를 빼내어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