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정관념과 세대 차이
2019년 09월 03일(화) 04:50
9월의 서늘한 가을바람이 반갑기만 하다. 에어컨 바람으로 폭염을 견뎌 냈던 일상이 보다 트인 공간으로 변하는 시원함을 느끼게 된다. 인류 산업 발전이 몰고 온 지구 온난화에도 불구하고 계절 변화가 지속되는 것은 고마운 일이다. 그런 길목에서 최근 접한 지난해 출산율 관련 정보는 세상 변화의 세대 차를 절감하게 한다.

동네에서 아이들보다 반려견과 산책하는 사람들을 더 자주 마주치는 일상 풍경도 이젠 새삼스럽지 않다. ‘저출산 고령화 사회’는 갑자기 불어닥친 현상도 아니다. 그런데도 지난 28일 발표된 통계청의 2018년 출생 통계 확정 자료에 따르면, 합계출산율은 사상 최저인 0.98명이란다. 즉 0명대로 2025년 1명대 회복 전망도 불투명하다는 예상인데, 그간 시행된 인구 증가 정책을 돌아보게 만든다.

2007년 이후 어떤 정부에서건 출산 장려 정책은 130조 원에 달하는 예산을 투입해 적극적으로 시행되어 왔다. 그러나 현재 한국의 출산율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저출산 기록을 갱신하는 모순된 결과를 보여 줄 뿐이다. 그런 모순된 상황의 저변에는 농경시대 결혼, 가족제도를 전통으로 고수하는 고정관념과 그에 따른 세대별 인식 차이에 주목하게 된다.

그간 출산 장려 정책은 출산과 육아 관련 경제 부담을 덜어주는 방식으로 진행되어 왔다. 출산 축하금과 양육 지원금, 임산부 고용 사업장에 고용 안정 및 대체인력 지원 제도도 있다. 대부분 지원 정책들이 결혼을 전제로 한 출산 장려 정책으로 보인다. ‘비혼’(결혼은 필수 아닌 선택) 선호, 동거 찬성 비율 증가, 심지어 연애도 기피하는 20·30대 젊은 세대 인식 변화가 고려되지 않은 고정관념이 드러난다.

통계청이 발표한 지난해 사회지표 조사 가운데 ‘결혼이 필수적인가’란 질문에 대한 반응은 현재 출산율 상황의 잠재적 원인을 짐작하게 한다. 젊은 세대에 속하는 비혼자 중에서 남성 36%, 여성 22%만이 결혼해야 한다고 응답한 사실이 바로 그런 점을 보여 주는 것이다.

결혼에 대한 성별·세대별 인식 차이는 수많은 영화에서도 드라마 모티브로 작동되어 왔다. 한국 멜로드라마 대표작인 ‘미워도 다시 한 번’ 시리즈에서 유부남을 사랑한 젊은 여성과 외도로 고뇌하는 남성이 혼외 출산한 남자아이를 취학시키기 위한 법적 신고를 두고 갈등을 겪는다.

한국영화사 수업 시간에 2000년대 20대 학생들과 이 영화를 다시 보노라면, 악습을 정당화하는 이상한 연애 코미디로 해석하는 반응이 압도적이다. 버림받아도 감수하며 살아가야 하는 의존적인 여성의 운명을 받아들일 수 없는 세대 차이를 보여 주는 반응이다. 그들은 도시 집중 및 인구 감소와 경제 성장 정책에 따라 ‘둘만 낳아 잘 기르자’를 실행한 586세대, 즉 돈 벌어 오는 근면한 아버지, 집안 살림에 헌신하는 어머니를 보며 자라난 세대이기도 하다.

인간의 내면적 삶, 특히 연애와 결혼을 둘러싼 성별·세대별 차이를 섬세하게 그려 내는 안목에서 일가를 이룬 샘 멘데스 감독의 ‘레볼루셔너리 로드’(2008)는 참조할 만한 흥미로운 텍스트이다. 영화는 첫눈에 반해 결혼한 부부의 일반적인 삶을 그리는데…. 세월이 지나 승승장구하는 남편과는 달리 ‘경단녀’(결혼과 육아 탓으로 퇴사해 직장경력이 단절된 여성)로 집안에 갇혀 허무한 삶을 살고 있던 아내는 어느 날 이렇게 절규한다.

“모든 존재는 특별해. … 변화가 필요해. 이렇게 인생을 그냥 보낼 순 없어”라고. 이 영화를 보노라면, 1950년대 미국 사회를 배경으로 한 허구지만 2019년 인구 재난 사태에 직면한 한국 사회 현실에 공명하는 메시지가 감지되기도 한다. 불안한 경제력에 흔들리는 가운데 성 평등 의식을 가진 젊은 세대를 포용하며 1인 가구 대세 속에서 ‘나 혼자 산다’라는 TV 프로그램을 즐기는 욜로(YOLO) 현상을 전통적 가족 개념으로는 감당할 수 없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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