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제, 사지도 말고 팔지도 말고
2019년 07월 19일(금) 04:50
우리 독립군 간부의 처형 장면. 목을 치기 전 뒤편에 일본군의 웃고 있는 모습이 보인다. 또 다른 사진. 옷이 벗겨진 여인은 온몸이 상처투성인데, 목은 잘려 있고 얼굴은 등 뒤로 돌려져 있다. 베어 낸 독립군 병사의 머리를 공중에 높이 매달아 놓은 사진도 있다.

‘이것이 일본의 실체다’. 본 칼럼의 독자 한 분이 며칠 전 누군가의 글과 사진을 보내왔다. 일본의 잔혹한 만행을 드러내는 수십여 장의 사진들. 영국 여행가가 찍었으며, 영국박물관에 보관돼 있다 했다. 물론 나는 그런 사실의 진위 여부를 알지 못한다. 다만 이런 사진이 널리 유포되고 있는 이유만은 쉽게 짐작할 수 있다. 요즘 들어 반일 감정이 극도로 고조되고 있는 것이다.

최근 내 ‘카톡’에 장문의 글을 보내온 분도 있다. ‘트럼프의 묵인과 아베의 노림수’라는 제목이 달렸다. 그는 일본이 남한을 상대로 선전포고나 다를 바 없는 무역전쟁을, 미국의 동의나 합의 없이 시작했을 리 만무하다고 주장한다. 또한 “일본이 한일수교 이후 54년간 한 번도 한국과의 무역에서 적자를 낸 적이 없다”는 사실도 적시한다. 100여 종류가 넘는 첨단 소재 산업을 움켜쥐고 마치 마름이 소작료 걷어가듯 했다는 것이다.

그의 글 중에 특히 인상 깊은 대목이 있었다. 마름과 소작인의 이러한 불평등 구조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모든 국민이 향후 5년간 약 5천 달러 정도의 GDP 손실도 각오해야 하지 않겠느냐”는 의견이 그것이다. 그는 그렇게 해서라도 ‘일본으로부터 진정한 독립’이라는 우리 민족의 숙원을 이루는 마지막 기회를 놓쳐서는 안 된다고 했다.

일본은 이랬다저랬다 말을 바꾸고 있지만 이번 무역전쟁의 근원을 따져 올라가 보면, 일제 강제동원 피해자들이 일본의 전범기업을 상대로 제기한 손해배상 소송이 있다. 사건의 중심에 근로정신대 피해 할머니들의 아픈 사연이 있는 것이다. 일제강점기 어린 소녀들은 미쓰비시중공업 나고야항공기제작소 공장으로 끌려가 1년 이상 일했지만 임금은 한 푼도 받지 못했다. 오랜 세월이 지나고, 그들은 일본 법원을 통해 수십 차례 권리 구제에 나섰으나 번번이 실패했다.

그러다 강제동원이 시작된 현장이 한반도라는 점에 착안, 한국 법원의 문을 두드리기에 이르렀다. 기대와 달리 1심과 2심에서는 또다시 패소했다. 이윽고 2012년, 대법원이 기존 판결을 뒤집고 피해자들의 개인청구권을 인정했다. 일본 기업이 배상하라는 취지였다. 처음 소송이 시작된 이후 여기까지 오는 데 무려 19년이 걸렸다.



'적반하장' 치졸한 경제 보복



하지만 일본으로서는 불만이 있을 수밖에 없다. 그들이 보기에 이 판결은 ‘한일협정’에 어긋나기 때문이다. 얼마 전 있었던 아베 총리와 스가 요시히데 관방 장관의 발언에서 이를 확연히 알 수 있다. “G20 때까지 징용 문제와 관련해 만족스러운 해결책이 제시되지 않아 심각한 신뢰관계 훼손이라고 말할 수밖에 없다.”(스가 관방장관) “상대 국가가 약속을 지키지 않는 상황에서 지금까지의 우대 조치는 취할 수 없다.”(아베 총리) 결국 징용 문제에서 한일 간의 신뢰관계가 훼손돼 수출 규제 조치를 내렸다는 취지다. 그럼에도 ‘역사 문제로 인한 경제 보복’에 대해 문재인 대통령이 강하게 경고하자, 일본 정부는 역사와도 무관하고 보복도 아니라며 슬그머니 발뺌한다. 역사 문제도 아니고 경제 보복도 아니라면 도대체 무엇이란 말인가.

강제징용 판결은 표면적인 이유일 뿐, 일본의 수출 규제는 떠오르는 한국에 대한 본격적인 견제의 시작이라는 시각도 있다. 그렇다면 ‘투키디데스 함정’론이 여기에도 적용될 수 있을 법하다. ‘투키디데스의 함정’이란 새로운 강대국이 부상하면 기존 강대국이 이를 두려워하게 되고, 이 과정에서 두 국가가 전쟁을 하는 상황을 의미한다. 최근 미국과 중국의 무역전쟁을 설명하는 용어로도 자주 쓰이는데, 일본 또한 자신의 경제 강국 지위를 위협하는 한국을 두려워하게 됐다는 설명이 가능할 듯싶다. 중국에 이어 한국에 언제 추월당할지 모른다는 불안감이 이번 수출 규제에 반영됐을 수 있다는 얘기다. 싹이 자라나기 전에 아예 짓밟아 버리자는 생각이다.

아베 총리가 주도한 경제 보복 조치의 배경에는 선거를 앞둔 일본은 물론 한국 내 정치권 움직임에 대한 치밀한 계산이 깔린 것으로 보인다. 한국 국회에서 여야가 갑론을박을 벌이면서 자중지란에 빠질 가능성이 높다고 예상했을 가능성이 높다. 특히 한국의 야당이 현 정권의 외교 정책에 대해 강하게 문제 제기를 할 수 있을 것으로 일본은 내다봤을 것이다.

이러한 예상은 실제로 어느 정도 맞아떨어졌다. 일부 야당은 문재인 정부의 외교 정책 부재를 질타하며 일본의 장단에 춤을 추었다. 그렇게 해서 이들은 일본의 간계에 자신들이 휘말리고 있는지도 모른 채, 결과적으로 아베를 도와주었다. 이를 ‘미필적 고의에 의한 매국 행위’라 하면 너무 과하다 할 것인가.



누가 ‘맞짱’을 두려워하는가



다행히 국민은 아직 살아 있다. 일본의 치졸한 경제 보복에 맞서 일본 제품 불매 운동이 들불처럼 확산되고 있는 것이 그 증좌다. 일본으로 떠나는 관광객도 이전에 비해 현저히 줄었다. 광주·전남 지역 동네마트 300곳은 일본 제품 판매 중단 운동에 뜻을 모았다. SNS(사회관계망서비스)에는 ‘보이콧 재팬, 가지 않습니다. 사지 않습니다’라는 표어가 급속도로 퍼지고 있다.

그러나 일부 보수 언론은 이마저도 마뜩지 않은 모양이다. 사설 등을 통해 “일본 제품 불매 운동을 일으키려는 것은 득이 되지 못한다”는 주장을 펴고 있으니 말이다. “우리가 흥분하면 일본의 의도에 말려들 수 있다”며 “냉정하고 차분하게 대처하자”고 한다. “일본과 맞서 싸우자는 국민 분노가 거세지만 아직 힘이 없으니 참자”고 한다.

나는 결코 이에 동의할 수 없다. 언론이 가당찮게 나서서, 국민의 자발적인 일본 제품 불매 운동까지 자제하도록 훈계할 권리는 없다고 본다. 물론 국민의 불매 운동과는 별도로 정부는 갈등 해결을 위해 부단히 외교적인 노력에 나서야 한다. 정부와 국민의 분업화인 셈이다. 여기에 어제 문 대통령과 5당 대표회담을 가진 정치권이 초당적으로 대처한다면 일은 의외로 쉽게 풀릴지도 모른다.

그러나 다시 말하건대, 때린 놈이 적반하장으로 나오는데 맞은 놈은 힘이 없으니 그냥 참자고? 절대 그럴 순 없다. 굴종으로 잠시 얻게 되는 평화는 진정한 평화가 아니다. 힘이 없어 설령 한 대 더 맞더라도 시원하게 한번 맞짱을 떠야 하지 않겠나. 저들이 다시는 얕보고 깔보는 일이 없도록.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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