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인에게 방해받지 않는 나만의 공간을 꿈꾸며…
바닷가 작업실에서는 전혀 다른 시간이 흐른다
김정운 지음
2019년 05월 24일(금) 00:00
‘타인에게 방해받지 않는 나만의 공간을 갖는 것’은 누구나 꿈꾸는 로망이다. 넓거나 근사하지 않아도, 내 취향이 고스란히 반영돼 맘 편히 쉬고 좋아하는 것들을 할 수 있는 곳을 갖는다면 정말 행복할 것 같다.

“내가 하고 싶은 일만 하겠다”고 결심하며 교수직을 떠난 문화심리학자 김정운은 나이 50이 넘어 교토의 미술대학을 다녔다. 4년간의 유학을 마치고 한국으로 돌아와서는 아무 연고도 없는 여수로 내려와 ‘바닷가 작업실’에서 그림 그리고, 글 쓰며 살고 있다.

김정운의 신작 ‘바닷가 작업실에서는 전혀 다른 시간이 흐른다’는 ‘불안 없이 내가 진짜 하고 싶은 일을 내 마음대로 할 수 있는 최소한의 공간’에서 글 쓰고 그림 그리며 살아가는 이야기를 담은 책이다.

책의 부제 ‘슈필라움의 심리학’에 등장하는 ‘슈필라움’(Spielraum)은 독일어에만 있는 단어다. ‘놀이’를 뜻하는 ‘Spiel’과 ‘공간’을 의미하는 ‘Raum’의 합성어로 ‘내 마음대로 할 수 있는 자율의 주체적 공간’인데 물리적 공간 뿐 아니라 ‘심리적 여유’까지 담고 있는 공간이다.

“삶이란 지극히 구체적인 공간 경험들의 앙상블”이라고 정의내리는 그는 오랫동안 ‘슈필라움’을 꿈꿔왔고, 그걸 만들어가는 과정을 유쾌하게 풀어내고 있다. 그에 따르면 사람들은 외로움과 궁핍함을 담보로 얻어낸 ‘자연인’의 ‘슈필라움’을 부러워하고, 무소유를 주장한 법정스님조차도 ‘깨끗한 빈방’에 대해 마음을 뒀다.

여수 앞바다가 보이는 곳에 ‘바닷가 작업실’을 얻었던 그는 또 다른 시도중이다. 여수에서도 한 시간 배를 타고 들어가야 하는 작은 섬에 자리한 낡은 미역창고를 매입해 작업실로 삼기로 한 것이다. 작업실 ‘미역창고(美力創考)’는 말 그대로 ‘아름다움의 힘으로 창조적인 생각을 하는 공간’으로 만들어가려 한다.

그가 말하는 슈필라움은 ‘자신의 취향과 관심이 구현된 곳’이다. 이런 곳이라면 보잘 것 없이 작은 공간이라고 내가 진짜 하고 싶은 일은 하고, 정말 하기 싫은 일은 하지 않으면서 즐겁고 행복할 수 있다고 말한다. 또 자기의 슈필라움이 있어야 인간으로서 자존감과 매력을 만들고 품격을 지키며 제한된 삶을 창조적으로 재구성할 수 있다고 강조한다.

그는 시선과 마음, 불안, 열등감, 욱하기, 감정혁명, 멜랑콜리, 아저씨, 자기만의 방, 저녁노을 등 24개로 이야기를 풀어나간다.

그의 다른 저서에서 만날 수 있는 시원시원한 글쓰기는 여전한다.

여수 작업실에서, 석양이 질 때 듣는 슈베르트의 가곡 ‘저녁노을’, 가을의 여수 앞바다와 어울리는 리스트의 ‘콩솔라시옹’, 이어폰으로 듣는 박인희의 ‘세월이 가면’까지 책 속에 등장하는 음악이나 책, 그림 등에 대한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게 된다. 궁금했던 그의 작업실 겸 놀이공간을 사진으로 볼 수 있는 점도 흥미롭다. 그가 직접 그린 그림과 함께 김춘호 사진작가가 촬영한 여수의 사계절 풍광과 삶의 모습 등도 인상적이다.

책을 읽다보면 누구나 꿈꿀 것 같다. ‘불안 없이 내가 진짜 하고 싶은 일을 내 마음대로 할 수 있는 최소한의 공간’을.

<21세기북스·1만8000원>

/김미은 기자 mekim@kwangju.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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