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이 가벼워진 시대, 참사랑은 무엇인가
[박성천 기자가 추천하는 책] 사랑의 인문학 주창윤 지음
문학·철학·영상학·신화학 등 시선으로 사랑의 본질 탐구
페미니즘과 사랑·동성애 등 복합적인 의미 새롭게 담겨
사랑은 끊임없는 발견이자 하나됨이 아닌 둘 됨
‘혼자 남아있다’는 불안감 속에 살아 사랑이 중요
2019년 05월 24일(금) 00:00
왼쪽에 옷을 입고 있는 여인이 세속의 사랑을, 오른쪽 나체의 여인이 천상의 사랑을 의미한다. 티치아노 베셀리오 ‘천상의 사랑과 세속의 사랑’
미국의 천재 시인으로 일컫는 에밀리 디킨슨(1830~1886)은 사랑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사랑에 흥미를 잃으면, 다른 물건들처럼 우린 사랑을 서랍 속에 넣는다”고.

시인의 말처럼 서랍을 열면 안에는 소중한 물건들이 있기 마련이다. 사진이나 열쇠, 명함, 메모지 같은…. 그것들은 한때는 소중했지만 차마 버리지 못하는 물건들이다. 아마 사랑도 그와 같은 것인지 모른다. 시인의 표현대로 우리는 지난 사랑을 서랍 속에 넣어두고 있는 것이다.

지극히 당연한 말이지만 인간은 태어날 때부터 죽기 전까지 사랑을 한다. 일방적으로 사랑을 하기도 하고, 그 반대로 받기도 한다. 어느 경우는 서로 주고받으면서 사랑을 지속한다. 시대가 변하면서 사랑에 대한 정의 또한 달라졌다. 예술가들에게 남녀의 사랑은 가장 매력적인 소재이자 영원히 풀어야 할 숙제와도 같다.

분명한 것은 오늘의 사랑은 고전적인 사랑의 양상과는 많이 달라졌다는 점이다. ‘썸타기’, ‘디지털 사랑’, ‘젠더의 해체’와 같은 새로운 용어로 불리며 화두로 떠올랐다. 사랑에 관한 조언을 담은 책이 인기를 끌고, 사람들은 연애 트렌드를 분석하며 사랑을 논한다.

사랑의 본질을 인문학의 시선으로 탐구하는 책이 발간됐다.

주창윤 서울여대 언론영상학부 교수가 펴낸 ‘사랑의 인문학’은 사랑이란 무엇인지를 묻는다. 저자는 문학, 철학, 영상학, 신화학, 사회학, 문화이론, 심리학 등을 바탕으로 사랑의 본질을 탐색한다. ‘사랑, 그 끊임없는 발견을 위하여’라는 주제가 말해주듯 책은 과거의 사랑과 현재의 사랑이 왜 달라졌는지 인간은 왜 사랑을 하고 싶어 하는지, 왜 사랑을 하면 아픈지 등을 면밀하게 들여다본다. 지난 2015년 발간한 ‘사랑이란 무엇인가’를 대폭 개정한 것으로 페미니즘과 사랑, 동성애, 열정 등 복합적인 의미 등이 새롭게 담겼다.

“사랑하는 두 사람은 땅과 우주 사이에 있는 두 개의 별이다. 모든 별이 그렇듯이 사랑도 중력과 궤도를 갖고 있다.” 아마도 책을 관통하는 일관된 주제일 것 같다. 저자는 사랑을 ‘일만 개의 직소퍼즐’ 같다고 한다. 이것들을 맞추어갈 때 어렴풋이나마 사랑의 실체를 확인할 수 있다는 얘기다. 나아가 사랑은 두 사람 사이의 공유되는 체험이기에 원본이 있을 수 없으며 하나의 대답을 찾는 것은 더더욱 어려운 일이다.

“사랑이란 무엇인가? 이 거대한 질문에 대한 나의 대답은 사랑은 ‘끊임없는 발견’이라는 것이다. 이 책에서 내가 말하고자 했던 것은 바로 사랑은 나에 대한 발견으로 시작해서 타자에 대한 발견, 그리고 둘 사이를 메우는 불완전한 과정이라는 것이었다.”

저자는 또한 사랑은 ‘하나 됨이 아니라 둘 됨’이라고 강조한다. 플라톤을 포함해 낭만적 사랑론자들은 사랑을 하나 됨, 다시 말해 둘의 융합이라고 봤다. 그러나 “사랑은 한 무대 안에서 둘 됨의 과정”으로 “나와 너의 차이를 인정하면서 둘이 세계를 구축하는 실천”인 것이다.

마치 그림의 의미가 하나가 아닌 것처럼 사랑의 의미 또한 고정돼 있지 않다는 뜻이기도 하다. 사랑하는 두 사람은 융합과 변화의 과정을 통해 사랑의 의미를 창조해간다.

그와 반해서 저자는 사랑이 섹스화되면서 어떤 경험이 ‘사랑’인가를 판별하는 기준을 약화시켰다고 본다. 그로 인해 ‘하룻밤 사랑(섹스)’도 사랑으로 간주된다는 것이다. “갑자기 섹스의 경험이 풍부해지면서, 사랑한다는 것이 섹스를 더 많이 나누는 경험의 축적으로 인식된 것이다. 연인들은 다음 번 사랑은 현재 즐기고 있는 사랑보다 훨씬 더 짜릿한 경험이 될 것이라는 환상을 갖는다.”

작금의 사랑은 디지털 문화의 특징인 유목문화와도 닮아 있다. 한 곳에 정착하지 못하는 경향이 현대의 사랑법인 썸타기 방식으로 나타났다는 의미다.

그렇다면 왜 지금 사랑이 중요할까? 저자는 우리는 ‘혼자 남아 있다’는 불안한 감정 속에 살고 있다고 본다. 가족, 친구, 동료의 관계는 생각만큼 견고하지 않아 쉽게 무너진다. 지금의 사랑이 어느 때보다 불안정한 관계 위에 놓여 있다는 얘기다.

“인정욕구는 말 그대로 상대방을 인정하고 상대방에게 인정받고 싶어 하는 욕구다. 불안감은 자신의 가치를 확신하지 못하는 마음에서 시작된다. 열정과 낭만이 두 사람 사이의 개인적 관계에서 비롯되는 초월적 가치라면, 인정욕구와 불안감은 사랑으로 극복하고 싶어 하는 현실적 가치이다.” <마음의 숲·1만8000원>

/박성천 기자 skypark@kwangju.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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