걷기는 가장 철학적이고 예술적인 인간행위 (256) 걷는 사람
2019년 02월 14일(목) 00:00
자코메티 작 ‘걸어가는 사람’
요즘 웬만한 거리는 걸어 다닌다. 최근 다른 때에 비해 모처럼 시간의 여유가 생겼기 때문이고 무엇보다 걸으면서 생각하고 생각하면서 걷는 것을 좋아하기 때문이다. 걷다보니 걷기를 예찬하는 사람들에게도 마음이 간다. 한 영화배우가 펴낸 걷는 사람에 대한 책도 반갑게 읽어보고, 예술·문화평론가이자 사상가인 리베카 솔닛의 ‘걷기의 인문학’을 발견하곤 그 책에 빠지기도 했다.

걷기를 ‘가장 철학적이고 예술적이고 혁명적인 인간의 행위’라 정의하고 있는 저자는 이 책에서 보행을 모티브로 한 통사를 집대성했다. 오스트랄로피테쿠스가 나무에서 내려와 땅 위를 걷기 시작하면서부터 고대 그리스 철학자가 주랑을 걸었던 길, 기독교 순례자들의 십자가의 길에 이어 낭만주의자들이 걸었던 자연의 길과 모더니스트들이 즐겨 돌아다녔던 도시의 길을 살피고, 현대인은 러닝 머신에서 걷는다는 내용까지 흥미진진하다. 리베카 솔닛의 걷기를 향한 지적 여정이 너무나도 눈부셔서 이제는 걸으면서도 그냥 걷지 못하고 생각이 조금 복잡해질 것 같기는 하다.

우리 시대에 ‘걷는 사람’을 철학적이고 예술적으로 승화시켜 우리에게 충격적인 인상을 남긴 작품으로 금방이라도 바스러질 것처럼 막대기같이 뼈만 앙상한 사람이 큰 보폭으로 걸어가는 모습을 형상화한 알베르토 자코메티(1901~1966)의 ‘걸어가는 사람’(1960년 작)을 꼽고 싶다. 제2차 세계대전을 겪는 등 당시 불안한 시대 상황에서 인간의 고독과 번민에 남다른 관심을 가졌던 자코메티는 자신이 품고 있는 인간 실존에 대한 철학적 고민을 철사와 같이 가늘고 긴 인간으로 표현했다. 보통의 조각가들이 인간의 참된 모습을 조각상에 담기 위해 존재 그 자체를 조각한데 비해 자코메티는 상황 속에 놓인 순간을 조각하기 위해 자기의 시선을 방해하는 모든 것을 제거해버린 것이다.

자코메티의 작품은 사르트르가 예술론을 쓰기도 해 더 유명하다. 사르트르는 ‘실존은 본질에 앞선다’는 자신의 실존철학이 자코메티의 작품에서 시각화되고 있음을 보고 ‘절대의 추구’라 찬탄하기도 했다.

<미술사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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