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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험 난이도 법정에 서다
이 재 남
광주시교육청 정책기획관
2018년 12월 20일(목) 00:00
국가가 시험 문제를 어렵게 냈다고 손해배상 청구를 당했다. 국가가 자동차 도로를 부실관리하여 교통사고를 유발한 것도 아닌데, 단지 시험 문제를 어렵게 냈다고 법적 책임을 물을 수 있을까. 이 법정 공방은 한국에서만 있을 수 있는 세기의 재판이 될 것이다.

사안을 단순하게 정리해보자. 내일 모레 있을 국어 기말고사 시험에 평균이 18점 나왔다. 학생들은 문제가 너무 어렵다고 불만이 많았고, 이에 격분한 학부모가 아무리 공부를 해도 풀 수 없는 문제를 낸 교사를 법원에 고발했다면 해당 교사는 어떻게 될까? 교사의 교육권이 침해 당한 것일까?

이 사안은 ‘난이도 조절에 실패한 교사에게 법적 책임을 물을 수 있는가?’의 문제다. 사회적인 문제와 교육적인 문제, 법적용 문제가 얽혀 있는 사안이다. 난이도는 어려움과 쉬움의 정도다. 통상적으로 생각해서 문제를 어렵게 내면 학생들이 공부를 열심히 할 것 같지만 그렇지 않다. 지레 겁먹고 포기한다.

쉽게 문제를 내면 공부를 열심히 할까. 그렇지 않다. 얕잡아보고 설렁설렁 공부한다. 그래서 적절한 난이도가 중요하다. 공부를 열심히 한 학생은 좋은 성적을 받고, 열심히 안 한 학생은 더 열심히 할 수 있는 동기를 부여하는 것이 시험 난이도 조절의 궁극적 목적이다.

문제가 너무 어렵거나 쉬우면 변별력이 없어서 평가로서의 기능을 상실한다. 그래서 학교에서는 아무리 어려운 문제라도 최소한 정답률이 50% 이상은 나올 수 있게 조절한다.

난이도 조절이 어려운 것은 한 줄로 세워야 하기 때문이다. 가르치기는 저난이도로 가르치고 문제는 초고난이도로 내면 이번 수능처럼 정답률 18%가 나온다. 5지 선다형에서는 찍어도 정답률은 20%다. 문제로서의 기능은 상실되고, 오직 변별력으로서의 기능만 하고 있는 것이다.

난이도 조절의 실패는 수험자의 특성을 정확히 파악하지 못한 출제자의 책임이다. 물론 한국교육과정평가원도 할 말이 있다. 55만 명의 수험생을 한 줄로 세워야 하는데 이런 초고난이도 킬러 문제를 낼 수 밖에 없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난이도를 조절하는 것은 전적으로 출제자의 권한이고, 교육권에 해당되는 것일까?

손해배상을 청구한 ‘사교육 걱정없는 세상’은 ‘공교육 정상화 촉진 및 선행 교육에 규제에 관한 특별법’ 제8조에서 ‘학생이 배운 학교 교육 과정의 범위와 수준을 벗어나는 평가 행위를 금지’하는 조항을 들어서 법률 위반을 주장하고 있다. 국가가 출제 범위와 수준을 벗어난 문제를 출제하여 공교육 기본 목적 달성을 저해하고, 사교육을 조장하며, 정상적인 학습 과정과 학교 교육에 대한 불신을 초래하여 많은 학부모와 수험생들에게 물리적, 정신적 피해를 줬다는 것이다. 난이도는 변별 기능도 있지만, 교육 평가의 원리로 보면 사실은 신뢰도와 타당도가 더 중요하다.

이 법정 공방에는 많은 교육 과정 전문가들과 현장 교사들이 참고인으로 등장할 것이다. 난이도는 이제 출제자의 편의대로 조절할 수 있는 척도가 아니다. 교육 과정을 충실히 반영하고 있는지, 적정한 정답 분포를 나타내고 있는지, 사교육을 조장하고 있지는 않은지, 가르친 범위를 벗어나고 있지는 않은지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법정에 설 수 있다. 군에서는 ‘작전’에 실패한 군인은 용서할 수 있어도, ‘경계’에 실패한 군인은 용서할 수 없다는 말이 있다.

승패의 본질은 기본에 있다는 의미다. 앞으로 학생들이 무엇을 어떻게 배우는지 잘 챙기지 않고 혼자 수업하는 교사는 ‘변별력’ 확보도 못하고, ‘난이도’ 조절에 실패한 책임을 물어 법정에 설 가능성이 있다.

이번 불수능에 대한 국가 손해배상 청구 소송은 변별력 중심의 교육 풍토를 교육 과정 중심의 난이도를 더 중요하게 생각하는 풍토를 만들어 낼 것이다. 문제는 있다. 정답률 몇 %가 적정인가에 대한 문제이다. 나는 70% 정도 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물론 수능이 정상 난이도를 유지해야 한다는 전제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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