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쓰는 5·18 ⑦ 주남마을 버스 총격 사건
계엄군, 5월23일 시민 탄 차량 향해 2차례나 무차별 난사
광주 봉쇄작전 희생양…28명 사망자 중 11명만 확인
“퇴각한 11공수 시신 은폐”…조사위, 암매장 진상 밝혀야
2018년 06월 20일(수) 00:00
1980년 5월29일 광주시 북구 망월동 묘역에서 시신 129구의 장례식이 치러졌다. <광주일보 자료사진>
1980년 5월 21일 오후 1시께 옛 전남도청 앞 집단 발포를 자행한 공수부대들은 이날 오후부터 광주 봉쇄작전에 들어간다. 3공수여단은 옛 광주교도소에, 7·11공수여단은 너릿재 인근에 주둔하며 각각 담양 방면, 화순 방면 도로를 차단했다 광주 항쟁의 다른 지역 확산을 막으려는 목적이었다.

22일부터 도청 진압 전인 26일까지 광주시 외곽봉쇄 지점에서 발생한 계엄군 총격은 여러 차례 있었다. 그중 23일 발생한 광주시 동구 지원동 광주~화순 간 15번 국도에서 발생한 주남마을 총격 사건이 대표적이다. 주남마을 버스 총격사건은 그동안 한차례였던 것으로 알려졌지만, 생존자·계엄군의 증언에 따라 최소 두 차례 이상 발생했으며, 희생자는 최소 28명으로 추정되고 있다.

1995년 검찰 수사 결과에 따르면 23일 오후 2시께 18명의 승객을 태운 25인승 미니버스는 광주에서 화순 방면으로 향했다. 주남마을에 도착했을 무렵, 버스 운전기사 김윤수(당시 27세)씨는 매복 중이던 계엄군(11공수여단 62대대 4지역대)으로부터 정지신호를 받았다. 불길한 예감이 든 김씨는 정지신호를 무시하고 가속 페달을 더욱 세게 밟았다.

1988년 국회 5·18 진상조사특별위원회가 1989년 1월 14일 광주시 동구 주남마을에서 현장검증을 벌이고 있다. <광주일보 자료사진〉






갑자기 차창 밖에서 콩 볶는 소리가 들렸고, 승객들은 한 두 명씩 피를 흘리며 쓰러졌다. 차 안의 승객들이 모두 쓰러진 뒤에야 총성은 멈췄다. 찰나에 승객 18명 중 15명이 숨지고 3명이 부상을 당했다.

계엄군은 부상자 3명 중 2명(훗날 채수길·양민석씨로 판명)을 주남마을 뒷산으로 끌고 가 총살했다. 일부 시신에선 대검에 찔린 흔적도 발견됐다. 유일한 생존자는 홍금숙(여·당시 17세)씨였다.

국방부 과거사진상규명위원회 조사보고서(2007)와 홍씨의 증언에 따르면 당시 11공수여단은 버스에 총격을 가한 직후 버스에 올라 생존자를 확인했다. 군인들은 숨이 붙어 있었던 홍씨와 채씨, 양씨를 주남마을 여단 상황실로 이송했다. 당시 현장으로 출동했던 간호봉사원은 사상자들을 전남대병원으로 후송할 것을 요구했으나 공수부대 지휘관들이 이를 거부했다고 진술했다.

홍씨 등의 상태를 본 11공수여단 작전보좌관 김모 소령은 “귀찮게 왜 데려왔느냐. 없애버려”라고 말하며 부상자들을 데려온 것을 책망했다.

주남마을 희생자 유가족이 기증한 계엄군의 진압봉과 탄약통.






정원각 중사와 한상천 일병 등 부대원 2명은 채씨와 양씨를 손수레에 싣고 야산으로 끌고 갔다. 부대원들은 이들을 사살했고 땅에 묻었다. 당시 현장 부근에 있었던 11공수여단 간부들 중 누구도 이들의 행위를 제지하지 않았을 뿐 아니라 부상자들을 사살했다는 사실을 알고서도 별다른 제재조치를 취하지 않았다. 홍씨는 다행히 헬기로 병원에 이송돼 치료를 받았고 목숨을 건질 수 있었다.

주남마을 야산에 암매장된 채씨의 주검은 일주일 뒤 주민들에 의해 발견됐다. 그러나 20년 넘게 5·18 사망자로 인정받지 못했다. 신군부가 5·18 희생자 숫자를 줄이기 위해 채씨의 예비군 편성카드를 조작한 사실이 지난 2010년 진실화해위원회 조사결과 밝혀졌다. 채씨는 1980년 6월 하순에 예비군 훈련을 받은 것으로 기재돼 있었다. 채씨는 2002년에야 유전자 검사를 통해 신원이 확인돼 5·18 묘역에 묻힐 수 있었다.

또 지난해 공개된 국방부 과거사진상규명위원회의 부대원 면담 보고서에는 채씨의 비극적 사연이 담겨 있다.

11공수여단 보급 담당이었던 김효겸 하사는 부상자의 소지품을 살피다가 그 중 한 명이 외사촌인 채씨임을 확인했다. 그는 전역 후 죄책감에 고향을 떠나 살다가 25년이 지난 2005년 광주를 찾아 5·18묘지 고(故) 채수길 묘비 앞에 무릎을 꿇고 용서를 빌었다.

5월23일 주남마을 총격사건은 최근까지 한차례였던 것으로 알려졌다. 1995년 검찰조사와 국방부 과거사위원회도 한건의 총격사건만 있었던 것으로 결론지었다. 당시 발포했던 11공수여단 일부 부대원들은 23일 오전 10시 30분께 사이 미니버스를 향한 발포가 있었다고 진술했다. 지원동사무소 직원도 23일 오전 11시~낮 12시 사이 동사무소 앞으로 미니버스가 지나갔고 정지신호를 지키지 않자 총을 맞았다고 동구청에 보고 했다. 검찰과 과거사위원회는 총격 시점을 오후라고 주장하는 홍씨가 오전 사건의 시간대를 헷갈린 것으로 판단했다. 기무사령부(옛 보안사)의 5·18 관련자(57명) 감시 자료들 중 홍씨 항목을 살펴보면 오전 10시께로 사건 발생 시간이 기록돼 있다.

하지만 5·18연구자들은 같은날 오전과 오후 두건 이상의 총격이 있었다고 보고 있다. 공수부대원들이 진술한 오전 사건과 홍씨 등이 진술한 오후 사건이 명백히 다르다고 주장하고 있다. 두 개의 사건을 하나로 조작해 학살 행위를 감추고 희생자 수를 줄이려는 의도라는 것이다.

전투병과교육사령부가 작성한 ‘작전상황일지’에는 ‘5월 23일 오후 3시30분 광주 소태 폭도 50명(버스 1대) 군부대 기습 기도. 군부대(11공수) 반격소탕. 생포 3명(부상 2명). 사살 17. 칼빈 11정, 실탄 12발, M1 1정, 무전기 1대, 버스 1대’로 적혀 있었다. 또 ‘오전에 집을 나가 승합차를 타고 화순으로 갔다는 아들이 돌아오지 않았다’는 유족의 증언도 잇따랐다.

유족과 목격자들의 증언을 종합해 현재까지 파악된 바로는 오전 9시께 시위대를 태운 12인승 승합차가 화순으로 향했다. 흰색 페인트로 ‘103번’이라고 적힌 시위대의 순찰 차량이었다. 승합차에는 백대환(당시 19세), 김남석, 황호걸 등 11명이 타고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이들 차량도 너릿재 터널 전 공수부대가 차량을 제지했고 잠시 후 총소리가 들렸다. 인근 주민들은 군인들이 승합차를 어디론가 끌고 갔고 시신들이 3~4일간 도로에 방치된 모습을 봤다. 당시 탑승자는 모두 숨진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주남마을은 유력한 암매장 장소로 꼽히는 곳이다. 총격 사건으로 희생된 것으로 추정된 28명 중 시신이 확인된 숫자는 11명에 불과하다. 채수길씨 등이 실제 암매장 당했던 것으로 봤을 때 나머지 17구의 시신들도 주남마을 인근 어딘가에 묻혀 있을 가능성이 높다. 주남마을의 한 주민은 5·18기념재단에 ‘5·18 직후 대낮에 군인들이 포크레인 등 중장비를 사용해 마대자루를 묻고 있었으며 자루 밖으로 나와있는 시신의 머리를 봤다’고 제보하기도 했다.

하지만 시신이 묻힌 장소는 현재까지 불분명하다. 5·18재단은 암매장이 유력하게 의심되는 옛 너릿재터널 인근 도로를 지난해 12월 굴착했지만 특별한 흔적을 찾지 못했다.

김효겸 하사는 국방부 과거사위원회 면담보고서에서 “광주에서 철수 후 국민대에 주둔할 때 62대대장 인솔하에 일부 병사들이 보병복장을 하고 광주로 가서 가매장지 발굴 작업을 전개한 것으로 안다”고 증언했다.

그의 증언에 등장하는 5·18 당시 62대대장(이제원 중령)도 지난 1995년 검찰조사에서 “여단에서 광주에서 사체를 가매장한 병력들을 전부 차출해 보내라고 해 보낸 사실이 있다”고 증언을 뒷받침했다.

5·18 연구자들은 주남마을 뒷산에 암매장됐던 시신 2구(채수길·양민석씨)가 1980년 6월 2일 주민들에 의해 발견됐다는 소식을 접한 공수부대가 대거 광주로 서둘러 내려와 가매장했던 시신들을 보다 깊숙이 매장하는 작업을 자행했던 것은 아니냐고 의심하고 있다.

5·18 단체 관계자는 “23일 오후에는 11공수여단과 교대한 20사단이 주남마을 인근에서 시신 11구가 들어있던 ‘광주 고속’ 버스를 발견했다는 이야기도 있다”며 “오는 9월 출범하는 5·18진상규명조사위원회에서 주남마을의 진상이 꼭 밝혀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용희 기자 kimyh@kwangju.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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