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을 수 없는 광주의 태만
2017년 09월 27일(수) 00:00
윤 영 기 사회부장
조지 카치아피카스 전 미국 웬트워스 대학교 교수는 연구·저술 활동으로 5·18의 세계화에 기여한 석학이다. 개인적으로 광주에 대한 그의 애정과 헌신은 영화 ‘택시 운전사’의 주연 ‘힌츠페터’ 못지않다고 생각한다. 미안하게도 지난 2015년 출간된 그의 대표적 저술을 최근에야 읽었다. ‘민중을 주인공으로 다시 쓴 남한의 사회운동사’란 부제가 붙은 ‘한국의 민중봉기’라는 책이다.

반가운 마음에 책을 펴 들었으나 ‘6장 광주 민중봉기’에서 다음과 같은 대목을 보고 고개를 갸웃할 수밖에 없었다. “5월21일 오후 12시20분 수백 명의 투사들과 수감자 가족들, 시민들이 교도소 주위로 모였다. 오후 3시 3대의 차량을 이용해 교도소를 공격했지만 육박전 이후에 밀려났다. 광주교도소 공격에서 최소 8명이 죽고 70명이 부상당했다.”

그런데 최근 32년 만에 개정 발행된 ‘죽음을 넘어 시대의 어둠을 넘어’에서는 국방부 과거사진상규명위원회의 조사 결과를 토대로 상반된 진술을 하고 있다. “계엄 당국은 5·18을 불순분자의 소행으로 몰기 위해 광주교도소 습격 기도 사건을 조작하였다…. 이 사건은 보안사가 5·18을 간첩, 혹은 좌익의 선동에 의해 촉발된 것처럼 선전하기 위해 조작한 대표적인 사례 가운데 하나”라고 썼다. 5월 당사자나 전문가들도 이견이 없는, 현재까지의 진실을 되새기는 문장이다.

일단, 카치아피카스 교수는 검증된 자료가 충분하지 않은 척박한 5월의 환경에서 연구했기 때문에 면죄부를 줄 수도 있겠다. 교도소 습격 사건과 관련한 내용에 정 모 씨 등의 저술에서 인용했다는 각주를 달아 놨으니, 학문적으로도 면책이다.



기억을 이기는 것은 기록뿐



하지만 교도소 습격 사건은 그리 간단한 사안이 아니다. 이 사건이 ‘빨갱이 도시’로 광주를 악랄하게 매도하는 극우 보수주의자들의 궤변에 자양분을 제공해 왔기 때문이다. 실로 37년 동안 광주를 저주하는 악령이다. 같은 맥락에서 ‘교도소 습격 사건’의 기술에 공개적으로 이견을 제시한 학자는 물론 전문가가 없다는 것은 아쉽기만 하다. 이런 방관과 침묵이 이어진다면 책에 담긴 내용은 오독돼 역사적 사실로 굳어져 갈 것이다.

광주의 나태는 여기에 그치지 않는다. 1990년대 미국 국무성은 광주시에 1979년 1월부터 1980년 12월 말까지 2년에 걸쳐 주한 미국대사관이 미국 국무성으로 보낸 방대한 비밀 해제 문서를 제공했다. 광주항쟁 당시 미국의 역할과 동향을 살필 수 있는 이들 문서는 1997년 5·18민주화운동자료 총서(전 61권)로 묶여 발간됐다. 국무성의 기밀 해제 문서는 권당 700여 쪽짜리 5권에 담겼다.

여기에 포함된 문서 중 하나가 최근 ‘광주 소요에 대한 체류자의 설명’이라는 제목으로 공개돼 눈길을 끌었다. 선교사가 일지 형식으로 써 놓은 이 문서는 광주가 갈구하는 제3자의 객관적 증언(목격자 증언)이 기록돼 있다. ‘5·18은 공수부대의 무자비한 폭력에 의해 발생했고, 공산주의들이나 불순분자의 책동은 전혀 없었다.’ 미국 대사관이 각별하게 이 문서에 “지금까지 우리가 본 보고서 중 가장 균형 잡힌 광주사태 기록이자 분석”이라고 써 놓을 정도였다. 우리는 이 보물을 본의 아니게 20년 동안 방치했다.

이는 5월을 체계·조직적으로 연구할 기반이 취약하다는 구조적 결함과 직결돼 있다. 5월을 대표하는 5·18기념재단과 최근 들어선 5·18 민주화운동 기록관이 각각 연구소를 두고 있지만 실제로 고유 업무를 맡은 직원은 후하게 쳐도 열 손가락 꼽을 정도다. 광주시는 영화 ‘택시 운전사’에 등장하는 브리샤 택시를 시 청사에 전시하기 위해 하루 50만 원씩 임대료를 주면서도 5월 관련 연구비 증액에는 인색하다. 안타깝지만 현실이다.



진상 규명·연구 작업 병행을



5월 역사 연구와 기록의 방치 상태를 이대로 지속하면 그 결과는 불 보듯 뻔하다. 광주는 취약한 역사적 토양 때문에 늘 극우 보수주의자의 궤변과 요설에 휘둘리는 운명에 놓일 것이다. 5월을 폄훼하는 세력에 맞서 증언과 절규로 방어선을 구축하고 있는 ‘5월 세대’가 스러지고 난 이후 상황도 뻔하다. 그 결과는 역사의 교훈이 말해준다. 일본서기(日本書紀)의 ‘4세기 중엽부터 백제가 나주 일대의 마한 소국들을 지배했다’는 기술을 신봉하는 학설에서 벗어나려고 악전고투하는 지역 역사학계가 대표적이다.

3년 뒤면 5·18 40주년이다. 이제라도 5월 역사를 집대성하는 연구를 진행하고 그 연구의 결과물인 통서와 실록의 발간을 준비해야 할 때다. 전일빌딩 헬기 기총소사와 전투기 출격설 등 진상 규명과 함께 장기적 관점에서 5월에 대한 체계적이고 조직적 연구를 진행하지 않는다면 광주의 5월은 잊힐 것이다. 늦었지만 이제라도 5월을 현재형으로 바꾸는 역사화 작업을 시작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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