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로 만나는 오월] ③ 전남여성플라자 5·18 행사
‘여성작가 5인이 말하는 오월’ 그림·음악·소설로 5월 상처 어루만지다
2017년 05월 11일(목) 00:00
전남여성플라자 ‘여성작가 5인이 말하는 오월’ 행사에 참여하는 작가들. 왼쪽부터 김화순·노정숙·정유하·주홍씨. 오른쪽은 공선옥 5·18 소설 ‘그 노래는 어디서 왔을까’.
“5·18을 애써 잊은 채 살아왔을 땐 오월 영령들에게 진 빚을 몰랐습니다. 하지만 광주에서 활동하는 이상 5·18을 떼어놓고 생각할 수 없었습니다. 작업을 하면 할수록 더 빚이 늘어나고 할일이 많다는 걸 알게 됐습니다.”

대통령 선거 개표가 한창이던 9일 밤, ‘메이홀’에서는 5·18을 주제로 작품활동을 하고 있는 여성작가 4명이 모여 ‘광주 오월’을 이야기하는 시간을 가졌다.

김화순(회화)·노정숙(판화)·주홍(샌드애니메이션)·정유하(작곡)씨 등 다양한 장르에서 활동하는 예술인들이다. 이들은 무안 전남여성플라자가 기획한 ‘여성작가 5인이 말하는 오월’ 행사에 참여한다. 공선옥 소설가는 일정상 함께하지 못했다.

16일부터 6월7일까지 열리는 행사를 앞두고 미리 만난 작가들은 오월 작업을 시작하게 된 계기와 당시의 경험을 나누며 친분을 다졌다.

각자 장르가 다르니 이날 처음 만난 작가들도 있었다. 그러나 이야기를 나눌수록 맞장구가 많아지고 공감이 이어졌다.

주홍 작가는 “1980년 5월 13살 때 거리에서 사람들이 경찰들에게 맞고 끌려가는 장면을 보고 엄청난 공포를 겪었다”며 “한번 빠지만 매몰될까봐 한동안은 일부러 5·18 작품을 하지 않았지만 결국엔 할 수 밖에 없었다”고 말했다.

정유하 작곡가도 처음부터 5·18 작업을 하지는 않았다.

“전남대 음악학과 2학년이었어요. 친구 따라 매일 집회에 참여하긴 했지만 5·18을 작품 주제로 삼지는 않았어요. 1997년 미국 유학 시절 박사과정 마지막 작품을 만들던 중 광주 5·18이 떠올랐어요. 스스로 덮어놓았던 걸 열게 된거죠. 불탄 트럭, 경찰에게 맞아 피멍이 든 사촌동생도 다시 생각나고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는 부채의식이 생겼어요. 곡을 쓰고 나니 후련해졌습니다.”

정씨는 현재 전남대 5·18연구소 연구교수로 활동하며 오월 음악을 수집·연구하고 있다.

김화순 작가는 작품으로 5·18 트라우마를 치유했다고 밝혔다. 김 작가는 “초등학교 4학년때 함평에 살았는데 어느날 광주-목포간 도로에 차가 한대도 다니지 않았다”며 “광주로 가겠다는 오빠를 가족들이 말리고, 무기를 챙겨든 학생들이 버스를 타고 지나간 모습이 눈에 선하다”고 말했다. 이어 “어른이 된 이후에도 그때 본 풍경이 꿈에 나왔다”며 “다큐로 만들어보자는 생각에 가족 이야기를 담아 완성하니 더이상 꿈을 꾸지 않았다”고 덧붙였다.

노정숙 작가에게도 5·18은 꺼내기 싫은 기억이다. 여고 2년때 시위에 참여한 두살 위 오빠를 찾으러 다니며 수많은 참상을 목격했다. 전남대 미술학과에 입학한 노 작가는 주제를 숨긴 채 5·18 기억을 동판화로 표현했다.

“서울(성심여대 대학원 판화학과) 유학 시절, 전남대 출신이라는 이유로 대학원장이 ‘데모를 하지 않겠다’는 각서를 쓰라고 하더군요. 또 누군가 술자리에서 ‘광주는 저주의 땅이야’하는 소릴 듣고 깊은 상처를 받았어요. 다른 작업을 할 수 없었습니다. 마음과 손으로 하는 동판화 작업은 오월 상처를 스스로 치유하는 과정입니다.

이번 행사는 크게 컨퍼런스와 전시로 구성된다. 16일 각 작가들의 발표와 함께 작가와의 대화가 진행된다.

김 작가는 오월 아주머니가 주먹밥을 내미는 ‘자네 밥은 먹었능가’ 등 회화 10점을, 정 작곡가는 음악과 함께 5·18 참상과 평화를 담은 교향시 ‘업라이징’ 작곡 노트를 선보일 예정이다. 주 작가는 5·18 당시 희생당한 어린이와 돌아오지 않는 남편을 기다리는 임신부를 소재로 한 샌드애니메이션을 준비하고 노 작가는 ‘형-87. 상처난 기록’ 등 동판화를 선보인다.

공선옥 소설가는 5·18 소설 ‘그 노래는 어디서 왔을까’ 중 한구절을 크게 확대해 낭독하고 설명할 계획이다.

공씨는 “소설 속에는 실제 오월 상처를 겪은 여성을 모델로 한 주인공 두명이 나온다”며 “주인공들이 겪은 상황이 너무 참혹해 환상적으로 묘사한 부분을 설명하며 전쟁 등으로 전세계 여성들이 겪는 아픔과 상황을 이야기하겠다”고 밝혔다.

작가들은 ‘오월은 아직 진행 중이다’고 입을 모은다.

“그때를 겪어본 우리들도 아직까지 5·18을 잘 이해하지 못하는 데 사람들은 너무 쉽게 이야기하는 것 같아요. 작품으로 5·18을 기록하고 알리는 활동을 꾸준히 할 생각입니다.” 문의 061-260-7300.

/김용희기자 kimyh@kwangju.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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