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종구의 中國 인물 이야기 <70> 북위 6대 황제 효문제
낙양 천도 후 적극적 한화정책
2017년 02월 21일(화) 00:00
효문제(467-499)는 북위의 제6대 황제로 본명은 탁발굉이다. 5대 황제 헌문제의 아들로 5세에 즉위했다. 오랜기간 조모 풍태후의 섭정하에 있었지만 풍태후 사후 친정에 나서 낙양으로 천도하는 등 적극적인 한화정책을 추진했다.

그의 치세는 조모 풍태후와 불가분의 관계에 있다. 4대 황제 문성제가 26세로 승하하자 장남인 헌문제가 11세로 왕위에 오르고 그녀는 어린 헌문제를 대신해 임조청정에 나섰다. 손자인 효문제가 태어나자 헌문제에게 통치권을 넘겼다. 그러나 태후파와 황제파의 갈등이 심해지자 470년 헌문제는 5세 아들 효문제에게 제위를 넘겨주고 풍태후가 2차 섭정에 나섰다. 476년 헌문제를 독살하고 490년 사망할 때까지 북위는 사실상 풍태후의 천하였다. 나어린 효문제는 묵묵히 자신의 친정을 기다릴 수 밖에 없었다.

그에 대한 풍태후의 교육은 엄격하기 그지 없었다. 즉위 초기에는 한 겨울에 홑옷만 입힌 효문제를 냉방에 가두어 며칠씩 굶기기도 했다. 유교경전이나 제가백가 사상에 통달토록 강도 높은 제왕학을 훈육하였다. 특히 조칙을 작성할 때 황제가 직접 쓰도록 했다. 그 과정에서 한족의 풍습과 윤리에 익숙해졌다. 어려서부터 한화(漢化)의 의지가 배양된 셈이다.

490년 풍태후가 죽자 25세가 된 효문제의 친정이 시작되었다. 그의 통치이념은 북위의 문명화, 한화였다. 강남의 화려한 귀족문화가 북위에서도 구현되기를 희망했다. 낙양천도는 풍태후의 그늘에서 벗어나기 위한 불가피한 선택이었다. 20년간 풍태후의 권세 앞에서 황제권을 제대로 행사할 수 없었다. 수도 평성은 그녀가 구축해놓은 구질서의 본산이었다. 새로운 도시에서 자신의 국정이상을 펼쳐보고 싶었다. 이런 견지에서 강남에 가까운 낙양은 이상적인 선택지였다. 천도를 단행한 이유는 크게 세 가지로 요약될 수 있다. 첫째로 유족민족 문화에서 벗어나 한족의 고급 문화를 적극 수용하는데 목적이 있었다. 둘째로 강남을 공략하기 위해서는 수도 평성이 지나치게 북방에 치우쳐 있었다. 방어하기에는 좋지만 통일전쟁을 수행하기에는 너무 변방이었다. 셋째로 인구가 늘어나 평성 주변의 경제력이 한계에 직면했다는 점이다. 중원의 풍부한 생산력이 탐났다. 북위의 역사서 「위서」에는 천도 이유를 한화와 통일로 기술하고 있다. 그러나 풍태후의 영향력에서 탈피하고 싶었던 그의 심정이 중요한 요인이었음을 부인하기는 어렵다.

493년 그는 강남 평정의 뜻을 밝혔다. 직접 30여만명의 군대를 이끌고 친정했다. 균전법 실시로 국력이 충실해졌지만 강남을 정복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특히 태무제 남정이래 40여년간 커다란 전쟁을 치룬 적이 없었다. 탁발휴, 탁발정 같은 친족과 상서 이충 등이 극력 반대했다. 말 앞에 엎드려 간청했다. 효문제는 남정을 할 건지 아니면 천도를 받아들일 것인지 양자택일을 강요했다. 사서에는 다음과 같이 기록되있다. “남정군을 동원해 성공하지 못하면 무엇으로 후세에 보일 것인가, 짐은 남정하고자 하노라. 만약에 남벌을 하지 않는다면 마땅히 이곳으로 천도하고자 하노라.” 남안왕 탁발정이 “오직 폐하께서 남정만 거두신다면 저희들은 도읍을 낙양으로 옮기는데 찬성하겠습니다”고 응답했다. 북위의 낙양시대가 시작되었다.

낙양 천도 후 적극적인 한화정책을 실시했다. 스스로 성을 원(元)으로 고쳐 이름을 원굉이라 하였다. 호족과 한족의 통혼을 장려하고 귀족사회적 질서를 정비했다. 소위 성족상정(姓族詳定) 정책이다. 범양 노씨, 형양 정씨 등 한족 5가문을 황실과 통혼 가능한 1급 귀족으로 승인했다. 목, 육, 하 등 선비족의 8성도 최고 가문으로 인정했다. 백만명에 달하는 선비족을 낙양 주변으로 이주시켜 새 수도의 경제적 기반을 강화하려 했다. 강력한 한화정책은 결국 보수파의 반발을 가져왔다. 황태자 원순을 꼬드겨 반란을 도모했다. 이를 사전에 알아챈 효문제는 태자를 폐하고 독살했다. 499년 남제를 친정하는 도중 병사했다. 그의 사후 북위는 혼란에 빠져 동위와 서위로 분열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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