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는 문화시민] <13> 런던 심포니 오케스트라
문화 담 쌓던 주민들 음악으로 담 허물었다
![]() 세계 5대 오케스트라로 불리는 런던 심포니 오케스트라(LSO)는 시민들의 문화적 감성과 삶의 여유를 위해 지난 1990년 부터 문화예술교육 프로그램인 ‘LSO 디스커버리’를 진행해오고 있다.
〈런던 심포니 오케스트라 제공〉 |
“노래를 부르다 보면 일상의 스트레스들이 몸밖으로 빠져 나가는 것 같아요,”
런던 동부의 EC1에 거주하는 포티니 베고티스(Fotini Vergotis)는 매주 월요일 저녁을 손꼽아 기다린다. 지난해 런던 심포니 오케스트라(London Sympony Orchestra·이하 LSO) 커뮤니티 합창단(Community Choir)에 참가하면서 부터다. 노래솜씨가 그리 좋은 건 아니지만 40여 년간 몸담았던 직장에서 정년은퇴 한 후 소일거리를 찾다가 이웃의 권유로 등록했다. 처음엔 조금 낯설어 어색하기도 했지만 1년 동안 함께 노래를 부르다 보니 수강생 100명이 모두 친구가 됐다.
젊은 첼리스트 클랜 고프는 3년 전 런던 트라팔가 광장에서의 감동을 잊지 못하고 있다. LSO의 연주자 양성 프로그램인 ‘LSO On Track’에 참가했던 그는 어린 시절 부터 꿈꿔왔던 세계적인 오케스트라와 함께 무대에 서는 벅찬 경험을 한 것이다. “처음엔 LSO 단원들의 연주실력에 기가 눌리면 어떻게 하나 걱정을 했지만 몇차례 호흡을 맞추면서 ‘그 순간’을 즐기게 됐다”면서 ‘리허설을 마치고 수천명의 런던 시민이 모인 트라팔가 광장에서 LSO와 협연을 했던 음악회는 내 생애 최고의 시간이었다.”
지난 1904년 영국 최초의 독립교향악단으로 창설된 LSO의 문화예술교육은 100여 년의 역사와 명성을 그대로 드러낸다. 1년에 절반 가까운 시간을 해외 순회공연으로 바쁘지만 국내 체류기간 동안에는 런던 시민들의 문화향유와 교육에 헌신한다. 1년 평균 국내 공연은 70회, 해외공연은 50∼60회(2015년 기준). 공연 준비기간까지 감안하면 1년 365일이 부족할 정도다. 하지만 LSO는 어린이, 청소년, 성인 뿐만 아니라 다문화 지역이나 병원, 불우 시설 등 음악이 필요한 곳이면 어디든지 찾아간다. 그래서 LSO의 문화예술교육 프로그램을 들여다 보면 시민들에 대한 열정과 책임감이 고스란히 전해진다.
지난 여름, 취재차 만난 LSO 캐서린 맥도웰 단장(Managing Director·사진)은 시민들에게 ‘음악이 있는 삶’을 제공하는 데 가장 역점을 두고 있다고 말했다.
“LSO의 미션에는 크게 두 가지 축이 있습니다. 수준높은 연주 활동이 그 하나고 또 다른 하나는 문화예술교육 활동입니다. 그러기 위해 런더너들이 세계적인 오케스트라에 대한 거부감을 갖지 않도록 다양한 프로그램으로 문턱을 낮추고 있습니다.” 말하자면 문화예술교육을 LSO의 지역 공헌 활동이 아닌 LSO의 존재이유나 다름없는 본질적인 영역으로 간주하고 있다는 얘기다. 이 같은 그의 주장은 예산 배정(한해 평균 16억)과 조직구성(20명)에서 잘 나타나 있다.
올해로 26주년을 맞은 ‘LSO 디스커버리’(Discovery)는 대표적인 문화예술교육 프로그램이다. 1980년 대 중반부터 영국의 음악단체들은 영국문화예술위원회 등으로 부터 공적기금을 받아 연주활동을 하면서도 많은 시민들이 공연장에 오지 못하는 현실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경제적 여건이 넉넉지 않은 서민들에겐 ‘그들만의 음악회’였던 것이다. 스코티시 챔버 오케스트라와 런던 신포니에타 같은 작은 음악 단체들이 공연장 밖 사람’들에게 눈을 돌리게 되면서 문화예술교육의 싹이 트기 시작했다.
이즈음, LSO는 어린이, 청소년, 지역민들이 일상 속에서 음악이나 예술을 ‘발견’할 수 있도록 교육하자는 취지에서 ‘LSO 디스커버리’를 추켜들었다. 당시 스코티시 챔버 오케스트라에서 지역사회를 위한 교육활동을 총괄했던 캐서린 맥도웰을 영입해 영국의 오케스트라 가운데에서는 가장 먼저 아웃리치(Outreach) 프로그램에 뛰어들었다.
LSO 디스커버리가 주목을 받게 된 데에는 영국 정부의 ‘창의영국’(Creative Britain) 기조의 영향이 있었다. 영국 정부는 일선 학교의 음악교육을 창의성을 키우는 방향으로 전환하면서 14세 이하 어린이들에게 악기 연주는 물론 작곡까지 가르치도록 한 것이다. 학생들은 물론 이들을 지도하는 교사들은 크게 당황했다. 작곡 교육에 부담을 느낀 교사들은 지역사회에 SOS를 요청했고 풍부한 인적 인프라를 갖춘 LSO는 학생들과 교사들을 대상으로 하는 문화예술교육에 힘을 얻게 됐다.
여기에는 LSO가 둥지를 틀고 있는 바비칸 아트센터의 지리적 특성도 한몫했다. 금융중심지 ‘시티 오브 런던’의 구도심에 자리한 바비칸 센터는 폐허된 지역을 예술로 되살리기 위해 세워진 거점공간으로 주민의 상당수가 생활수준이 높지 않은 편이었다. 그렇다 보니 전시장이나 공연장과는 담을 쌓고 사는 저소득층이었다. 바비칸 센터안에 기초예술 공연장과 교육시설, 고층아파트 주거시설을 유기적으로 결합시킨 것도 문화로 지역을 재생시키려는 런던시의 전략적 고려가 작용했다.
그런 이유에서인지 LSO 디스커버리는 지역민을 대상으로 한 프로그램이 많다. 노래로 지역민들과 하나가 되는 ‘LSO 커뮤니티 합창’을 비롯해 ‘LSO 디스커버리 합창‘, ‘노래하는 날’(Singing Days) ‘가족 점심 음악회’ ‘패밀리 아트 페스티벌’, 어린이들을 위한 ‘School and Family Concerts’, 지역 음악영재들을 위한 ‘LSO On Tracks’ 등 다양하다. 특히 음악으로 난치병이나 불치병에 걸린 어린이들을 위로하는 ‘어린이 병원 프로그램’은 예술의 공공성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케이스다. 해외순회공연 기간에는 그 도시의 학생들을 대상으로 마스터 클래스 등을 진행한다.
2003년 LSO는 문화예술교육의 외연을 넓히기 위해 바비칸센터에서 5분 거리에 있는 옛 건물인 세인트루크 교회를 매입해 음악교육센터를 개관했다. 세인트루크를 계기로 LSO 디스커버리는 한단계 도약하는 발판을 마련했다. 특히 세인트루크의 테크놀로지룸이 대표적인 예로 청소년들은 최첨단 음악기기를 다루며 LSO 예술가들의 지도에 따라 작곡을 한다.
연간 LSO 프로그램에 참여하는 인원은 6만여명. 1년 평균 약 147개의 음악회, 문화예술교육 프로그램은 946개, 초·중학생 참가인원은 1만6967명, 예술가들은 2902명(2014-15시즌 기준)이다.
맥도웰 단장은 “세계 최고의 오케스트라가 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지역 주민의 애정과 지지가 절대적이다. 1년 평균 국내외 공연횟수가 120∼130회에 달할 만큼 빡빡한 일정에서도 LSO의 단원들은 헌신적으로 디스커버리 프로그램에 참여한다. 물론 힘들기도 하지만 단원들은 이 시간을 통해 지역민들과 교감하는 즐거움을 피부로 느끼기 때문이다. 우리가 문화예술교육에 사활을 걸고 있는 이유다.”
/jhpark@kwangju.co.kr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 지원을 받았습니다.
런던 동부의 EC1에 거주하는 포티니 베고티스(Fotini Vergotis)는 매주 월요일 저녁을 손꼽아 기다린다. 지난해 런던 심포니 오케스트라(London Sympony Orchestra·이하 LSO) 커뮤니티 합창단(Community Choir)에 참가하면서 부터다. 노래솜씨가 그리 좋은 건 아니지만 40여 년간 몸담았던 직장에서 정년은퇴 한 후 소일거리를 찾다가 이웃의 권유로 등록했다. 처음엔 조금 낯설어 어색하기도 했지만 1년 동안 함께 노래를 부르다 보니 수강생 100명이 모두 친구가 됐다.
지난 여름, 취재차 만난 LSO 캐서린 맥도웰 단장(Managing Director·사진)은 시민들에게 ‘음악이 있는 삶’을 제공하는 데 가장 역점을 두고 있다고 말했다.
“LSO의 미션에는 크게 두 가지 축이 있습니다. 수준높은 연주 활동이 그 하나고 또 다른 하나는 문화예술교육 활동입니다. 그러기 위해 런더너들이 세계적인 오케스트라에 대한 거부감을 갖지 않도록 다양한 프로그램으로 문턱을 낮추고 있습니다.” 말하자면 문화예술교육을 LSO의 지역 공헌 활동이 아닌 LSO의 존재이유나 다름없는 본질적인 영역으로 간주하고 있다는 얘기다. 이 같은 그의 주장은 예산 배정(한해 평균 16억)과 조직구성(20명)에서 잘 나타나 있다.
올해로 26주년을 맞은 ‘LSO 디스커버리’(Discovery)는 대표적인 문화예술교육 프로그램이다. 1980년 대 중반부터 영국의 음악단체들은 영국문화예술위원회 등으로 부터 공적기금을 받아 연주활동을 하면서도 많은 시민들이 공연장에 오지 못하는 현실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경제적 여건이 넉넉지 않은 서민들에겐 ‘그들만의 음악회’였던 것이다. 스코티시 챔버 오케스트라와 런던 신포니에타 같은 작은 음악 단체들이 공연장 밖 사람’들에게 눈을 돌리게 되면서 문화예술교육의 싹이 트기 시작했다.
이즈음, LSO는 어린이, 청소년, 지역민들이 일상 속에서 음악이나 예술을 ‘발견’할 수 있도록 교육하자는 취지에서 ‘LSO 디스커버리’를 추켜들었다. 당시 스코티시 챔버 오케스트라에서 지역사회를 위한 교육활동을 총괄했던 캐서린 맥도웰을 영입해 영국의 오케스트라 가운데에서는 가장 먼저 아웃리치(Outreach) 프로그램에 뛰어들었다.
LSO 디스커버리가 주목을 받게 된 데에는 영국 정부의 ‘창의영국’(Creative Britain) 기조의 영향이 있었다. 영국 정부는 일선 학교의 음악교육을 창의성을 키우는 방향으로 전환하면서 14세 이하 어린이들에게 악기 연주는 물론 작곡까지 가르치도록 한 것이다. 학생들은 물론 이들을 지도하는 교사들은 크게 당황했다. 작곡 교육에 부담을 느낀 교사들은 지역사회에 SOS를 요청했고 풍부한 인적 인프라를 갖춘 LSO는 학생들과 교사들을 대상으로 하는 문화예술교육에 힘을 얻게 됐다.
여기에는 LSO가 둥지를 틀고 있는 바비칸 아트센터의 지리적 특성도 한몫했다. 금융중심지 ‘시티 오브 런던’의 구도심에 자리한 바비칸 센터는 폐허된 지역을 예술로 되살리기 위해 세워진 거점공간으로 주민의 상당수가 생활수준이 높지 않은 편이었다. 그렇다 보니 전시장이나 공연장과는 담을 쌓고 사는 저소득층이었다. 바비칸 센터안에 기초예술 공연장과 교육시설, 고층아파트 주거시설을 유기적으로 결합시킨 것도 문화로 지역을 재생시키려는 런던시의 전략적 고려가 작용했다.
그런 이유에서인지 LSO 디스커버리는 지역민을 대상으로 한 프로그램이 많다. 노래로 지역민들과 하나가 되는 ‘LSO 커뮤니티 합창’을 비롯해 ‘LSO 디스커버리 합창‘, ‘노래하는 날’(Singing Days) ‘가족 점심 음악회’ ‘패밀리 아트 페스티벌’, 어린이들을 위한 ‘School and Family Concerts’, 지역 음악영재들을 위한 ‘LSO On Tracks’ 등 다양하다. 특히 음악으로 난치병이나 불치병에 걸린 어린이들을 위로하는 ‘어린이 병원 프로그램’은 예술의 공공성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케이스다. 해외순회공연 기간에는 그 도시의 학생들을 대상으로 마스터 클래스 등을 진행한다.
2003년 LSO는 문화예술교육의 외연을 넓히기 위해 바비칸센터에서 5분 거리에 있는 옛 건물인 세인트루크 교회를 매입해 음악교육센터를 개관했다. 세인트루크를 계기로 LSO 디스커버리는 한단계 도약하는 발판을 마련했다. 특히 세인트루크의 테크놀로지룸이 대표적인 예로 청소년들은 최첨단 음악기기를 다루며 LSO 예술가들의 지도에 따라 작곡을 한다.
연간 LSO 프로그램에 참여하는 인원은 6만여명. 1년 평균 약 147개의 음악회, 문화예술교육 프로그램은 946개, 초·중학생 참가인원은 1만6967명, 예술가들은 2902명(2014-15시즌 기준)이다.
맥도웰 단장은 “세계 최고의 오케스트라가 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지역 주민의 애정과 지지가 절대적이다. 1년 평균 국내외 공연횟수가 120∼130회에 달할 만큼 빡빡한 일정에서도 LSO의 단원들은 헌신적으로 디스커버리 프로그램에 참여한다. 물론 힘들기도 하지만 단원들은 이 시간을 통해 지역민들과 교감하는 즐거움을 피부로 느끼기 때문이다. 우리가 문화예술교육에 사활을 걸고 있는 이유다.”
/jhpark@kwangju.co.kr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 지원을 받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