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월광대’ 박효선 전집 나온다
극단 ‘토박이’ 창단
5·18 관련 연극 제작
고인 18주기에 맞춰
3권 분량으로 제작
2016년 03월 22일(화) 00:00
〈1982년 8월22일〉

유독 쉬 잠들지 않는 밤이다. 시를, 위대한 시인의 작품들을 읽어도-가슴에 닿는 게 없다. 나는 숙맥이 돼버린 듯 싶다. 짬짬이 책을 가까이 해야겠다. 하루 단 한 페이지를 보더라도 다시 책을 살 한 조각 다루듯 해야겠다.

〈1992년 어느날〉

10년 동안 계속 해온 학원 강사 생활을 ‘혹성탈출!’ 드디어 이달 말부터 이 요지경 속을 탈출하기로했다. 얼마나 그 얼마나 기다렸던 순간이었나. 늙는다는 건 완성되어 가는 것, 초조해 할 필요없다. 〈중략〉 얘기를 처음 꺼냈을 때 아내의 눈자위에 드리운 그림자를 나는 놓치지 않았다. 하지만 아내는 아들놈에게 ‘사람은 자기가 하고 싶은 걸 하며 살아야 한다’고 곁들인다. 간신히 궁지에서 빠져나올 수 있어고, 영악한 아들놈에게 죄라도 지은 느낌이었다.





토박이 단원들 오랫동안 준비



‘오월광대’ 박효선(1954∼1998)의 육성이 담긴 일기엔 그의 고뇌가 담겨 있다. 언제나 ‘오월 광주’를 노래했던 극단 토박이 대표 박효선이 간암으로 세상을 떠난 지 어느 덧 18년이 지났다.

토박이 단원을 비롯해 그를 기억하는 이들이 ‘박효선 전집’(전 3권)을 준비중이다. 5주기였던 지난 2003년 ‘박효선을 기리는 사람들’이 120페이지 분량의 추모 문집 ‘오월 광대’를 펴낸 적은 있지만 그의 작품과 일기, 평론 등을 포함한 책자는 이번이 처음이다.

1권은 대표작과 비평, 박효선론을 담는다. 1978년 함평 농민회 회원들의 요청으로 집필했던 마당극 대본 ‘함평고구마’를 비롯해 ‘돼지풀이’, ‘잠행’, ‘시민군 윤상원’, ‘밀항 탈출’이 수록된다. 특히 ‘오월 3부작’으로 불리는 ‘금희의 오월’과 ‘모란꽃’, ‘청실홍실’이 실릴 예정이다.

2권은 보존작이다. ‘누가 모르는가’, ‘하이파에 돌아와서’, ‘딸들아 일어나라’, ‘어머니’, ‘김삿갓 광주방랑기’, ‘그대에게 보내는 편지’, ‘아버지에게도 눈물은 있다’, ‘가물치 왕자’, ‘레드 브릭’ 등 9편이 실린다.

3권은 수기로 꾸민다. 신문·잡지 기고문, 팸플릿에 실린 글, 일기, 인터뷰 등이 담겨 있다. 한 연극 예술가의 일기, 토박이가 걸어온 길, 무대에 올리면서 등으로 구성했다. 부록으로는 임철우, 김경주 등 지인들이 기억하는 박효선의 모습을 실을 예정이다.



황광우씨 적극 지원



‘박효선 전집’은 토박이 단원들이 오래전부터 준비해왔던 작업이었지만 상황이 여의치 않아 좀처럼 진도를 나가지 못한 상태였다. 여기에 힘을 실어 준 이가 황광우씨다. ‘들불야학’ 시절 처음 박효선과 인연을 맺었던 황 씨는 ‘오월광대’ 책자를 읽고 “박효선을 너무 몰랐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가 토박이를 만들고 5월 관련 연극 등을 제작해왔다는 사실은 알고 있었지만 5·18 당시 시민군 홍보부장을 맡았다는 사실 등은 전혀 몰랐다. 무엇보다 “국문학적, 연극사적으로 의미가 있는 그의 작품을 분석하고 그의 삶을 정리할 필요가 있다”는 생각에 팔을 걷어 붙였다.

제작비는 박효선을 기억하는 이들이 ‘함께’ 책을 만든다는 의미를 살려 일정 부분은 모금을 통해 마련할 예정이다.



제작비 일정 금액 모금



‘박효선 전집’ 출간과 함께 토박이는 또 다른 출발을 앞두고 있다.

전남대 국문과 출신으로 전남대 극회에서 연극을 시작한 박효선은 1983년 극단 토박이를 창단하고 1989년 전남대 정문에 ‘민들레 소극장’을 오픈했다. ‘금희의 오월’, ‘모란꽃’ 등 5월 관련 작품들이 바로 이곳에서 탄생했다.

하지만 1994년 계속되는 경영난을 이기지 못해 폐관 공연작을 올렸고, 이 때 단원들도 놀랄 일이 벌어졌다. 폐관 소식을 들은 이들이 십시일반 돈을 보내왔고 1995년 궁동 예술의 거리에 다시 극장을 오픈했다.

민들레 소극장은 올해부터 동명동 전남여고 뒷편에 마련한 새로운 공간에서 관객들을 맞을 예정이다. 지난 16일 찾아간 새 공간은 궁동 건물보다 층고가 높고 면적도 넓어 작품을 올리기에 적합한 곳이었다. 3층은 연습실과 사무실, 4층은 150석 규모 극장으로 사용할 예정이다. 이사는 지난해 7월 했지만 단원들이 일일이 모든 공사를 진행하다 보니 공정이 늦어지고 있다.

지난해 ‘모란꽃’을 무대에 올리며 오월 레퍼토리 공연에 들어간 토박이는 올해 ‘금희의 오월’을 공연할 예정이다. 개관식은 책 출간에 맞춰 9월에 열 계획이다.



“오월 상설공연 이어갈 것”



“선배님은 천생 연극쟁이셨어요. 계획성과 추진력이 뛰어나셨죠. 새 작품에 들어갈 때면 항상 새 공책을 사서 작업 노트를 쓰며 계획적으로 작품을 제작하셨어요. 극장이 더러우면 아무말 없이 조용히 먼저 빗자루를 들던 그런 분이셨죠. 새로 마련한 공간에서 오월 상설 공연을 쭉 이어나갈 생각이예요. 그게 남아 있는 우리가 해야 할 일이죠.”

1987년부터 토박이에서 활동한 임해정씨는 “새로 마련한 공간은 대관도 진행해 활발하게 돌아가도록 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김미은기자 mekim@kwangju.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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