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은영의 '그림생각' (146) 귀향]아픈 역사에 대한 눈물겨운 위로
2016년 03월 03일(목) 00:00
‘태워지는 처녀들’
히틀러의 나치시대가 저질렀던 ‘홀로코스트’를 인류가 망각할 수 없게 한 것은 그 역사적 사건을 적나라하게 보여준 영화가 지금도 계속 제작되고 있기 때문인지 모른다는 생각을 해본다. ‘쉰들러 리스트’ ‘인생은 아름다워’ ‘피아니스트’ 등의 영화는 악령에 홀린 광기의 시대에 대한 나치 독일의 역사적 책임을 통감하게 했다. 일본이 일제시대의 만행에 대해 끊임없이 자기변명이나 억지 주장을 할 때마다 단 한 편의 영화가 절실했던 것도 이 때문이다.

일본군 위안부 영화 ‘귀향’은 ‘이런 일이 실제로 벌어졌다는 무서운 사실’을 그 어떤 역사적 기록보다 극명하게 보여주고 있다. ‘귀향’을 관람했던 3·1절은 여느 해와 같은 휴일이 아니라 먹먹해진 가슴으로 그 날의 의미를 되새기게 해준 기념일로 기억될 것 같다.

영화 ‘귀향’은 조정래 감독이 종군 위안부 피해자들을 위한 나눔의 집에서 맞닥뜨린 강일출 할머니의 충격적인 그림 ‘태워지는 처녀들’을 모티브로 시작했다고 한다. 강일출 할머니(1928∼ )의 ‘태워지는 처녀들’은 일본군의 감시 아래 한쪽 불구덩이에서 친구들이 타 죽어가는 끔찍한 학살을 보며 겁에 질린 자신을 그린 그림이다.

열여섯 살 때 집에 순사가 찾아와 보국대로 간다고 속여 끌려간 할머니는 중국 심양, 장춘, 목단강 위안소에서 지옥 같은 생활을 하다가 전쟁이 끝나갈 무렵 장티푸스를 심하게 앓아 부대 밖으로 이송되어 불에 태워지려는 순간 조선 독립군들의 도움으로 구출되었다고 한다. 영화 ‘귀향’에서 보여 지듯이 당시의 처절하고 고통스러웠을 상황이 그림 속에 절절이 담겨있다.

할머니의 그림은 미술심리치료 차원에서 시작되고 표현된 그림이지만 이제는 그 의미를 넘어서 비극적인 역사의 한 페이지가 되었다. 이 한 점의 그림 속에 전쟁, 식민지, 위안부 등 모든 복합적인 역사가 스며있기 때문이다. 위안부로 끌려간 소녀들의 넋들을 불러내 고향으로 돌려보내기 위한 한바탕 귀향굿이기도 한 영화 ‘귀향’은 현재 2백 만 명 가까운 관람객 돌풍을 이어가고 있어 아픈 역사에 대한 위로가 오랜만에 눈물겹다.

〈광주비엔날레 전시부장·미술사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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