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립극장이 산을 찾는 까닭은
박 진 현
편집국 부국장·문화선임기자
2015년 09월 23일(수) 00:00
요즘 국립극장 직원들은 자주 북한산과 관악산에 오른다. 등산로 입구나 산 정상에서 창극(唱劇)에 거부감(?)이 없는 중·장년 등산객들에게 홍보 전단지를 나눠주기 위해서다. 서울 시내에서 열리는 수많은 인문학 강좌도 이들이 즐겨 찾는 코스다. 수십 여 명의 수강생은 지나치기 아까운 단체관람 섭외 1순위이기 때문이다.

민간단체도 아닌 국립극장이 티켓 판매에 열을 올리게 된 건 지난 2012년 레퍼토리 시즌제를 도입하면서부터다. 레퍼토리 시즌제는 국립극장의 산하단체인 국립 창극단과 무용단 및 관현악단의 1년 치 공연 라인업을 사전 공개하고 티켓을 판매하는 것으로 관객 입장에선 관람 계획을 미리 세울 수 있는 장점이 있다. 하지만, 국악과 한국 무용은 ‘고리타분하다’는 편견 때문에 ‘호불호’가 갈려 대중적인 인기가 높지 않다. ‘철밥통’으로 불리는 국립극장의 직원들이 산으로 간 이유다. 가만히 앉아서 손님을 기다리다가는 자칫 극장이 텅 빌 수도 있기 때문이다.

이처럼 국악의 대중화는 국립극장의 생존과 직결된 과제다. 지난 2011년 취재차 만난 임연철 국립극장장(현 건양대 교수)은 국악 인구의 저변 확대를 최우선으로 여길 수밖에 없는 고충을 털어놓았다. 그에 따르면 서울시 인구 1천만 명 가운데 국악 마니아는 1000∼2000명 안팎으로 추산된다고 한다.

이렇다 보니 매번 기획공연 때마다 해오름극장(1563석) 객석을 가득 채우는 것도 버겁다. 그래서 내놓은 게 ‘국립극장 고고고’나 ‘정오의 음악회’ 등의 교육 프로그램. 아무리 우리 음악이 좋다고 말해도 평소 ‘접할 기회가 없는’ 사람에게는 친근해지기 힘든 생소한 장르이기 때문이다.

그중에서도 지난 2009년 신설된 ‘국립극장 고고고-보고, 듣고, 즐기고’는 최고의 히트상품이다. 교과서에 수록된 희곡과 전통국악을 학년별 맞춤형 공연으로 제작해 국악에 대한 이해를 높이는 이 프로그램에만 8만 명의 청소년들이 다녀갔다.

10년 전 취재차 방문한 뉴욕 현대미술관(Museum of Modern Art·이하 모마)에서도 비슷한 장면을 목격했다. 19세기 말부터 현대까지 유럽과 미국의 근·현대 미술품 14만여 점을 소장한 글로벌 미술관이지만 모마가 공을 들이는 ‘VIP 고객’은 다름 아닌 뉴욕시의 청소년과 중·장년층이다. ‘포드 패밀리 프로그램’, ‘방과 후 모마학교’ 등을 통해 현대미술에 대한 거리감을 좁혀 이들을 자연스럽게 미술관으로 불러들이기 위해서다. 특히 ‘방과 후 모마학교’는 학교 수업과 연계한 정규 과목으로 학생들은 에듀케이터(educator)의 안내로 예술에 대한 안목과 창의성을 기른다.

말도 많고 탈도 많았던 국립 아시아 문화전당(이하 문화전당)이 지난 4일 대중들에게 첫선을 보였다. 지난 2005년 첫 삽을 뜬 지 꼭 10년 만이다. 비록 부분개관이긴 하지만 서울 예술의 전당보다 큰 16만㎡ 규모의 국내 최대 시설과 친환경적인 컨셉은 아시아 문화 허브의 장밋빛 미래를 꿈꾸게 한다.

하지만, ‘최첨단 문화발신지’라는 프레임에 갇혀 대중과 거리가 있는 일부 난해한 콘텐츠로 일관해서는 곤란하다. 그렇지 않아도 홍보·편의시설 부족으로 우려를 안겨 주고 있는 마당에.

무엇보다도 지난 20일 막을 내린 3주간의 아시아 예술극장 개관 페스티벌은 논란의 중심에 선 ‘이슈 메이커’였다. 실험적이고 난해한 30여 편의 작품에 대해 서울과 광주 그리고 전문가와 일반인 사이에 극명한 시각차를 드러낸 것이다. 국내외 공연 전문가들은 ‘신선하고 파격적인 시도’라며 박수를 보냈지만 지역 예술인과 일반 관객들은 “너무 현학적이다”며 고개를 저었다. 실제로 일부 공연을 제외하고는 지역 관객들이 거의 없었고 ‘떠돌이개 in 광주’ ‘당나무 승려’ ‘바보기계’ 등에선 중간에 자리를 뜨는 관객들이 많았다. 아직 콘텐츠가 완비되지 않은 문화창조원 역시 실험적인 콘텐츠로 채워진다는 소식이 전해지면서 지역사회의 고민이 깊어지고 있다.

물론 문화전당이 동시대 아시아예술의 허브를 지향하는 만큼 ‘방향성’을 바꿀 수는 없다. 문제는 대중성과 예술성, 광주와 아시아의 균형을 어떻게 이루어 내느냐 하는 것이다. 공연 전문가 1%의 찬사에 ‘업’(up)된 나머지 99%의 우려를 외면한다면 자칫 ‘배우만 있고 관객은 없는’ 상황에 직면할 수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제부터라도 대중성이 높은 작품의 비율을 단계적으로 확대하고 지역 예술의 콘텐츠를 보완하는 등의 ‘전략적 선택’을 해야 할 것이다. 이와 동시에 지역사회와 연계한 교육 프로그램을 통해 현대예술에 대한 이해를 넓혀 나가는 지혜도 필요하다. 가장 한국적인 것이 가장 세계적이라고 했던가. 문화전당이 광주를 놓치면 안 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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