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린 아직 젊기에’ 비긴 어게인!
2014년 10월 29일(수) 00:00
며칠 전 TV 리모컨을 돌리다 반가운 얼굴이 보여 손을 멈췄다. 90년대 문화대통령으로 불렸던 가수 서태지였다.

한 종편방송의 뉴스 프로그램에 게스트로 출연한 그는 “나만 늙나?"라는 자괴감을 들게 할 정도로 옛 모습 그대로였다. 하지만, 이날 기자의 시선을 끈 건 비단 그의 ‘방부제 동안’(童顔)만은 아니었다. 비록 외모는 변함이 없었지만 사람과 세상에 대한 시선은 예전보다 넉넉하고 따뜻해졌기 때문이다. 신비주의 뮤지션이라는 굴레를 내려놓고 시대의 변화에 순응한 듯한 소탈한 모습은 ‘아티스트 서태지’를 느끼게 했다. “서태지의 시대는 사실 90년대에 끝났다고 생각해요. 누구나 (시간을)거부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니까…. 그걸 긍정적으로 받아들이고 좋은 음악을 ‘다시 시작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새로운 꿈을 꿀 수 있어 행복해요) ”

사실 그는 오래전 마음을 ‘비웠던’ 것 같다. 지난달 컴백을 알리는 티저광고에서 “아직 우린 젊기에, 괜찮은 미래가 있기에”라는 다소 ‘진부한’(?) 메시지를 던졌다. 많은 팬이 기대했던 임팩트 강한 ‘신고식’과는 거리가 있었다. 이 가사는 지난 95년 발표해 센세이션을 일으킨 ‘컴백홈’의 일부로 당시 수많은 청소년을 ‘들었다 놨다’ 했던 노래다. 그는 지금 힘든 시기를 겪고 있는 30∼40대들이 과거 ‘컴백홈’에 열광했던 세대였던 만큼 이 노랫말처럼 다시 힘을 냈으면 하는 뜻에서 화두로 삼았다고 했다. 자신의 음악적 색깔을 내세우기 보단 불혹을 넘긴 중년의 팬들에게 용기를 불어 넣어 주고 싶었던 모양이다.

클로징 멘트를 하는 서태지를 보면서 문득 지난 여름 감명깊게 봤던 ‘비긴 어게인’(Begin again)이 떠올랐다. 영화는 한물간 음반 프로듀서와 스타 남자친구를 잃은 싱어송라이터가 뉴욕에서 만나 함께 노래로 다시 시작하는 이야기를 그린 로맨틱 영화다. 감독은 도시적인 감각이 묻어나는 뉴욕을 배경으로 사랑과 우정, 음악과 성공, 청춘과 희망 이야기를 그려냈다.

특히 여자 주인공 키이라 나이틀리와 그룹 ‘마룬 5’의 애덤 리바인이 각각 불러서 전 세계적으로 인기를 끈 OST ‘Lost Stars’(길잃은 별들)는 백미다. “God, tell us the reason youth is wasted on the young(신이시여, 청춘이 청춘을 낭비하는 이유를 말해주세요)”라는 가사말은 암울한 미래에 좌절하는 청춘뿐 아니라 고달픈 현실에 지친 중장년층들의 마음을 흔들었다. 실제로 지난 22일 현재 ‘비긴 어게인’은 누적관객 수 350만 명을 돌파하며 역대 다양성 1위로 올라섰다. 이례적인 건 다른 나라들보다 유독 한국에서, 그것도 중장년층의 반응이 뜨겁다고 한다. 혹시 영화의 메시지처럼 ‘새로운 시작’을 준비하는 ‘꽃보다 청춘’들이 많은 건 아닌지.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고 했다. 지나간 청춘에 너무 아쉬워하지 말자. 꿈을 꾸는 한, 그대는 영원한 청춘이다.

〈편집부국장·문화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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