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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크투어, 의향(義鄕)의 미래다
2022년 10월 26일(수) 09:00
‘웡이 자랑 웡이 자랑/ 우리 아기 자는 소리/(중략)혼저 재와줍서/우리 어진이 단밥 먹엉/혼저 재와줍서’

최근 취재차 방문한 제주4·3평화기념 공원에서 ‘귀에 익숙한’ 구절을 발견했다. 4·3항쟁의 아픈 역사가 깃들어 있는 이 곳의 상징조형물 ‘비설’(飛雪)이 설치된 돌담에서 였다. 구불구불한 돌담의 맨 마지막에 등장하는 이 조각상은 4·3사건의 비극을 드라마틱하게 보여준다. 죽어간 두 생명이 거센 바람에 흩날리는 눈과 같다는 뜻을 지닌 ‘비설(飛雪)’은 눈밭에서 어린 아이를 꼭 껴안은 엄마의 모습을 형상화 했다.

예기치 못한 장소에서 ‘웡이 자랑…’을 접한 나는 아주 오래전 기억이 떠올라 잠시 감회에 젖었다. 사실, 기자는 일찍이 ‘웡이 자랑’을 들은 적이 있다. 직장생활을 하는 딸을 대신해 육아를 친정어머니가 잠투정이 심한 큰애를 재울 때 종종 이 노래를 불렀다. 처음 들어본 가사가 신기해 무슨 노래냐고 묻자 어머니는 지인을 통해 알게 된 제주의 전래 자장가라고 했다.

수십 여년만에 다시 접한 ‘웡이 자랑’ 자장가는 마음을 먹먹하게 했다. 총탄에 쓰러지는 절박한 상황 속에서도 딸 아이가 죽음의 공포를 느끼지 않고 편안히 잠들기를 바라는 엄마의 간절함이 고스란히 전해졌기 때문이다. 그래서인지 제주 전역에 남아 있는 600여 곳의 4·3 관련 유적 가운데 관광객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 현장이다.

100여 곳의 미술관이 있는 ‘예술의 섬’이지만 아픈 역사의 흔적을 통해 과거를 반성하는 ‘다크 투어리즘’(Dark Tourism)이 제주도의 새로운 미래로 떠오르고 있다. 비단 제주만이 아니다. 국립 5·18민주묘지, 서울 서대문형무소 역사관, 강원도 고성 DMZ박물관 등 국내는 물론 베를린 장벽 추모공원, 뉴욕 그라운드 제로 등 해외에서도 역사적 장소나 재해 현장을 순례하는 다크투어가 주목을 받고 있다.

여기에 최근 전남도가 뒤늦게 뛰어 들면서 남도의 역사현장이 재조명 받을 전망이다. 지난해 ‘전남도 역사교훈관광 육성 지원 조례안’을 통과시킨 전남은 기본계획 수립, 해설사 배치, 추진사업지원 등을 주요골자로 하는 ‘전남역사교훈관광 활성화 방안’을 추진중이다. 이에 따르면 전남도는 완도 소안·고흥·광양 등을 코스로 하는 왜란호국 절의의병 사적지 , 낙안3·1운동 만세운동, 나주 항일학생운동 등을 잇는 일제강점기 항일·일제잔재사적지, 5·18 목포 MBC·영암신복장터 등을 묶는 4·19&5·18 민주화운동 사적지, 여수·순천10·19탑, 보성군 웅치면 지서 등을 연계한 해방 이후 민족 동란사적지 등 4개 거점지역을 다크투어리즘의 성지로 키워 나간다는 계획이다.

이처럼 예로부터 의향인 전남은 다크투어리즘의 보고(寶庫)가 될 잠재력이 크다. 하지만 다크투어리즘의 메카로 거듭나기 위해서는 단순히 객관적인 역사 지식을 배열하는 아카이브 보다는 섬세한 스토리텔링으로 감성을 흔드는 콘텐츠를 개발해야 한다. 조형물이나 브랜드 공연처럼 예술로 승화시킨 역사물은 그 어느 것보다 대중의 감성을 파고드는 힘이 강하다. ‘박제된’ 역사현장은 생명력이 짧다.

<문화·예향담당국장, 선임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