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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보안법. 이제는 사라져야 할 악법이다-최석호 광주전남대학민주동우회협의회상임대표
2021년 10월 11일(월) 07:15
일제강점기 독립항쟁부터 군부독재·문민독재 시대 민주화투쟁까지 민족의 암흑기를 지나는 동안 무수히 많은 사람들이 잡혀가고 고문당하고 죽었다. 국가보안법 때문이다. 헌법에 명시한 양심의 자유도, 표현의 자유도 그 법 앞에서는 무력하기만 했다.

일제의 치안유지법을 그대로 본뜬 국가보안법은 지난 73년간 인권을 유린하고 민주주의를 탄압하면서 독재자들의 통치 수단으로 악용되었다. 우리 민주주의는 국가보안법 체제와의 투쟁의 역사로 점철되어 온 피의 역사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학생운동 단체인 전국대학총학생회협의회(전대협)와 한국대학총학생회연합(한총련)은 국가보안법의 최대 피해 당사자 중 하나다. 80년대 전대협은 산하 기구인 정책위원회와 조국통일위원회가 이적단체로 규정되었고, 90년대 한총련은 조직 자체가 이적단체로 낙인찍혔다. 이로 인해 꽃다운 대학 시절 무수히 많은 청춘들이 수배와 구속을 거쳐 국가보안법 위반자로 양산됐다. 분단 체제 모순과 이로 인한 이념 대립과 갈등을 끝내야 한다는 청년들의 충정 어린 통일운동에 대한 대가는 실로 가혹했다.

대표적인 예로 1992년 남총련 출범식 당시 대학생들은 남한의 태극기, 북한의 공화국기와 함께 단일기를 게양하면서 통일 의지를 표현했지만 국가보안법은 ‘인공기 사건’으로 특정해 대학 교정을 짓밟았다. 또 1996년 연세대학교에서 진행된 한총련의 통일 대축전에서는 종전 선언과 평화협정 체결을 주된 구호로 걸었음에도 그저 북의 주장과 유사하다는 이유를 들어 폭압적인 탄압과 함께 한총련을 통째로 이적단체로 만들어버렸다. 불과 20여 년이 지난 지금 단일기 게양과 종전 선언, 평화협정 주장은 상식적인 선에서 받아들여지는 것이 아이러니하다.

세월이 지나면서 사실상 사문화되었다고도 말하는 국가보안법은 정권이 바뀌고 남북 관계의 상황에 따라 변함 없이 등장한다. 화해와 통일을 말하면 고무 찬양, 북한 사람을 만나면 회합 통신, 모임을 만들면 이적단체 구성이란 식이다. 국가보안법이 존재하는 한 반복될 수밖에 없는 귀에 걸면 귀걸이, 코에 걸면 코걸이식 ‘블랙코미디’와 다름없다.

사례를 보자. 2018년 구속된 대북 사업가 김호, 2021년 김일성 회고록 ‘세기와 더불어’ 출판사 대표 압수수색, 올해 민주당 대선 후보 선출 과정에 등장한 한총련 세대에 대한 왜곡과 폄훼에서도 볼 수 있듯이 국가보안법은 결코 사문화되지 않았다. 언제든 이렇게 호시탐탐 먹잇감을 노리고 존재감을 드러낼 기회를 엿보고 있는 것이다.

최대 피해 당사자인 전대협·한총련 세대가 구시대의 유물인 국가보안법을 박물관으로 보내는 것은 시대적 소명이다. 지난 5월 국가보안법 폐지 10만 입법 청원이 9일 만에 이루어진 지 벌써 넉 달이 지났고 우리는 누구보다 적극적으로 청원에 참여하였다. 촛불 항쟁으로 탄생한 180석 거대 여당 민주당은 국가보안법 폐지 법안 발의를 위해 10만 명의 국민들이 목소리를 모았음에도 이번 정기 국회에서 국가보안법 폐지 법안을 다룰 계획을 제출하지 않고 있는 현실이다. 묵묵부답으로 일관하는 국회와 민주당의 현 상황이 너무나 답답하다. 반드시 이번 정기 국회에서 빠른 시간 안에 국가보안법 폐지 법안을 의결할 것을 주문한다. 문재인 정부의 남은 시간이 길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