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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인 기록물 23권 국가지정기록물 됐다
소설·희곡·가요필사본 등 육필원고 21권
고려극장 80여년 사진첩 2권도
올 광주 개관 고려인역사유물전시관 전시
5·18 다룬 한진 작가 희곡 ‘폭발’ 눈길
정부 차원 역사적 가치 첫 인정
2020년 01월 20일(월) 00:00
광주고려인마을(광산구 월곡동) 고려인역사유물전시관에 전시될 기록물이 국가지정기록물로 등재돼 화제가 되고 있다. 특히 이 가운데에는 고려인 2세대 한글문학작가인 한진의 희곡 ‘폭발’(1985년)이 5·18광주민주화운동을 주요 사건으로 다루고 있어, 80년대 중반 구 소련에 거주하는 고려인이 광주의 참상을 작품으로 남겼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이번 고려인 기록물의 국가지정기록물 지정은 국가기록원이 정부 차원에서 역사적 가치를 인정한 첫 사례로 올해 7~8월께 문을 여는 고려인역사유물전시관 위상을 높여줄 것으로 기대된다. 아울러 고려인들에게는 조상들이 남긴 문화적 성취에 대한 자긍심을 심어주고, 다양한 계획을 갖고 활동하는 광주고려인마을에도 시너지효과를 줄 것으로 보인다.

고려인 기록물 소장자인 김병학 연구가에 따르면 이번에 국가지정기록물 제13호로 등재된 고려인기록물은 유명작가나 문화예술인들이 남긴 소설, 희곡, 가요필사본 등 육필원고 21권과 고려극장 80여년의 역사가 담긴 사진첩 2권 등 총 23권이다.

이번 기록물 등재는 지난해 4월 광주고려인마을 주최로 광주시청에서 열린 3·1운동 100주년기념 고려인역사유물전시회 준비를 계기로 구체화됐다. 이 과정에서 국가기록원 역사기록관 인사와의 첫 만남이 이루어졌고 등재작업이 시작됐다. 이후 국가기록원 측의 자체심사와 몇 차례의 외부전문가 심사를 거쳐 작년 연말에 최종적으로 등재가 확정됐다.

이번에 등재된 고려인 육필원고기록물은 고려극장 1세대 극작가 김해운의 희곡 8편, 2세대 극작가 한진의 희곡 8편 및 소설 1편, 고려인 1세대 산문작가 김기철의 소설 2편, 기타 가요필사본 2편으로 모국어문학작품이 대부분이다.

고려극장 창립 50주년을 맞아 무대에 올린 연극 ‘춘향전’(위)과 고려극장 1세대 희곡작가 김해운의 ‘동북선’, 타쉬켄트 조선극장 배우 전명진의 창가집, 고려인 1세대 대표적 산문작가 김기철의 중편 ‘금각만’ 원고. <김병학 고려인 연구가 제공>
이번 기록물 지정이 있기까지는 카자흐스탄 한국문화센터 소장으로 일했던 김병학 연구가의 지난한 노력과 열정이 있었다. 지난 2016년 귀국한 그는 “1992년 카자흐스탄으로 건너가 고려인한글학교에서 25년간 고려인 현지 주민들과 후세들의 한글 교육에 힘썼다”며 “현지에서 고려인들이 소장하고 있는 자료를 기증도 받고 필요한 경우는 사비를 들여 구입도 했다”고 밝혔다.

또한 “90년대 초반 당시 북방정책 일환으로 구 소련과의 수교 이후 광주전남지역에서도 뜻있는 분들이 건너가 고려인한글학교를 설립했다”며 “이번 고려인 관련 유물은 광주고려인마을과 공동 소유하는 과정을 거쳐 궁극적으로 기증할 계획”이라고 덧붙였다.

등재된 기록물 가운데 눈에 띄는 자료는 김해운 작가의 작품이다. 희곡 8편이 등재된 극작가 김해운은 1932년 블라디보스토크와 1939년 우즈베키스탄 타쉬켄트에 설립된 고려극장(조선극장)의 창단멤버이며 1950년에는 사할린으로 건너가 조선극장을 크게 중흥시킨 인물이다. 희곡 ‘동북선’(1935년)은 시기적으로 가장 앞서고 무엇보다도 격렬한 항일노동운동을 다루고 있다는 점에서 가치가 높다.

또한 9편의 작품을 등재목록에 올린 극작가 한진은 1964년부터 1993년까지 카자흐스탄 고려극장의 유일한 프로극작가로 활동했다. 그의 대표작 중 희곡 ‘산부처’(1979년)는 소련문화계의 큰 주목을 받아 두 차례나 모스크바초청공연이 이루어졌다.

사진기록물로 등재된 고려극장 사진첩 2권은 1932년 고려극장 창단 이후부터 2000년 무렵까지 무대에 올린 각종 연극과 배우들의 활동상황을 시대별로 살펴볼 수 있는 자료다. 260여장의 사진은 1932년 블라디보스토크에서 설립돼 현재 카자흐스탄 고려극장으로 그 명맥이 어어져 오고 있는 세계 최초 우리말 전문연극극장의 역사를 엿볼 수 있는 소중한 자료다.

이번 기록물은 오는 7~8월 광산구 월곡동에 개원 예정인 고려인역사유물전시관에 전시될 예정이다. 박용수고려인동행위원회 위원장에 따르면 고려인역사유물전시관은 광산구에서 다문화관련 공모 사업 일환으로 행안부의 도시재생 연관사업에 선정됐으며 현재 리모델링이 진행 중이다.

박 위원장은 “고려인역사유물전시관이 개관되면 이주민의 삶을 기록하고 디지털화 하는 작업뿐 아니라 콘텐츠 영상화 작업도 병행해 해석하고 공유, 공감하는 자료로 활용될 예정”이라고 말해다.

한편 고려인마을은 역사유물전시관을 만들기 위한 일환으로 지난 2017년 아시아문화전당에서 고려인강제이주 80주년 특별전, 2019년 3·1운동100주년을 기념해 광주시청에서 특별전을 개최한 바 있다.

김병학 연구가는 이번에 등재된 기록물 외에도 소장 자료가 더 있는 만큼 발굴, 정리의 정도에 따라 추가 등재의 길도 열려 있다고 언급했다. 이번 13호 국가지정기록물 등재에 앞서 고려인기록물은 유진오의 ‘제헌헌법 초고’(제1호), ‘이승만 대통령 기록물’(제3호), ‘조선말 큰사전 편찬 원고’(제4호), ‘도산 안창호 관련 미주 국민회 기록물’(제5호), ‘3.1운동 관련 독립선언서류’(제12호) 등이 있다.

/박성천 기자 skypark@kwangju.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