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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홍재의 세상만사] 일찍이 이런 인간은 없었다
2019년 03월 01일(금) 00:00
“일찍이 이런 맛은 없었다. 이것은 갈비인가 통닭인가.” 최근 다양한 패러디물(parody物)을 양산하며 유행어로 자리 잡은 영화 대사다. 극우 세력의 잇단 망언(妄言)과 망동(妄動)을 보면서, 여기에 또 다른 패러디 하나를 추가한다. “일찍이 이런 몰지각한 인간은 없었다. 이자들은 사람인가 괴물인가.”

삼일절이다. 100년 전 오늘. 우리 국민은 남녀노소 가릴 것 없이 태극기를 흔들며 ‘대한 독립 만세’를 외쳤다. 마땅한 천이 없어 누군가는 치마를 찢어 직접 그리기도 했던 태극기. 그날의 태극기에는 나라를 되찾기 위한 간절한 염원이 담겼다. 그리고 1945년 8월15일. 사람들은 또다시 태극기를 들고 거리로 뛰쳐나가 주체할 수 없는 광복의 기쁨을 누렸다. 그날의 태극기에는 만발한 웃음꽃처럼 나라를 찾은 벅찬 감격이 일렁였다. 세월이 흘러 다시 1980년 5월. 광주 상무관에는 계엄군에 희생당한 시민들의 시신이 안치됐다. 그때 희생자들의 시신을 담은 수많은 관 역시 태극기로 덮였다. 그날의 태극기에는 민주주의를 되찾기 위해 싸우다 쓰러진 처절한 슬픔이 어렸다.

태극기는 대한민국의 상징이요 애국심의 상징이기도 하다. 역사의 현장에는 늘 태극기가 있었다. 그것은 우리들의 가슴속에 휘날리는 경외(敬畏)의 대상이었다. 그러나 지금은 달라졌다. 이른바 ‘태극기 부대’의 전유물이 되고나서부터 태극기의 위상은 추락하기 시작했다. 우리는 심한 혼란을 느낀다. 저들의 태극기와 우리의 태극기는 같은 것인가 다른 것인가.



5.18 망언은 계속되고

‘태극기 부대’란 말에서는 어쩐지 ‘박수 부대’의 냄새가 난다. 물론 개중에는 무지(無知)에서 비롯된 어떤 소신을 가진 이도 간혹 있을 것이다. 하지만 대부분 누군가에 의해 동원돼 꼭두각시처럼 움직이는 것 아닌가 하는 느낌을 받는다.(우리의 이런 느낌은 도저히 이해하기 힘든 저들의 황당한 사고 체계 때문일 것이다.)

‘박수 부대’(claque)는 정치 집회나 극장에서 주최 측이 동원한 바람잡이들이다. 청중의 반응을 주최 측에 유리한 쪽으로 몰고 가기 위해 돈이나 티켓으로 매수한 사람들이다.

박수 부대의 기원은 멀리 로마 시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네로 황제는 대중 앞에 나설 때 늘 박수 부대를 동원했다는 것이다. 16세기 프랑스의 시인 장 도라는 자기가 쓴 연극을 상연할 때 무료 초대권을 배부해 박수를 유도해 냈다. 1820년 프랑스의 사업가 올리비에 소통은 파리에 박수 부대 공급을 위한 사무실을 냈다는데, 박수 부대를 처음 제도화한 사람이라 하겠다.

어쩐지 박수 부대 느낌이 드는 ‘태극기 부대’의 총대장은 누구인가. 아마도 끊임없이 5·18 북한군 투입설을 주장하고 있는 지만원 씨가 아닌가 싶다. 김대중을 ‘빨갱이’로 전두환은 ‘영웅’으로 간주하는 극우 논객. 그는 본시 어디에서 무슨 일을 하던 사람이었는지 갑자기 궁금해진다.(예전 같으면 거들떠보지도 않았을 텐데 새삼 궁금증이 인 것은 아무래도 요즘 5·18 망언이 계속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래 황금 같은 시간을 낭비하며 찾아봤더니, 뜻밖에 김대중(DJ) 전 대통령과도 인연이 있는 인물이었다. 게다가 한때는 월간 ‘말’지에 평론을 쓴 진보적 군사 평론가이자 촉망받는 시스템 분석가였다니 놀랍다. 보도에 의하면 1942년생인 그는 강원도 횡성 출신으로 육사(22기)를 졸업하고 미국 해군대학원에서 시스템공학 박사 학위를 받았으며 1987년 대령으로 예편했다. 백마부대(9사단) 포병연대에 배속되어 베트남전에 참전(1967~1971년)하기도 했는데, 전두환은 그 시기 월남에 파병된 백마부대 29연대장이었다.

지 씨는 90년대 후반 당시 동교동계 좌장이었던 권노갑 국민회의 부총재가 접촉해 군사와 대북 분야에 대한 자문을 해 준 것으로 알려진다. 특히 1997년 대선 때만 해도 DJ의 대북관과 통일관에 대해 ‘균형 있는 구도를 갖췄다’고 평가했던 그였다. 하지만 2000년대 이후부터 ‘DJ는 빨갱이다’와 같은 표현을 서슴없이 사용하며 적대감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지 씨는 어찌하여 DJ에게 등을 돌리고 반대 세력이 되었을까. 많은 사람들은 김 전 대통령 측에서 공천이나 혹은 어떤 자리를 주지 않자 적으로 돌아섰을 것으로 본다. 특히 대통령의 비서관을 지낸 최경환 민주평화당 의원은 ‘김 전 대통령으로부터 원하는 것을 얻어 내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지 씨의 변심 이유를 설명한다. 김 전 대통령이 당선되고 난 후 청와대로 ‘연구비를 좀 지원해 달라’는 요청을 여러 차례 보냈던 지 씨가 거절당하자 앙심을 품었을 것이라는 얘기다.



누가 태극기를 모독하는가

아무튼 지 씨는 이후 끊임없이 얼토당토않은 황당한 주장을 펼치고 있다. “거짓말도 반복하면 진실이 된다. 선동적 이슈를 만들면 거리의 군중을 장악할 수 있고, 군중을 장악하면 국가를 장악할 수 있다.” 그는 이 같은 나치 선전상 괴벨스의 말을 철석 같이 믿는 것일까. 하여튼 그에게서 비롯된 가짜 뉴스는 태극기 부대에 이르러 거의 ‘신앙’이 되고 있는 듯하다. 문제는 이러한 비이성적 왜곡 담론이 극우파 일부에 머물지 않고, 광주 항쟁을 겪지 않은 일반 대중의 의식 속을 파고들고 있다는 점이다. 급기야 5·18 유공자들을 ‘괴물’이라 했던 한 의원이 제1야당의 최고위원에 오르기까지 했으니, 참으로 통탄할 일이다.

최용주 5·18기념재단 비상임연구원은 어제 본보에 게재한 기고를 통해 이렇게 말한다. “사회학적 측면에서 봤을 때, 왜곡 담론의 이러한 확산은 자신의 이익과 관련이 없는 사안에 대해서는 비판적 판단을 하지 않으려는 대중의 ‘합리적 무지’(rational ignorance)에 기댄 반복적인 노출 효과 덕분이다.” 매우 공감이 가는 얘기이지만 한편 두렵고 심히 경계해야 할 일 아닌가.

다시 태극기 얘기로 돌아와서, 나는 ‘태극기 부대’니 ‘태극기 세력’이니 하는 말도 영 마뜩지 않다. 태극기 부대란 말을 외국인이 처음 듣기라도 할라치면, 이자들이 무슨 대단한 애국 세력이나 된 것처럼 오해할 수도 있을 테니까 말이다.

저들의 모임에 굳이 애국의 상징인 태극기를 넣으려면 차라리 ‘태극기 폄훼 부대’ 혹은 ‘태극기 모독 세력’이라 부르는 게 마땅하지 않을까? (일찍이 철학자 김용석 교수가 지적한 바, ‘안전 불감증’이 아니라 ‘불안전 불감증’이요 ‘피로 회복제’가 아니라 ‘피로 해소제’라 해야 맞는 말이듯이.) 지금 금남로 5·18민주화운동기록관에서 열리고 있는 ‘태극기-우리 역사의 물결’이라는 제목의 전시회를 보고 와서는 더욱 그런 생각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