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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재 김천일 전집’ 2권 출간
임란 때 호남 지켜낸 김천일의 생애 담아
2018년 06월 12일(화) 00:00
나주 출신 건재(健齋) 김천일(1537~1592) 선생은 임란 당시 의병의 ‘창의’(倡義)의 깃발을 호남에서 처음 든 인물이다.

의병을 모아 서울로 올라가, 수원 독성산성전투를 거쳐 금령전투를 치렀다. 전략적 요충지였던 ‘강화도’를 최후의 보루로 삼아 조정과 백성 사이의 끊어졌던 통로를 회복시켰다. 실질적인 서울 수복의 길을 마련한 것도 김천일의 공로였다.

본관은 언양이며 시호는 문열(文烈)이다. 일찍 부모를 여윈 까닭에 외조모 슬하에서 자랐다. 외조모의 삼년상을 치르느라 얻은 한병(寒病)이 평생 고질병이 될 만큼 효성이 지극했다.

그뿐 아니라 후일 이항 선생의 수제자로 성장해 당대 호남의 뛰어난 유학자인 하서 김인후, 미암 유희춘 등의 총애를 받았다.

공직에 나와서는 경상도도사, 순창군수, 담양부사, 수원부사, 사헌부지평 등의 벼슬을 역임하기도 했다.

건재 선생의 생애와 글 그리고 조선왕조실록에 언급된 기사를 집대성한 전집이 출간됐다. 모두 2권으로 발간된 ‘건재 김천일 전집’(문예원·사진)은 새롭게 번역, 편집, 주해를 거쳤다. 한국학술진흥재단 해외파견교수인 김익두 전북대 교수와 전북대 허정주 박사가 작업에 참여했다.

무엇보다 김천일 선생은 임란 당시 마지막 전투인 ‘2차 진주성 전투’를 통해 ‘호남’을 지켜냈다. 학자들은 이순신 장군의 해전 승리의 토대는 ‘호남’을 튼튼히 보호했던 건재 선생 공로로 본다. 책을 번역한 이들은 “이러한 사실은 역사서의 수많은 기록과 증언들을 통해 확증되고 있으나, 이러한 선생의 뚜렷하고 드높은 공로는 세상에 제대로 알려지지 못하고 있는 것이 오늘날의 오늘의 현실”이라고 본다.

선생의 업적은 ‘조선왕조실록’에 무려 120여 차례 언급될 만큼 조선의 역사에서 중요한 위치를 점한다. 2권의 실록에 기록된 김천일 선생에 관한 기사는 뚜렷하게 이를 방증한다.

저자들은 건재의 삶에서 반드시 주목해야 할 것으로 다섯 가지를 꼽는다. 인품, 학문, 공직수행, 의병활동, 애국충절이 그것이다.

또한 “그가 남긴 인품과 업적들은 그 어느 면에서도 조선시대의 사표가 되지 않는 것이 없었다”고 평한다.

/박성천 기자 skypark@kwangju.co.k