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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덕일의 ‘역사의 창’] 남한의 역사학, 북한의 역사학
2018년 05월 24일(목) 00:00
조선총독부에서 만든 식민사관의 핵심은 한국사의 시간과 공간을 축소하는 것이었다. 그래서 국조 단군을 부인하고, ‘삼국사기’ 초기 기록을 가짜라고 주장해 반만년 한국사를 1500년 역사로 축소시켰다. 대륙성과 해양성의 역사에서 대륙과 해양을 잘라내 반도사의 틀에 가두었다. 그나마 반도의 북쪽은 ‘한사군’이란 중국의 식민지, 남쪽은 ‘임나일본부’란 일본의 식민지가 있었다는 것이다. 그러니 지금 일제의 식민지가 된 것은 한국사의 필연이란 논리였다.

그렇게 한사군을 한반도 북부에 설치하고 그 핵심인 낙랑군이 평양에 있었다는 ‘낙랑군=평양설’을 유포시켰다. 그러나 중국의 모든 고대 사료는 낙랑군이 지금의 평양이 아니라 고대 요동에 있었다는 ‘낙랑군=요동설’을 말하고 있다. 남한 강단사학계는 광복 후 이 문제에 대해서 단 한 차례의 학술토론회도 없이 ‘낙랑=평양설’이 하나뿐인 ‘정설’이라면서 학생들에게 외우라고 강요했다. ‘낙랑군=평양설’이 일체의 사료적 근거가 없는 조선총독부의 정치 선전이라는 비판이 거세지자 21세기 남한 강단사학계는 반성 대신 역습을 택했다.

2017년 한때 진보를 표방했던 ‘역사비평’은 이른바 ‘나이는’ 젊은 역사학자들을 대거 동원해 ‘낙랑=평양설’을 주창했고, 조선일보는 ‘무서운 아이들’이라고 칭찬해 주었다. 한겨레·경향신문 등이 이에 가세했고, 한국일보는 “낙랑군이 평양에 있다는 건 우리(무서운 아이들)뿐 아니라 제대로 된 학자는 모두 동의한다. 100년 전에 이미 논증이 다 끝났다. 바뀔 가능성이 거의 없다고 보면 된다”(2017년 6월 5일)고 힘을 실어 주었다.

북한학계는 이 문제를 어떻게 보고 있을까? ‘무서운 아이들’ 중 한 명인 안정준은 “해방 이후 북한에서 발굴한 낙랑고분의 수는 1900년대 중반까지 무려 3000기에 달한다. 현재 우리가 아는 낙랑군 관련 유적의 대다수는 일제 시기가 아닌 해방 이후에 발굴되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한국고대사와 사이비역사학, 역사비평사, 2017)라고 단언했다. 북한도 ‘낙랑군=평양설’이라는 것이다.

‘한겨레 21’의 전 편집장 길윤형은 ‘국뽕 3각연대’라는 칼럼에서 “지금까지 북한 지역에서 진행된 고고학 발굴 결과 평안도와 황해도 일대에 2600여 기의 낙랑 고분이 확인됩니다. 옛 사서의 기록과 이 성과를 근거로 한국의 고대 사학자들은 대부분 낙랑군의 위치를 평양 인근으로 비정합니다”라고 가세했다. 북한학계도 ‘낙랑군=평양설’이라는 것이다.

물론 ‘새빨간 거짓말’이다. 북한 학자 리순진은 거꾸로 “지난 시기 일제 어용사가들과 봉건 사대주의 사가들의 력사 위조 행위로 만들어진 것이 ‘한나라 락랑군 재평양설’이다”라고 비판했다. 리진순은 해방 후 약 3000기의 무덤을 발굴한 결과 한나라 무덤은 단 하나도 찾지 못했다고 말했는데, 남한의 강단사학자와 언론들은 북한학계도 ‘낙랑군=평양설’을 주장하는 것처럼 속인 것이다.

북한학계는 광복 직후부터 이 문제를 두고 치열한 토론을 전개했다. 문헌 사학자들은 주로 ‘낙랑군=요동설’을 지지했고 고고학자 일부는 ‘낙랑군=평양설’을 지지했다. 열띤 토론회 도중인 1958년 경 북한 학자 리지린은 북경대 대학원으로 유학을 가서 고조선사를 연구했고, 1961년 9월 경 북한에서 그간의 연구 결과를 발표했다. 그의 박사학위 논문인 ‘고조선연구’(1962년)가 출간되면서 북한은 ‘낙랑군=요동설’로 정리되었다. 문헌 사료는 물론 만주의 여러 유적·유물도 ‘낙랑군=요동설’을 말하는 판국에 ‘낙랑군=평양설’은 더 이상 설 자리가 없었다.

그러나 남한 강단사학계와 일부 언론은 21세기 백주 대낮에 북한학계도 ‘낙랑군=평양설’로 정리되었다고 거짓말까지 하면서 ‘낙랑군=요동설’을 주장하는 남한 학자들을 ‘유사·사이비 역사학자’라고 매도하는 매카시 사냥을 일삼았다. 여기에 보수 언론뿐만 아니라 이른바 진보 언론까지 가세해 남한 식민사학의 막강한 카르텔을 입증했다. 북한의 역사학도 물론 문제는 있다. 그러나 북한 바로 알기는 북한의 역사학 바로 알기부터 시작해야 하는 이유를 남한 강단사학이 잘 말해 주고 있다. ※이 칼럼은 지역신문발전기금 지원을 받았습니다.

〈한가람역사문화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