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체메뉴
“축구 인생 또 다른 시작 … 후배들 본보기 되고 싶다”
광주FC 선수에서 이학박사로 인생 2막 연 박성화씨
2018년 01월 11일(목) 00:00
“나는 그라운드 밖 또 다른 축구 선수, 후배들의 희망이 되고 싶다.”

오는 2월 조선대학교에서 이학박사 학위를 받는 박성화(30)씨. 그는 인생 후반전을 앞둔 특별한 축구선수다.

이제는 ‘박 박사’로 불리게 된 그는 사실 촉망받는 ‘박 선수’였다. 우연히 축구부 감독의 눈에 띄어 순천중앙초 2학년 때 축구를 시작한 박씨는 기성용(스완지시티)과 함께 공을 찬 둘도 없는 동료였다. 소년대표 명단에 이름을 올리기도 했던 그는 광주 북성중-금호고-조선대를 거쳐 2011년 광주 FC의 창단 멤버로 프로 무대에 뛰어들었다.

고향팀 유니폼을 받았을 때 앞선 시간을 보상받는 기분이었다. 학창시절 줄곧 주장을 맡았던 그는 지독한 연습벌레였다. 그는 7번이나 무릎 수술을 받는 등 시련의 시간을 보내기도 했다. 어려움을 딛고 노력의 결실을 본 만큼 그는 의욕적으로 프로 데뷔를 위해 이를 악물었다. 하지만 ‘축구선수 박성화’의 이야기는 해피엔딩이 아니었다. 프로 데뷔를 준비하던 그는 아킬레스건 부상으로 단 한 경기도 뛰지 못하고 은퇴를 해야 했다.

박씨는 “부상 순간 아킬레스건이 끊어지는 소리를 들었다. 내 축구 인생이 끝났다는 것을 알았다. 선수 생활은 힘들 것이라는 이야기를 들었다. 수술하고 2주 동안 베개에 얼굴을 묻고 울었다”고 부상 당시를 떠올렸다.

축구 선수로만 살아왔고 그라운드만을 바라봤던 그를 일으켜 세운 것은 부모님이었다.

박씨는 “광주FC에 입단하게 됐다고 했을 때 아버지께서 기뻐서 우셨다. 부상을 당했을 때도 부모님 생각이 먼저 들었다. 나보다 더 슬퍼하실 분 들이라는 생각에 마음을 가다듬었다”고 말했다.

박씨의 욕심과 노력도 그를 또 다른 축구 선수로 살게 했다. 배움에 대한 욕심이 많았던 그는 광주에 입단한 뒤 교육대학원에서 공부를 병행했다. 당시 최만희 감독도 우리나라 축구선수 출신 중 박사학위 1호라는 타이틀을 가지고 있었던 만큼 격려와 배려를 아끼지 않았다.

축구를 그만둔 뒤 공부에 매진한 그는 세한대학교 외래교수, 송원대학교 외래교수로 강단에 섰다. 2월에는 ‘중학교 축구 트레이닝 유형에 따른 포지션별 운동 관련 체력과 등속성 하지 근력 및 균형 능력 변화에 관한 연구’라는 논문으로 축구선수 최연소 박사가 된다.

그는 “부모님께서 어렸을 때부터 공부도 해야 한다고 강조를 하셨다. 누나도 교직에 있고 공부에 대한 생각이 많았다”면서도 “전공이 트레이닝 처방인데 내가 직접 운동을 하고 부상을 겪어봐서 많은 도움이 됐다. 공부하는 게 쉽지는 않았다. 가장 힘든 게 아무래도 영어였다. 따로 영어 과외를 받았다. 책도 많이 읽었다. 논문은 처음부터 끝까지 다 힘들었다(웃음). 축구 선수들의 자기 발전과 경기력에 도움이 되는 방향을 제시하고 싶었다”고 덧붙였다.

부상으로 은퇴를 했지만 최선을 다했던 만큼 아쉬움은 남아도 후회는 없다는 박씨. 그는 그라운드 밖에도 ‘축구 선수’로 뛸 수 있는 길이 많이 있다고 말한다. 기량이 부족해서 또는 부상 때문에 선수의 꿈을 접어야 하는 후배들에게 그라운드 밖 길을 알려주고 싶은 게 그의 바람이다.

박씨는 “이승기(전북) 등 친구들이 뛰는 것을 보면 부럽기도 하고 부상이 없었다면 어땠을까?라는 생각도 한다. 하지만 다른 선수들보다 조금 일찍 다른 삶을 시작했다고 생각한다. (기)성용이에게 ‘너는 선수로 정상에 있고, 분야는 조금 다르지만 나도 정상으로 가겠다’고 말했다”며 “많은 이들이 프로 선수의 꿈만 보고 달린다. 물론 축구선수로 성공하는 게 우선 목표고 가장 행복할 것이다. 하지만 선수의 삶이 전부는 아니다. 행정가, 심판, 경영, 관리, 복지 등 다양한 길이 있다. 후배들의 조력자가 되어 비전을 제시하고 싶다”고 포부를 밝혔다.

/김여울기자 wool@kwangju.co.kr

/사진=김진수기자 jeans@kwangju.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