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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짜’ 열하일기에서 연암 글 맛 느끼다
[박성천 기자가 추천하는 책] ‘열하일기 1·2·3’
2017년 11월 17일(금) 00:00
“어제 아침에 우연히 명륜당 오른쪽 문 가리개 아래에 있었는데, 기려천과 왕삼빈이 팔짱을 끼고 목을 나란히 하여 홰나무 뒤에 서 있더니 한참 뒤에 입을 맞추고 혀를 빨더군요. 마치 전각 위의 얼룩무늬 목을 한 비둘기처럼 하였는데, 사람이 가리개 사이에 있으면서 훔쳐보는 줄도 모릅디다. 왕삼빈은 수도 없이 음란한 교태를 간드러지게 떨더이다.”(본문 중에서)

조선시대 최고의 문학 작품을 고른다면 많은 이들은 박지원의 ‘열하일기’를 꼽는데 주저하지 않는다. ‘조선시대 최고의 여행기’, ‘조선 최고의 명문장’이라는 수사가 따라붙는다. 그러나 18세기 당시만 해도 ‘열하일기’는 내놓고 볼 수 없는 ‘빨간책’이었다. 오늘날로 하면 ‘블랙리스트’나 다름없었다.

‘열하일기’는 연암 박지원의 중국 기행문이다. 연암은 1780년 청나라 건륭 황제의 70회 생일을 축하하는 사절단에 끼어 중국을 다녀왔다. 당시 공적인 소임이 없어 자유롭게 여행할 수 있었던 박지원은 북경 여행과 함께 전인미답의 열하 지방을 체험할 수 있었다.

열하 여행 이후 3년에 걸쳐 ‘열하일기’를 완성했지만, 연암은 그 기간 동안 자기검열을 해야 했다. 초고도 완성하기 전에 일부가 주변 지인들에 의해 필사되었고, 어느새 한양에 일파만파로 퍼져나갔다. 연암체(燕巖體)라는 새로운 글쓰기 문체가 생겨날 정도로, 당시 문인들과 지식층에 큰 반향을 일으켰다.

그러나 ‘열하일기’는 당대 문단에서 받아들여지지 못했다. 언급한대로 새로운 글쓰기 시도에 환호하는 이들도 있었지만 반청(反淸) 사상을 풍자하고 양반 사대부를 비판한다는 이유로 ‘금서’ 취급을 받았다. 이 작품을 문제시한 정조는 이른바 문체반정(文體反正)을 추진하기까지 했다.

그로 인해 책은 연암 당대는 물론이고, 손자 박규수가 우의정으로 있던 조선 말기에도, 서적 출판이 활황이었던 근대 초기까지도 공간(公刊) 되지 못했다. 필사를 통해 전파된 탓에 여러 개의 판본이 존재할 수밖에 없었다.

최근 삭제·윤색되기 이전 원래 모습의 열하일기가 출간됐다. 김혈조 영남대 교수가 우리말로 완역한 개정신판 ‘열하일기’는 초고본 등을 비교해, 누락되고 변형된 부분을 바로잡은 것이다. 이전에 김 교수는 2009년 필사본을 토대로 열하일기를 우리말로 번역한 바 있지만, 2012년 이가원(1917∼2000) 선생이 소장하던 초고본(초고본 계열 책)이 영인돼 공개되자 이를 검토해 완역본을 내놓았던 것이다.

달라진 개정신판 ‘열하일기’는 ‘열하일기’의 실체적 모습은 물론 박지원의 생생한 숨소리까지 느낄 수 있도록 원래 내용에 충실했다. 책에는 자기검열이 이루어진 여타 필사본에서 느낄 수 없는 초고본만이 지닌 특징 등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또한 지금까지 이름이나 글의 제목만 알려져 있고 수록되지 못했던 몇 편의 글이 새롭게 추가되었다. ‘양매시화’, ‘천애결린집’, ‘태학기’ 등이 그것인데 독자의 이해를 돕기 위해 짧은 해제 등을 수록했다.

초판에 비해 도판 역시 많이 바꾸고 추가한 점도 눈에 띈다. 김혈조 교수는 여러 번 중국 현지답사를 통해 관련 유적이나 유물을 틈나는 대로 촬영하고 확보했다. 연암이 보았던 유적이나 유물의 실제적 모습을 직접 독자에게 보이고자 하는 의도인 셈이다.

김 교수는 역자서문에서 독자가 이 시대 현실에 맞는 주제를 찾아내고 음미하는 일이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요컨대 고전의 현재적 가치를 찾는 문제는 전적으로 독자의 몫인데, 우리는 텍스트의 정독을 통해 “있었던 세계 그리고 있는 세계에 대한 비판과 통찰을 통해서 있어야 할 세계를 전망하고 모색한 것”이 ‘열하일기’의 진정한 주제라는 사실에 동의할 것이다.”

〈돌베개·각 권 3만 원〉

/박성천기자 skypark@kwangju.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