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9월 22일 서울시 마포구 아현동에 자리한 복합 문화예술공간 ‘행화탕’. 마임 배우 유진규 씨가 바닥에 전지 6장을 펼쳐 놓고 투명 플라스틱 병에서 개미 한 마리를 꺼내 그 위에 내려놓는다. 풀어놓은 개미는 이리저리 바쁘게 움직인다. 백지에는 이렇게 적혀 있다. ‘개미를 보면서 생각나는 것을 써 주십시오.’
관객들이 하나둘씩 나와 백지에 자기의 생각을 짤막하게 써넣는다. ‘도망쳐.’(30대 여성) ‘무엇이 구속인가.’(20대 여성) ‘만들어지고 행해진 삶 정해진 죽음 미로.’(50대 남성) 한 관객은 신발을 벗어 개미 옆 백지를 ‘탁’ 때린다. 배우는 퇴장하고, 개미는 글자 사이를 부지런히 움직인다. 스텝이 나와 개미를 그대로 둔 채 종이를 접는다.(암전)
도심에 방치돼 있던 공공 건축물들이 도시 재생의 주요한 공간으로 재탄생하고 있다. 목포와 군산에 있는 일제강점기 건축물들은 근대 역사를 배울 수 있는 공간으로 쓰인다. 또 최근 돌아본 스페인과 독일 및 프랑스에서는 혐오 시설이던 도축장을 비롯해 맥주 공장과 장례 지원 시설이 복합 문화 공간으로, 폐철도가 산책로와 공방으로 이용되고 있었다.
폐건축물이 문화 공간으로
‘행화탕’은 아파트 단지 인근에 있는 오래된 동네 목욕탕이었다. 60여 년간 동네 사람들의 사랑을 받았던 낡은 목욕탕은 리모델링을 거쳐 복합 문화시설로 활용되고 있다. ‘트라우마’를 주제로 한 유진규 씨 공연은 목욕탕 내 보일러실과 탕으로 쓰였던 공간에서 진행됐다. 사방에 붉은 벽돌과 하얀 타일이 그대로 남아 있었다. 관객들은 목욕탕 ‘난쟁이 의자’에 앉아 공연을 지켜봤다. 유 씨는 굳이 ‘행화탕’을 선택한 이유에 대해 ‘씻음이라는 상징적 의미 때문’이라고 SNS에서 밝힌 바 있다.
스페인 ‘마타데로’(Matadero)는 1925년부터 1990년대 초까지 마드리드에 고기를 공급하던 도축장이었다. 현재는 창작 작업실·시네마데크·전시장 등 시민을 위한 다양한 복합 문화 공간으로 변신했다. 지난 9월초 이곳을 방문했는데 평일임에도 많은 사람으로 붐볐다. 혐오 시설이었던 도축장의 분위기를 그대로 살려 문화 공간으로 재단장한 점이 이채로웠다.
프랑스 ‘프롬나드 플랑테’(Promenade Plantee)는 1859년부터 1969년까지 바스티유 역과 생마우르 역을 연결하는 고가철도였다. 20여 년간 방치됐던 이곳은 1993년에 4.7㎞ 길이의 도심 공원으로 바뀌었다. 고가 위는 나무와 꽃으로 꾸며진 산책로로, 철로를 지탱하던 아치형 아래 공간은 수공업자들의 공방과 예술가들의 작업실과 카페로 활용되고 있다. 이곳 역시 오전에 방문했을 때 좌우로 심어진 나무 사이로 난 길을 따라 뛰거나 유모차를 밀고 가는 주부들이 눈길을 끌었다.
지역의 역사·이야기 살려야
‘도시 재생 뉴딜사업’은 문재인 정부의 ‘100대 과제’ 가운데 79번째 핵심 정책 과제이다. 국토교통부는 구도심과 노후 주거지 등을 대상으로 매년 100곳씩 5년간 500곳을 대상으로 사업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쇠퇴한 구도심 등을 활성화시키려는 의도에서 벌이는 사업으로, 향후 5년간 50조 원의 예산이 투입될 예정이라고 한다. 광주시도 도시 재생 뉴딜 사업 대상지를 발굴하고 관련 토론회에 나서는 등 본격적인 사업 채비에 나서고 있다. 그러나 사업비 절반을 시에서 부담해야 하기 때문에 어려움이 예상된다.
쓰임새가 끝난 공공 건축물은 자칫 헐리기 쉽다. 자연 건물과 함께 쌓였던 지역 공동체의 역사와 이야기도 함께 사라지는 셈이다. 도시 재생은 ‘주민’을 위한 사업이다. 그런 의미에서 1930년 건립된 남광주역사와 1925년 신축한 옛 광주여고 건물들이 충분한 공론화 과정을 거치지 않은 채 한순간 철거돼 주차장으로 변해 버리고, 광주 역사가 담긴 ‘학동 팔거리’가 아파트 단지 공사 과정에서 없어진 사례는 많은 아쉬움을 남긴다. 고층 아파트만을 선호하는 주택조합의 재개발 사업도 문제다.
때론 신축보다 낡은 건물을 리모델링하는 데 더 많은 비용이 들기도 한다. 그러나 도시 재생은 경제적 가치보다 사회적 가치가 더 중요하다. 옛것과 새것이 조화를 이루는 도시. 마을과 도시공동체의 정체성과 역사를 살리는 도시 재생만이 도시라는 ‘큰 나무’에 활력을 불어넣는다.
관객들이 하나둘씩 나와 백지에 자기의 생각을 짤막하게 써넣는다. ‘도망쳐.’(30대 여성) ‘무엇이 구속인가.’(20대 여성) ‘만들어지고 행해진 삶 정해진 죽음 미로.’(50대 남성) 한 관객은 신발을 벗어 개미 옆 백지를 ‘탁’ 때린다. 배우는 퇴장하고, 개미는 글자 사이를 부지런히 움직인다. 스텝이 나와 개미를 그대로 둔 채 종이를 접는다.(암전)
폐건축물이 문화 공간으로
‘행화탕’은 아파트 단지 인근에 있는 오래된 동네 목욕탕이었다. 60여 년간 동네 사람들의 사랑을 받았던 낡은 목욕탕은 리모델링을 거쳐 복합 문화시설로 활용되고 있다. ‘트라우마’를 주제로 한 유진규 씨 공연은 목욕탕 내 보일러실과 탕으로 쓰였던 공간에서 진행됐다. 사방에 붉은 벽돌과 하얀 타일이 그대로 남아 있었다. 관객들은 목욕탕 ‘난쟁이 의자’에 앉아 공연을 지켜봤다. 유 씨는 굳이 ‘행화탕’을 선택한 이유에 대해 ‘씻음이라는 상징적 의미 때문’이라고 SNS에서 밝힌 바 있다.
프랑스 ‘프롬나드 플랑테’(Promenade Plantee)는 1859년부터 1969년까지 바스티유 역과 생마우르 역을 연결하는 고가철도였다. 20여 년간 방치됐던 이곳은 1993년에 4.7㎞ 길이의 도심 공원으로 바뀌었다. 고가 위는 나무와 꽃으로 꾸며진 산책로로, 철로를 지탱하던 아치형 아래 공간은 수공업자들의 공방과 예술가들의 작업실과 카페로 활용되고 있다. 이곳 역시 오전에 방문했을 때 좌우로 심어진 나무 사이로 난 길을 따라 뛰거나 유모차를 밀고 가는 주부들이 눈길을 끌었다.
지역의 역사·이야기 살려야
‘도시 재생 뉴딜사업’은 문재인 정부의 ‘100대 과제’ 가운데 79번째 핵심 정책 과제이다. 국토교통부는 구도심과 노후 주거지 등을 대상으로 매년 100곳씩 5년간 500곳을 대상으로 사업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쇠퇴한 구도심 등을 활성화시키려는 의도에서 벌이는 사업으로, 향후 5년간 50조 원의 예산이 투입될 예정이라고 한다. 광주시도 도시 재생 뉴딜 사업 대상지를 발굴하고 관련 토론회에 나서는 등 본격적인 사업 채비에 나서고 있다. 그러나 사업비 절반을 시에서 부담해야 하기 때문에 어려움이 예상된다.
쓰임새가 끝난 공공 건축물은 자칫 헐리기 쉽다. 자연 건물과 함께 쌓였던 지역 공동체의 역사와 이야기도 함께 사라지는 셈이다. 도시 재생은 ‘주민’을 위한 사업이다. 그런 의미에서 1930년 건립된 남광주역사와 1925년 신축한 옛 광주여고 건물들이 충분한 공론화 과정을 거치지 않은 채 한순간 철거돼 주차장으로 변해 버리고, 광주 역사가 담긴 ‘학동 팔거리’가 아파트 단지 공사 과정에서 없어진 사례는 많은 아쉬움을 남긴다. 고층 아파트만을 선호하는 주택조합의 재개발 사업도 문제다.
때론 신축보다 낡은 건물을 리모델링하는 데 더 많은 비용이 들기도 한다. 그러나 도시 재생은 경제적 가치보다 사회적 가치가 더 중요하다. 옛것과 새것이 조화를 이루는 도시. 마을과 도시공동체의 정체성과 역사를 살리는 도시 재생만이 도시라는 ‘큰 나무’에 활력을 불어넣는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