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만종(1643∼1725)은 17세기 국학의 대표학자이자 지식인이었다. 특히 시평(詩評) 분야에 뛰어난 업적을 남겼다. 본관은 풍산(豊山)이며, 자는 우해(于海), 호는 현묵자(玄默子)다. 한양의 마포 한강가에 살면서 한평생 저술에 전념했다. 조선의 역사와 문학, 도교에 지대한 관심을 가지고 있었으며, 이를 토대로 조선학을 확립하는데 기여했다.

그는 대대로 고관과 문인을 배출한 명문가에서 태어났다. 아버지는 홍주세(洪柱世·1612∼1661)로 문과에 급제한 뒤 영천군수를 지냈다. 서인이 주창하는 북벌론에 반대하고 정치적 소신을 지켰다. 조부는 홍보(洪寶·1585∼1643)로 인조 원년에 장원급제했다.

그의 비평집 ‘소화시평’은 고대부터 17세기 후반까지 우리 한시 가운데 기억해야 할 작품을 뽑아 품평한 책이다. 소화(小華)는 작은 중화(中華)라는 뜻이다. ‘중국에 버금가는 문명국’이라는 자부심이 담긴 말이다.

또한 ‘시평(詩評)’은 시에 대한 품평을 이르는 말이다. 잘되고 미흡한 부분을 평가해 수준의 높고 낮음을 자리매김한다는 의미다. 그러므로 ‘소화시평’은 우리 한시 가운데 우수한 작품을 골라 가치를 품평해 놓은 책을 일컫는다.

홍만종이 ‘소화시평’을 저술한 때는 그의 나이 34세인 1675년이었다. 1700년대 초 임경(任璟)은 “‘소화시평’이 세상에 널리 퍼져 있고 많은 문사들에게 칭찬을 받으며 감상되고 있다”라고 밝힌 적이 있다. 이번에 출간된 ‘소화시평’은 성균관대 한문학과 안대회 교수가 번역했다.

안 교수는 이번 책을 번역하면서 많은 사본과 선본을 참조해 정본을 확정했다. 1993년에 처음 번역본을 냈고, 2년 뒤 개정판을 출간했다. 그로부터 20여 년이 흘러 발간된 이번 ‘소화시평’은 주석을 최대한 줄여 감상에 집중하도록 초점을 뒀다.

책에 수록된 시들은 당대의 임금과 신하, 문사에서부터 부녀와 기녀, 작자미상, 요절시인에 이르기까지 다양하다. ‘고조기 시의 정경’, ‘이색의 재치’, ‘단종의 영월 시’, ‘효종의 만주 정벌 시’, ‘정도전의 시’, ‘김시습의 무제’, ‘정철의 절창’ 등 시대와 신분을 초월한다.

이 교수는 홍만종이 시비평의 언어와 문법으로 채택한 것은 품격비평(品格批評)이었다고 설명한다. 품격비평은 작가와 작품에서 배어나오는 특징을 한 글자에서 몇 글자로 제시하는 방법이다. 고려 중엽 최자의 ‘파한집’ 이래 면면히 전해오는 방식으로, 홍만종에 이르러 최고에 이른다.

그러나 무엇보다 홍만종의 학문 성향은 독특하고 신선하다. 왜란과 호란 이후 조선의 지식인들은 지나칠 정도로 성리학의 기반에 집착했다. 더욱이 당시는 강력한 통제 시스템이 작동되던 터라 자유로운 사유가 제한됐다. 하지만 홍만종은 규범을 뛰어넘는 활달한 사유를 견지했으며 도가적 사유와 박학을 근거로 조선적 현상에 연구를 집중했다.

안 교수는 “그의 학문적 태도는 개방적이었다. 요컨대 그는 17세기가 낳은 가장 선구적이고 본격적인 국학자로 자리매김할 수 있었다”고 평했다.

〈성균관대출판부·3만원〉

/박성천기자 skypark@kwangju.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