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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형주 광주대 항공서비스학과 교수] ‘히트 앤드 런’
2016년 05월 05일(목) 00:00
“어이, 무등경기장을 좀 맡아주소.”

해태 타이거즈와 삼미 슈퍼스타즈의 광주 경기를 전국 중계하라는 긴급 오더가 떨어졌다. 애초 다른 구장의 라디오 중계방송 일정이 잡혀 있었으나 현지 기상 사정으로 취소돼 갑자기 필자에게 불똥이 튄 것이다.

1984년 5월 5일 광주 무등경기장 야구장은 어린이들과 함께 온 가족들로 초만원을 이루고 있었다. 졸지에 중계를 맡게 됐지만, 사실 필자에게 어려운 일은 아니었다. 1970년대 후반부터 고교야구 중계를 해왔고 프로야구 출범과 함께 무등경기장 야구장의 MBC 붙박이 캐스터로 일했기 때문이다. 각종 하일라이트, 야구장 현장 연결, 라디오 중계방송 등 아나운서로서 해보지 않은 일이 없을 정도였다.

야구장에 도착해 보니 해설자로 이성규씨(현 스카이스포츠 야구 해설위원 이효봉 위원 아버지)가 중계방송 준비를 하고 있었다. MBC 아나운서 대선배인 이성규씨는 특히 일본야구에 정통해 수많은 야구 저서를 내기도 한 야구 전문가다.

“어이 김 아나, 오늘 해태 선발투수가 방수원이래.”

“그럼 2회 끝나고 교체 될거고 오늘 목이 좀 아프겠네요.”

필자는 방수원 투수가 중간 계투요원으로 2이닝 정도를 소화하는 역할을 주로 맡았기 때문에 잦은 투수교체로 중계방송 시간이 길어질 것으로만 생각했었다. 정작 경기가 시작되자 마운드에 서있는 방수원은 팬들이 익히 아는 그런 투수가 아니었다. 타자 바깥쪽으로 흐르는 슬라이더와 느린 커브 등 변화구로 삼미 타자들을 농락했다. ‘물찬 제비가 하늘을 날 듯’ 했다는 표현이 맞을 듯싶다.

“어이 김 아나, 오늘 방수원이가 뭔 일 내는 것 아닌가? 조짐이 이상한데.”

관중석에서도 말로만 듣던 ’노히트 노런‘의 대기록 달성에 대한 기대감으로 팬들의 웅성거림이 들렸다. 7회 초, 그때까지 볼넷만 2개 허용했던 방수원의 실투가 나왔다. 공이 가운데로 몰리는 바람에 삼미 타자의 방망이가 힘차게 돌았다. 누가 봐도 2루수 옆을 꿰뚫는 안타성 타구였다.

하지만, 철벽 2루수 차영화의 다이빙 캐치로 위기를 넘기고 8회 초 담장 근처까지 궤적을 그리던 타구도 몸을 날린 좌익수 김종모의 글러브로 빨려들어갔다.

대기록이 눈 앞에 다가오자 팬들은 열렬한 응원으로 방수원을 격려했다. 9회 초 삼미의 마지막 공격이 끝났을 때 전광판에 8:0이라는 스코어가 선명하게 찍혔다. 역사적 현장에 있던 관중들은 방수원을 주목했다. 한국 프로야구 최초 ‘노히트 노런’의 대기록을 세운 그는 포수 유승안과 뜨겁게 포옹했다. 타자 30명을 상대해 볼넷 3개, 삼진 6개를 곁들여 아웃카운트 27개를 잡아낸 완벽한 경기였다.

중계석에서 이성규 위원과 필자는 방수원의 대기록 수립을 목이 터져라 외쳤다. 그 기억은 지금도 어제 일 같이 선명하다.

올해로 한국 프로야구가 출범한지 35년째를 맞는다. 그동안 해태와 애환을 같이했던 수많은 타이거즈 팬들은 기억한다. 1980년대부터 1990년대 광주는 한국 프로야구의 심장부였다. 타이거즈는 호남인들의 자긍심이자 자부심이었다. 호남이 정치, 사회적으로 소외됐을 때 타이거즈 야구를 보며 울분을 삭였다.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목포의 눈물’을 목놓아 부르며 눈시울도 붉혔다.

암울했던 시절에 지역민의 자긍심을 높여준 게 바로 야구였다. 그 시절 야구장을 찾았던 타이거즈의 팬은 최신 시설의 챔피언스필드 경기장에서 건너편 무등경기장 야구장을 보면 만감이 교차할 것이다.

당시 그라운드를 누비던 선수들과 팬은 한 몸이나 다름 없었다. 선수들에겐 광주, 호남팬들의 성원이 즐거움이었고 분발하도록 격려해 주는 함성이었을 것이다. 또한 몸에 밴 헝그리 정신과 호남팬들의 염원을 저버릴 수 없다는 각오를 경기장에 들어가는 선수들의 눈빛에서 읽을 수 있었던 때였다. 타이거즈는 꼭 이겨야 하는 순간에 힘을 모아 반드시 이기는 팀이었다.

세월이 많이 지났지만 지금 챔피언스필드에서 뛰는 선수들과 구단 관계자들은 야구팬과 지역민의 열망이 무엇인지를 깨달아야 한다. 열악한 환경에서도 9번 우승이라는 금자탑을 쌓았던 선배들의 도전정신을 다시 한번 되새기고 홈팬과 지역민의 열망에 부응하는 선수들이 돼야 한다.

타석에서 맥없이 삼진을 당하는 모습을 보고 싶어하는 팬들은 없다. 팬들은 끈질긴 승부로 상대팀을 괴롭혔던 빨간 유니폼의 해태타이거즈 선수들의 근성과 상대팀 선수들을 주눅들게 했던 카리스마를 다시 보여주길 기대한다. 아니 꼭 보여줘야 한다.

32년 전 5월 5일 어린이날, 프로야구 최초의 ‘노히트 노런’이란 대기록을 세운 방수원 투수의 경기를 문득 회상하며 그들에게 지역민의 한 사람으로서, 타이거즈 팬으로서 작전 사인을 보낸다. “히트 앤드 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