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광 한빛원전 2호기 핵심 설비에서 발생한 화재〈광주일보 10일자 1면〉는 독점적인 규제 권한을 쥐고 있는 원자력안전위원회(원안위)가 제 역할을 하지 못했기 때문이라는 지적이 많다. 수개월 전 점검이 이뤄졌던 전기 설비에서 화재가 발생했다는 점에서 원자력·방사능 사고로부터 국민을 지켜야할 원안위가 품질 관리와 정비 과정을 제대로 감독하지 못한 게 아니냐는 것이다.

특히 원전에서의 사고뿐만 아니라 한빛원전의 경우 중저준위 방사성 폐기물 이송, 증기발생기 안전기준 완화 등 관심이 집중된 현안에 대해 원안위가 소통을 게을리하면서 환경단체와 주민들 사이에서 ‘불통 원안위’라는 지적도 있다.

◇전문가들, 원안위 규제능력 의구심= 원자력전문가들은 원안위가 법으로 보장된 막강한 권한과 원자력안전기술원(KINS·킨스)이라는 조사·분석 기관을 통해 원전을 감시하고 규제할 수 있음에도 임무를 소홀히 한 탓에 사고·고장이 계속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한빛 2호기의 가동 중단을 불러온 화재 발생 설비는 지난해 8∼11월 사이 부품이 교체되고 정기점검이 이뤄졌는데도 화재사고가 발생했다. 일정 주기별로 진행되는 발전소 정기점검 과정 전반에 대해 원안위가 관여하고, 시설 전반에 관한 점검이 기준에 맞게 이뤄졌는지 원안위가 살펴보고 승인한 뒤 발전소 가동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이와 함께 원전의 핵심 설비인 원자로 냉각재 펌프를 제어하는 차단기에서 발생한 화재가 자동 소화 설비(장치)로 소화되지 않고 20분이나 지속했다는 점에서 원안위가 평소 원전에서의 화재 사고에 대한 대책 마련에는 소홀했던게 아니냐는 지적도 제기된다. 원전 사업자인 한국수력원자력(한수원)에 화재 사고를 대비한 훈련이나 소방 설비 강화를 요구하지 않고 사실상 손을 놓고 있었던 게 아니냐는 것이다.

◇지역민들, 원안위 소통의지 의구심=환경단체와 지역민들 사이에서는 사고·고장 사건과 함께 안전과 관련된 주요 현안에 대해 원안위가 지역민과의 소통을 피하고 있다는 불만도 거세다.

원전의 핵심시설 가운데 하나인 증기발생기의 안전기준을 완화해달라고 한수원이 신청한 ‘한빛 3·4호기 원전 운영 변경허가’의 경우 6개월째 “심사가 진행 중”이라는 것 외에는 원안위가 지역민에게 설명한 내용은 전무하다.

이 사안에 관심도가 높은 것은 설계 당시 8%로 제한했던 증기발생기 세관의 관막음 허용률을 18%로 상향 신청한 것이 받아들여질 경우 원전 가동시 안전성에 위협이 된다는 전문가의 지적이 꾸준히 제기됐기 때문이다.

지난 8일부터 정기점검에 들어간 한빛 4호기 증기발생기(2개)의 관막음률은 각각 5.37%, 4.94%로, 직전 정기점검 때 관막음률이 3% 이상 치솟은 것을 감안하면 원안위 심의 결과에 따라 한빛 4호기는 재가동이 불가능하게 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저장공간의 포화가 임박한 중저준위 방사성 폐기물 해상 이송에 관해서도 주민들은 원안위의 소통 의지나 규제 능력을 의심하고 있다. 방사성 폐기물을 가득 실은 선박이 수심이 얕은 영광 앞바다를 오가는데, 적절한 안전성 확보가 이뤄졌는지, 이뤄졌다면 주민 우려를 잠재울 합리적인 설명이 없었다는 주장이다. 주요 사안 마다 한수원과 원자력환경공단 측에 ‘주민 동의만 받아오라’는 식의 대응으로 일관하고 있다는 것이다.

핵없는세상 광주전남공동행동 박상은 운영위원장은 “독립적인 규제와 감시로 국민을 원자력의 위험으로부터 지켜야할 원안위가 매번 원전 사업자 측에 ‘주민 동의를 얻어오라’는 식으로 안전 문제‘타협’을 종용하고 있다”며 “원안위가 이제라도 안전을 최우선에 두고 원전 사업자를 규제해야한다”고 말했다.

/김형호기자 khh@kwangju.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