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8올림픽 유치가 독재 정권을 연장하려는 음모라고 주장하는가 하면, 정권을 ‘파쇼’ 정권이라고 비판한 신문은 지금도 이적 표현물에 해당할까.

이른바 ‘횃불회’ 사건 당사자들에 대한 재심 재판이 본격화되면서 당시 당사자들에게 적용된 국가보안법상 이적표현물 소지 혐의에 대한 관심이 쏠리고 있다.

A씨 등 4명은 30∼40대이던 지난 1982년, ‘횃불회’라는 친목 모임을 가장해 신문이나 서적 등 이적표현물을 공유한 혐의(국가보안법 위반)로 기소됐다.

당시 검찰이 이적표현물로 규정한 신문은 지난 1909년 2월 미국 교민단체인 ‘국민회’가 창간한 신한민보(新韓民報)로, 도산 안창호가 창간한 공립신보의 후신으로도 알려져 있다.

당시 이들이 2차례 복사해 나눠봤다는 신한민보에는 ▲분화(分化)가 두려워서 - 노동자·농민을 수탈하는 현 정권의 경제 상황은 심한 외채에 시달리고 있다는 내용의 기사 ▲문제점 많은 서울올림픽 -88올림픽 유치는 남북 분단·대립을 양극화하고 전두환 독재 정권을 88올림픽 이후에도 연장하려는 음모라며 비판한 기사 ▲참으로 잔인한 고문 중단하라 - 전두환 파쇼(fascio) 정권은 잔인한 고문을 자행하는 등 폭력 정치를 하고 있다는 내용의 기사 등이 실려있었다.

검찰은 이같은 신문 기사와 내용을 공소 사실로 기재했다는 게 A씨 등의 주장이다.

A씨 등은 “미국 한인사회에서 공공연히 읽혀지는 신문으로, 88올림픽을 개최할 여건이 충족되지 않았다는 것을 비판한 기사 내용 등을 북한과 비슷한 주장을 했다며 이적표현물로 지목하고 ‘북한 동조’, ‘북괴 활동’으로 내몰았다”면서 30년이 넘은 지금에도 수사 당국이 당시 주장을 바꾸지 않고 있다는 데 주목하고 있다.

1980년대 부산지역 최대 공안사건인 부림사건과 관련, 영국 역사학자 E H 카의 ‘역사란 무엇인가’를 불온서적이라며 공소를 제기했던 당시 수사당국과 연관지어 해석하는 분위기도 감지된다.

한편, 이들은 1982년 이뤄진 1심 재판에서 3명의 경우 징역형의 집행유예, 1명은 실형을 선고받았고 항소심에서는 모두 집행유예를 선고받고 대법원에서 그대로 형이 확정됐다.

이후 사건 당사자 3명과 유족 1명은 지난해 1월 광주지법에 재심청구를 했으며 지난 2월 청구가 받아들여져 광주지법 형사 1부(부장판사 송기석) 심리로 재심이 진행 중이다.

이들은 최근 기자회견에서 “야밤에 영장도 없이 집에 들이닥쳐 강제연행하고, 고문과 가혹행위로 얼룩진 조사는 밤낮없이 계속됐다”면서 “그럼에도 검찰과 당시 경찰관들은 반성하기는커녕 과거의 정당성을 강변하고 있다”고 비판한 바 있다.



/백희준기자 bhj@kwangju.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