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체메뉴
상실·부재의 아픔 위로하는 따뜻한 시선
저녁 식사가 끝난 뒤
함정임 지음
2015년 04월 10일(금) 00:00
상실은 인간이면 누구나 겪는 경험이다. 불완전한 인간은 상실, 고독, 사고 등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상실은 부재의 다른 이름이다. 마흔이 넘으면 ‘부고’는 더 이상 낯선 경험이 아니다. 부지불식간에 출몰하는 게 죽음이라는 실체다. 결국 인생은 누군가의 ‘부고’를 끊임없이 받는 과정 그 이상 이하도 아닌지 모른다.

그러나 한편으로 인간은 매우 성숙한 존재이기도 하다. 이 죽음과 ‘부재’의 경험을 바탕으로 의미 있는 삶을 살고자 한다. 더러 부재의 상실감을 잊기 위해, 아픔을 치유하기 위해 먼 곳으로 떠나기도 한다. 어쩌면 만남과 사유는 상실을 경험한 이들을 위한 ‘위안의 만찬’인지 모른다. 어차피 삶은 여행이고 떠남이 아니던가.

작가 함정임(동아대 한국어문학부 교수)이 새 소설집 ‘저녁 식사가 끝난 뒤’를 펴냈다. 2009년 ‘곡두’를 발간한 뒤 6년 만에 펴낸 작품집에서 작가는 ‘상실’을 위로하는 방식을 탐색한다. 소설 전편에는 부유하듯 흐르는 상실의 이미지가 드리워져 있다.

작품집에는 2012년, 2013년 이상문학상 수상작품집에 실렸던 표제작 ‘저녁 식사가 끝난 뒤’와 ‘기억의 고고학-내 멕시코 삼촌’을 비롯해 8편의 단편이 수록돼 있다. 각각의 서사를 엮어내는 방식은 여행(떠남)을 통한 상실의 극복이다.

흥미로운 점은 작가 또한 ‘노마드’임을 밝힐 정도로 떠돎의 기질을 갖고 있다는 것이다. ‘길 위의 작가’라는 수사와 잘 어울리는 작가가 바로 함정임이다. 그녀에게 여행과 삶은 별개의 항목이 아니다. 여행을 배경으로 작품이 잉태되고, 그 작품은 또 다른 여행을 견인하는 단초로 작용한다.

그 같은 맥락에서 보면, 작가가 소설 속 인물에게 부여한 ‘역마살’은 스스로가 세상을 떠돌았던 여정과 무관치 않다. 떠도는 자들은 운명적으로 타자와의 만남을 경험한다. 진실은 그 만남과 떠돎 속에서 싹 쓰는 흔적과 같다.

표제작 ‘저녁 식사가 끝난 뒤’는 프랑스 여행 중 접한 P선생의 부고 소식을 중심으로 전개된다. P선생의 주선으로 결혼한 사람들이 저녁식사를 하며 -각자의 방식대로- 선생을 기억해낸다. 주인공 순남은 식사를 준비하며 지나온 시간을 반추해낸다.

죽은 이를 떠올리며 전개되는 이야기는 마냥 우울하지만은 않다. 노래와 시와 음식이 빚어내는 저녁의 풍경은 잔잔하다. 상실의 이미지를 감싸안는 작가의 긍정적이면서도 따뜻한 시선 때문이다.

이 같은 기조는 단편 ‘밤의 관조’에서도 동일하게 펼쳐진다. 주인공 유진은 첫사랑에게 버려진 아픔이 있다. 그녀는 세 번째 유산을 하고, 친구의 초대로 경주로 떠난다. 그녀의 내면에는 세월의 흐름만큼 아픔이 켜켜이 쌓여있다. 그러나 산다는 것은 ‘앞으로 나아가는 행위’라는 인식의 끈을 놓지 않는다.

문학평론가 이소연은 “함정임의 소설은 부재에 기대어 오랜 시간을 견뎌온 이들의 몫에 대해 말한다. 내 상처가 그들의 것과 만날 때 느끼는 기쁨, 소설은 또한 그 찰나를 위해 마련된 사건이 아니겠는가”라고 말한다. 부재를 뚜렷한 현전으로 바꾸는 힘이 함 작가 소설이 놓인 자리라는 것이다.

작가 함정임의 문학은 여전히 ‘상실의 길’ 위에 있다. 이 같은 ‘노마드’적인 기원은, 사실 작가의 경험을 일정부분 대변하는 측면이 있다. 프랑스문학을 전공한 저자는 스무 살 무렵, 어느 날 시인 폴 발레리의 ‘해변의 묘지’라는 장시를 읽다가 필이 꽂힌다. 시 말미의 유명한 결구 ‘바람이 분다 살아야겠다’와 폴 발레리가 묻힌 묘지 인근의 해변 사진을 보며, 서른이 되기 전 반드시 프랑스에 가리라 다짐한다.

그로부터 20여 년이 흘렀지만 함 작가는 여전히 여행과 삶을 포괄하는 생을 추구한다. 삶이 여행이고, 여행이 삶인 방식은 그의 작품 세계를 한층 풍요롭게 채워낸다. 그 여정의 중심에는 늘 상실과 아픔을 껴안는 연민이 담겨 있다.

“어느 순간부터 소설쓰기란 추모의 형식 이외에 아무것도 아니라는 생각을 한다. 사물이든 사람이든 세상 어느 한 곳 어느 하나 불러보고 싶은 이름들이 있다. 미처 다가가지 못한 미처 풀지 못한 미처 주지 못한 그들에게 이 하찮은 소설 조각들을 바친다.”

〈문학동네·1만2000원〉

/박성천기자skypark@kwangju.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