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리 세느 강변의 오르세 미술관으로 향하는 자동차안. 오래된 기차역을 리모델링한 미술관이라는 선입견 때문인지 기자는 여행을 떠나는 사람 마냥 마음이 설레였다. 하지만 행복한 상상도 잠시, 미술관에 입장하기 위해 길게 줄서서 기다리고 있는 인파를 본 순간 빠듯한 취재일정이 떠올라 마음이 바빠졌다. 세계적인 미술관인 만큼 관광객들이 붐빌 것이라곤 예상했지만 많아도 너무 많았다. 기자와 동행한 가이드에 따르면 특별전으로 열리고 있는 ‘반 고흐와 아르토-사회적 자살’전의 영향이 큰 것 같다고 했다. 이 전시는 지난 1947년 파리 오랑주리 미술관에서 반 고흐전을 관람한 프랑스 작가이자 미학자인 아토닌 아르토(Antonin Artaud·1896∼1948)가 ‘사회가 자살시킨 사람 반 고흐’란 제목으로 쓴 에세이를 모티브로 기획됐다. 미술관 입구에 반 고흐와 아르토의 초상화가 내걸린 대형 포스터를 본 순간 오르세 미술관이 새삼 인상주의의 보고(寶庫)라는 말이 실감났다.
미술관에 들어서니 마치 타임머신을 타고 100년 전으로 되돌아 간 듯 세월의 더께가 묻어나는 대형 시계(일명 빅토르 랄루)가 눈에 먼저 들어 왔다. 내부 중앙의 유리창에 자리한 둥근 모양의 시계와 전시장 통로 옆에 드문 드문 마련된 의자들이 그 시절 대합실 풍경을 보는 듯 했다. ‘그 때’와 변한 게 있다면 수많은 기차가 드나들었던 철로 대신 대리석으로 단장된 바닥과 그 위에 로댕, 브루델 등 세계적인 거장들의 조각 작품이 자리하고 있다는 것이다. 과거와 현재가 소통하는 ‘살아있는’ 플랫폼이 바로 오르세 미술관의 매력이다.
잘 알려져 있다시피 오르세 미술관은 1900년 파리 만국 박람회 개막에 맞춰 건설된 기차역이다. 18세기 궁으로 쓰이다 1871년 파리 코뮌시민 때 불에 타면서 30년 가량 방치돼 있던 것을 오를레앙 철도회사가 추켜 들었다. 파리 박람회와 같은 빅 이벤트의 관람객들을 파리 시내로 끌어 들이는 거점공간의 필요성을 느껴 오르세 철도역(La Gare d’Orsay)을 건설했다. 이 프로젝트를 위해 오를레앙 철도회사는 당시 잘 나가는 건축가 빅토르 랄루(Victor Laloux), 에밀 베나르(Emile Benard), 루시엥 마뉴(Lucien Magne)등 3명에게 설계를 의뢰했고 최종적으로 파리 국립미술학교 건축학 교수인 빅토르 랄루가 선정됐다. 기차역 특유의 드러난 철골 구조를 효과적으로 가리는 대담한 외관설계와 격자형 구조로 짜여진 이중 천장의 내부설계가 높은 평가를 받았다.
하지만 빅토르 랄르가 오르세 미술관의 프로젝트를 맡게 된 결정적인 이유는 다름 아닌 보자르 양식의 화려한 외관이었다. 당시 파리 코뮌으로 불거진 사회적 갈등을 ‘무마’하고자 했던 당시 프랑스 3공화국의 정책과 맞아 떨어졌다. 즉, 파리 한복판에 화려한 건축물과 오락적 기능의 미술관을 건립해 시민들의 마음을 순화시키고 정부에 대한 불만을 누그러뜨리려고 한 것이다. 아니나 다를까. 약 138m로 길게 뻗은 순백색의 웅장한 외관과 반원형의 지붕, 화려하고 정교한 장식은 완공과 동시에 파리지앵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오를레앙 철도회사는 그의 공을 기리기 위해 오르세 미술관의 상징인 대형시계를 ’빅토르 랄루’로 명명했다.
오르세 역은 개장 이후 30여 년 동안 파리와 프랑스 남서부를 잇는 주요 역으로 시민들의 사랑을 받았다. 하지만 역사(驛舍)의 기능성 보다는 너무 외관에만 치중한 나머지 시대의 변화를 예측하는 데는 실패했다. 길이가 짧은 소형 기차에 맞춰 설계한 탓에 이후 길이가 긴 기차들이 등장하면서 수용에 한계를 드러낸 데다 시내권의 몽파르나스 역의 규모가 커지면서 어정쩡한 신세로 전락한 것이다. 1939년 문을 닫은 오르세 역은 제2차 세계대전 기간에는 우편센터로, 카프카 원작의 ‘심판’을 각색한 오손 웰스의 영화 ‘심판’(The Trial)의 촬영무대 등으로 30여 년을 전전하다 듀로호텔의 건립부지로 낙점됐다.
하지만 기차역을 허물고 그 자리에 호텔을 세우려는 계획은 당시 여성 문화부 장관인 자끄 뒤아멜에 의해 제동이 걸렸다. 문화의 대중화를 내건 그녀는 “오랜 세월 파리의 역사와 함께 해온 기차역을 허무는 것은 우리들의 추억이 사라지는 것”이라면서 보존의 필요성을 주장했고 1978년 마침내 사적지 지정을 이끌어 냈다. 이후 프랑스 정부는 기차역 부지의 활용방안을 고민한 끝에 19세기 인상파의 작품을 소장하는 미술관으로 방향을 잡았다. 당시 인상주의 컬렉션은 1947년 건립된 ‘주드 폼 국립 미술관’에 소장돼 있었지만 미술품들이 늘어나면서 포화상태에 이르러 대체 미술관이 불가피한 상황이었다. 당시 미테랑 대통령은 대규모 문화예술시설의 확충을 골자로 하는 ‘그랑 프로제’(Grands Project)를 통해 루브르 박물관은 19세기 이전의 미술품을, 20세기 이후 현대미술품은 새로 신축하는 조르주 퐁피두센터에 각각 분산시키는 마스터 플랜을 세웠다. 시민들에게 취향과 관심사에 따라 시기별로 미술품들을 일목요연하게 감상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는 취지에서 였다. 고전과 현대 사이에 끼어있는 인상파 작품들을 루브르로 이전시킬지, 퐁피두 센터로 보낼 것인지 애매한 상황에서 오르세 역은 대체 미술관으로서의 최적의 조건이었다. 19세기에 건립된 기차역에 이 시기의 미술품을 전시한다는 건 건물의 정체성을 살릴 수 있는 기발한 발상이었던 것이다.
1978년 프랑스 정부는 ‘오르세 미술관 건립 추진위원회’를 발족하고 이듬해 실시된 국제미술설계공모를 통해 건물의 원형을 최대한 살리면서 현대적인 감각을 반영한 건축가 그룹 ACT(레너드 바르동, 피에르 콜보크, 장 폴 필리퐁)를 선정했다. 이어 1980년 오르세 역의 내부인테리어를 맡은 이탈리아의 여성건축가인 가에 아울렌티(Gae Aulenti)는 건물의 원형과 기차 역 특유의 플랫폼 분위기가 묻어나는 독특한 컨셉으로 ‘역사(驛舍)미술관’을 세상에 내놓았다.
8년간의 리모델링을 거쳐 지난 1986년 12월9일 문을 연 오르세 미술관은 “오르세 미술관의 컬렉션의 첫 번째 작품은 바로 건물 자체”라는 찬사를 받으며 전 세계의 스포트라이트를 받았다. 너비 40m, 높이 32m, 길이 138m인 거대한 내부 공간에는 1848∼1914년까지의 서양미술을 대표하는 미술품들이 숨쉬고 있다. 인상파를 중심으로 신인상파, 후기인상파, 사실주의, 자연주의, 상징주의, 나비파, 아르누보 등 19세기의 주요 미술흐름이 연대기별로 정리돼 있다. 3층 구조인 미술관 1층에는 쿠르베의 ‘오르낭에서의 매장’, 밀레의 ‘만종’ 등 사실주의 회화와 조각 컬렉션이 자리하고 있고 2층에는 상징주의, 아르누보 계열의 작품들이 전시돼 있다. 3층에는 마네의 ‘올랭피아’·‘풀밭위의 식사’, 고흐의 ‘아를의 별이 빛나는 밤’ 등 인상주의 화가의 명작들이 소장돼 있다. 오르세 미술관의 한 해 평균 관람객수는 약 330만 명으로 개관 이후 지난해까지 7천여 만 명이 다녀갔다.
/jhpark@kwangju.co.kr
하지만 빅토르 랄르가 오르세 미술관의 프로젝트를 맡게 된 결정적인 이유는 다름 아닌 보자르 양식의 화려한 외관이었다. 당시 파리 코뮌으로 불거진 사회적 갈등을 ‘무마’하고자 했던 당시 프랑스 3공화국의 정책과 맞아 떨어졌다. 즉, 파리 한복판에 화려한 건축물과 오락적 기능의 미술관을 건립해 시민들의 마음을 순화시키고 정부에 대한 불만을 누그러뜨리려고 한 것이다. 아니나 다를까. 약 138m로 길게 뻗은 순백색의 웅장한 외관과 반원형의 지붕, 화려하고 정교한 장식은 완공과 동시에 파리지앵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오를레앙 철도회사는 그의 공을 기리기 위해 오르세 미술관의 상징인 대형시계를 ’빅토르 랄루’로 명명했다.
오르세 역은 개장 이후 30여 년 동안 파리와 프랑스 남서부를 잇는 주요 역으로 시민들의 사랑을 받았다. 하지만 역사(驛舍)의 기능성 보다는 너무 외관에만 치중한 나머지 시대의 변화를 예측하는 데는 실패했다. 길이가 짧은 소형 기차에 맞춰 설계한 탓에 이후 길이가 긴 기차들이 등장하면서 수용에 한계를 드러낸 데다 시내권의 몽파르나스 역의 규모가 커지면서 어정쩡한 신세로 전락한 것이다. 1939년 문을 닫은 오르세 역은 제2차 세계대전 기간에는 우편센터로, 카프카 원작의 ‘심판’을 각색한 오손 웰스의 영화 ‘심판’(The Trial)의 촬영무대 등으로 30여 년을 전전하다 듀로호텔의 건립부지로 낙점됐다.
하지만 기차역을 허물고 그 자리에 호텔을 세우려는 계획은 당시 여성 문화부 장관인 자끄 뒤아멜에 의해 제동이 걸렸다. 문화의 대중화를 내건 그녀는 “오랜 세월 파리의 역사와 함께 해온 기차역을 허무는 것은 우리들의 추억이 사라지는 것”이라면서 보존의 필요성을 주장했고 1978년 마침내 사적지 지정을 이끌어 냈다. 이후 프랑스 정부는 기차역 부지의 활용방안을 고민한 끝에 19세기 인상파의 작품을 소장하는 미술관으로 방향을 잡았다. 당시 인상주의 컬렉션은 1947년 건립된 ‘주드 폼 국립 미술관’에 소장돼 있었지만 미술품들이 늘어나면서 포화상태에 이르러 대체 미술관이 불가피한 상황이었다. 당시 미테랑 대통령은 대규모 문화예술시설의 확충을 골자로 하는 ‘그랑 프로제’(Grands Project)를 통해 루브르 박물관은 19세기 이전의 미술품을, 20세기 이후 현대미술품은 새로 신축하는 조르주 퐁피두센터에 각각 분산시키는 마스터 플랜을 세웠다. 시민들에게 취향과 관심사에 따라 시기별로 미술품들을 일목요연하게 감상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는 취지에서 였다. 고전과 현대 사이에 끼어있는 인상파 작품들을 루브르로 이전시킬지, 퐁피두 센터로 보낼 것인지 애매한 상황에서 오르세 역은 대체 미술관으로서의 최적의 조건이었다. 19세기에 건립된 기차역에 이 시기의 미술품을 전시한다는 건 건물의 정체성을 살릴 수 있는 기발한 발상이었던 것이다.
1978년 프랑스 정부는 ‘오르세 미술관 건립 추진위원회’를 발족하고 이듬해 실시된 국제미술설계공모를 통해 건물의 원형을 최대한 살리면서 현대적인 감각을 반영한 건축가 그룹 ACT(레너드 바르동, 피에르 콜보크, 장 폴 필리퐁)를 선정했다. 이어 1980년 오르세 역의 내부인테리어를 맡은 이탈리아의 여성건축가인 가에 아울렌티(Gae Aulenti)는 건물의 원형과 기차 역 특유의 플랫폼 분위기가 묻어나는 독특한 컨셉으로 ‘역사(驛舍)미술관’을 세상에 내놓았다.
8년간의 리모델링을 거쳐 지난 1986년 12월9일 문을 연 오르세 미술관은 “오르세 미술관의 컬렉션의 첫 번째 작품은 바로 건물 자체”라는 찬사를 받으며 전 세계의 스포트라이트를 받았다. 너비 40m, 높이 32m, 길이 138m인 거대한 내부 공간에는 1848∼1914년까지의 서양미술을 대표하는 미술품들이 숨쉬고 있다. 인상파를 중심으로 신인상파, 후기인상파, 사실주의, 자연주의, 상징주의, 나비파, 아르누보 등 19세기의 주요 미술흐름이 연대기별로 정리돼 있다. 3층 구조인 미술관 1층에는 쿠르베의 ‘오르낭에서의 매장’, 밀레의 ‘만종’ 등 사실주의 회화와 조각 컬렉션이 자리하고 있고 2층에는 상징주의, 아르누보 계열의 작품들이 전시돼 있다. 3층에는 마네의 ‘올랭피아’·‘풀밭위의 식사’, 고흐의 ‘아를의 별이 빛나는 밤’ 등 인상주의 화가의 명작들이 소장돼 있다. 오르세 미술관의 한 해 평균 관람객수는 약 330만 명으로 개관 이후 지난해까지 7천여 만 명이 다녀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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